Tuesday, June 24, 2014

홍정욱의 주말

주말은 내게 세 단어로 요약될 것 같다. 독서-가족-운동. 남들이 보면 지루하다 싶을 정도다. 하지만 지난 4년간은 정반대의 주말을 보냈다. 국회의원 홍정욱(42·서울 노원병)의 ‘내 시간’이라는 건 없었으니까. 지역구에서 하는 각종 행사들을 찾아다니며 인사말 몇 마디를 하다가 하루가 다 갔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불출마 선언을 하고, 사회공헌사업을 시작하면서 삶이 바뀌었다. 주말 역시 달라졌다. 나의 아름다운 주말? 자유의 사색이 있는 요즘의 주말이 가장 아름답고 또 완벽하다.

아이들과 평창동 동네 한 바퀴

 주말 아침이라고 다를 건 없다. 보통 오전 6시30분에서 7시 사이면 눈을 뜬다. 열다섯 살 때부터 혼자 유학생활을 하며 지켜온 습관이다. 그렇다고 아내를 깨우진 않는다. 아버지(영화배우 남궁원)의 가르침이다. 어릴 적부터 ‘아내의 아침잠을 깨우는 남자가 가장 나쁜 남자다’라는 말을 들었다. 오히려 조용한 집안이 좋다. 서재로 가서 잠시 책을 읽기 좋은 시간. 아침 대신 모닝커피 한 잔을 즐긴다.

 한두 시간쯤 뒤에 아이들이 일어나면 이내 집안이 시끌벅적해진다. 둘은 초등학교, 막내는 유치원에 다닌다. 세 아이들은 신기하리만치 집에서 노는 것을 좋아한다. 요맘때면 마당에 나가 꽃을 심어 가꾸거나 강아지와 뛰놀기 바쁘다. 하지만 햇볕이 쨍한 날엔 동네 산책을 나간다. 집이 평창동인 데다 동네에서도 거의 꼭대기라 바로 뒤가 북한산 국립공원이다. 다른 이들처럼 굳이 채비를 하지 않아도 동네를 걷는 게 곧 봄나들이가 된다. 그러다 가끔은 교보문고까지 발걸음이 이어진다. 서점에 들어가면 뿔뿔이 흩어지기 일쑤. 아이들도 각자 알아서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구석에 앉는 게 자연스럽다. 어느새 점심 시간이 가까이 올 때쯤 책 한두 권씩을 사서 집으로 향한다.

소중한 주말 읽는 책도 특별

 가족들과 간단히 점심을 먹고 향하는 곳은 서울 삼청동 ‘올재’ 사무실이다. 올재는 지혜 나눔을 목적으로 1월에 세운 사단법인이다. 그 일환으로 『플라톤』 『논어』 『맹자』 등 고전 시리즈를 냈다. 소외계층과 저소득 청소년을 위해 3000원 안팎의 부담 없는 가격에 보급할 계획이다.

 사무실은 청와대 바로 앞에 있다. 도착하면 보통 두 시다. 워낙 인적이 드문 곳이라 바깥 풍경도 실내만큼 정적이 흐른다. 하지만 익숙하게 불을 켜고 방으로 들어간다. 국회 사무실과 달리 방은 스칸디나비아풍 가구 등 내 취향대로 꾸며져 있다. 의자도 덴마크 가구 디자이너 핀율의 작품으로 장만했다. CEO용 회전의자가 아닌 학교 걸상 같다. 책상 옆에는 보스(BOSE)의 아이폰 데크, 벽에는 전 BMW 디자인 총괄담당자였던 크리스 뱅글의 스케치, 이우환의 그림이 있다. 수백 권의 책과 함께 조지 소로스, 김대중 전 대통령, 앨빈 토플러 등 명사와 함께한 사진도 책꽂이에 놓여 있다.

 여기서 내가 하는 일은 바로 책읽기다. 이런 얘기를 주변에 하면 주말에 웬 독서냐고 하는 분이 많다. 왠지 ‘놀아야 할 시간’에 그것도 혼자 시간을 보낸다는 것을 신기하게 여긴다. 하지만 누군가 그러지 않았던가. ‘남이 자신을 멀리하면 고독이지만, 내가 남을 멀리하면 자유’라고. 의정 활동은 그 점에서 자유의 결핍이었다. 지역구 행사를 돌아다니며 ‘표를 얻는 것(혹은 유지하는 것)’ 이상의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불출마 결심을 하게 된 순간을 기억한다. 지역구 족구대회를 갔다 나오는 찰나였다. 문득 스티브 잡스의 말이 떠올랐다. ‘오늘이 내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할 것인가’.

 이렇게 소중한 주말, 읽는 책도 특별하다. 예컨대 주중에는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나온 『고통 없는 변화』 같은 책을 읽는다. 속독이 가능하니 차 속에서도 읽기 좋다. 하지만 주말에는 『맹자』 『논어』 같은 고전을 읽는다. 고전은 숙독을 위한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속독을 하고 그 다음에는 중요한 부분을 밑줄 치며 읽는 정독을 한다(이건 고등학교 때부터 공부하던 방식이기도 하다). 그리고 정독한 부분을 필사해 옮겨 적으며 다시 찬찬히 읽는다. 그러니 편한 자세를 할 수 없다. 책상 앞에 허리를 꼿꼿이 세운다. 휴대전화도 절대 받지 않는다. 대신 바흐의 무반주 곡이나 피아노 협주곡을 항상 틀어놓는 것도 습관 중 하나다. 가끔 지루해질 때면 커피를 내려 마시거나 사무실 바로 앞에 있는 카페 ‘데일리 브라운’으로 간다. 고즈넉한 주말 오후, 혼자만의 티타임이다.

