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March 21, 2015

미래의 기술


정지훈 초등학교 때 8비트 컴퓨터를 접한 후 IT와 미래기술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우리나라에서 발간하는 <마이크로소프트웨어>지에 컴퓨터 프로그래밍 등에 관한 원고를 기고했다.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대학원에서 의공학 박사 학위를 받고 관동대 의대 융합의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의사, 교수보다 ‘미래학자’라는 타이틀을 좋아할 만큼 미래 기술에 대한 관심이 많다. 저서로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내 아이가 만날 미래>, <스마트 IT, 스마트 혁명> 등이 있다.
정지훈 교수의 트위터(twitter.com/hiconcep)와 페이스북(twitter.com /hiconcep)은 ‘신기술 허브’다. 세계 최대 온라인 서점 아마존이 영국 최고 연구자를 섭외해 시애틀과 영국 케임브리지에 만든 연구센터에서 드론 유통 서비스를 실험하고, 미국의 신생 기업 ‘나이트스코프 nightscope’가 패트롤 로봇을 선보인다는 소식 등 ‘미래 뉴스’가 끝없이이어진다. 저 멀리 우주정거장 ISS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여주는 2분 50초짜리 영상, 자전거에 얼음 바퀴를 달아 타고 다니는 청춘들의 모습도 재미있다. 그렇게 그의 SNS와 접속하면 무심코 스크롤바를 계속해서 내리게된다. 먼 이야기든, 가까운 이야기든 미래는 언제나 매혹적이다. 관동대 의대 융합의학과 교수에서 최근 경희사이버대학교 모바일융합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긴 정지훈 교수는 “이런 기술과 시스템을 모든 사람이 알고, 이해하며, 사용할 필요는 없다. 옛날 방식대로 살아도 잘살 수 있다. 다만 기술이 여러 가지 신기하고 재미있는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만은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어느새 일상 가까이 성큼 다가온 대표적 기술은 무엇인가? 
IoT(Internet of Things), 즉 사물 인터넷이다. 사물끼리 인터넷으로 연결돼 정보를 실시간으로 주고받는 시스템. 기존 인터넷은 웹에 접속해 정보를 보거나 검색하는 도구였다. 그런데 모바일 폰이 보급되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사람들끼리 네트워크를 맺으면서 수많은 커뮤니티가 형성된 것이다. 이제 인터넷은 사람을 넘어 우리 주변에 있는 사물까지 연결한다. 사물 인터넷은 스마트폰과 달리 분야가 워낙 넓어 한 기업이 기준을 만들기보다 다양한 기업이 인터넷 네트워킹을 보강한 제품을 출시하는 쪽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이 분야에서 가장 각광받는 회사가 ‘네스트Nest’다. 구글이 올해 초 32억 달러(약 3조3800억 원)를 주고 인수한 곳이다. 방 안에 설치하는 냉・온방 컨트롤러로 특정 지역에 설치한 다른 제품과 인터넷으로 연결돼 실시간으로 온도를 관리한다. 에어컨을 켠다고 치자. 보통 오후 2시에 전기 사용량이 가장 많고 할증료가 붙어 전기 요금도 비싸진다. 이를 계산해 한 시간 전에 미리 가동해 피크 타임 때 전기를 덜 쓰게 하는 식이다. 인근에설치한 ‘네스트’끼리 거대한 생명체 집단처럼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받아 최적의 타이밍을 도출하기 때문에 가동 시간은 그날그날 다르다. 전기사용량이 연중 언제 가장 많은지, 사용자의