히말라야 헬리 스키를 목표로

 다섯 시쯤 사무실을 나온다. 집에 가기 전 반드시 가는 곳은 남산에 있는 헬스클럽이다. 여기서 두 시간가량 ‘고된’ 운동을 한다. 남들처럼 걷고, 뛰고 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주 혹독하다. 아주 치열하게, 쓰러지고 토할 정도의 강도다. 하지만 너무 덥거나 춥지 않을 땐 남산 소파길을 따라 국립극장 주변을 뛰기도 한다. 이때도 속도를 내야 후련하다. 내 주변엔 운동 하면 골프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는 2002년 사업(코리아헤럴드미디어)을 인수한 직후 되레 골프를 끊었다. 오고 가는 시간에다 공 치고 뒤풀이까지 하면 8~9시간씩 걸리는 ‘한국형 골프’를 겪고는 미친 짓이란 생각이 들어서다.

 겨울엔 헬스보단 스키를 즐긴다. 시즌일 땐 1시간만 탈 수 있어도 스키장으로 차를 몬다. 나는 히말라야에서 헬리 스키 타기를 버킷 리스트에 올려놨다. 그때까지 꾸준히 연습 또 연습이다. 올겨울에는 시속 최고 94㎞까지 달려봤다. 100㎞ 목표가 얼마 남지 않았다.

 달리기든 스키든 땀을 내고 집에 돌아와 가족과 저녁을 먹는다. 가끔씩 외식도 한다. 외국에서 오래 살다 보니 프랑스·이탈리아 음식을 특히 즐긴다. 단 식당을 정하는 데는 원칙이 있다. 격식 없고 소박한 레스토랑이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선 맛보다 분위기로 ‘허세’를 부리는 곳이 많다는 게 불편하다. 이미 구미에 맞게 찾은 식당이 몇 곳 된다. 집에서 가까운 가회동의 ‘피제타’란 피자집이다. 맛도 맛이지만 피자 1조각과 음료수를 1만원 내에서 해결하는 곳. 공간도 아늑해서 가족 혹은 연인이 도란도란 얘기 나누기 좋다. 몇 번 드나들며 주인 부부와도 친분을 쌓다 보니 가끔은 아이들을 주방에 들어가게 허락해 줄 때도 있다. 그럴 땐 돈 주고도 배울 수 없는 즉석 요리 실습이 벌어진다. 여기와 비슷한 레스토랑이 청담동에도 있다. ‘비스트로 드 욘트빌’이라는 프렌치 식당이다. 분위기는 캐주얼하지만 맛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

오전 예배 뒤엔 다시 책, 책, 책

 일요일 오전에는 예배를 보러 송파제일교회(송파구 석촌동)로 간다. 부모님을 뵙는 시간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큰 교회를 다니시다 이 작은 개척교회로 적을 옮기셨다. 주말마다 내가 하는 기도는 단 하나. 하늘이 내게서 원하는 비전이 무엇인지 보여달라는 것이다. 내게 기도는 뭔가 들어달라는 ‘구걸’이 아니라 하늘에 대한 ‘순종’일 뿐이다.

 부모님과 점심을 먹고 나면 토요일 스케줄과 큰 차이가 없다. 다시 두 시쯤 사무실행. 독서와 운동 그리고 가족과의 저녁. 이후 아이들 숙제를 잠깐 봐 주는 정도나 추가되려나. 특히 문학·철학과 관련된 주제나 시를 짓는 과제는 함께 할 때가 많다. 언젠가 초등학생인 둘째가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느냐고 물어서 이런 대답을 해줬다. ‘사람을 읽으려면 한비자를, 사람을 이기려면 손자병법을, 사람을 다스리려면 논어를, 사람을 구하려면 성경을 읽어라’라고. 한데 그 뒤로 추가 질문이 없다.

 그럼에도 누군가 지금 ‘요즘 어떤 책을 읽을까요’ 묻는다면 권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먼저 정치 컨설턴트인 박성민씨가 쓴 『정치의 몰락』이다. 제목은 정치지만 사실 보수의 논란을 다룬 책이다. 왜 정치가 죽어가고 국민들이 국회를 불신하는지에 대한 분석이지만 아주 편하게 읽힌다. 자극적이고 선동적으로 기성 정치를 비판하는 요즘 책과 달리 굉장히 정제돼 있다. 그리고 또 한 권, 헤르만 헤세의 『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다. 나는 봄이 되면 이 책을 늘 다시 펼친다. 자연과 가족, 사랑에 대해 쓴 수필집인데 너무나 아름다운 글이라 봄날 좋은 날씨에 읽으면 마음이 절로 정화된다. 이번 주말, 독서와 사색으로 색다른 시간을 즐겨보면 어떨지. 

‘아름다운 주말’ 속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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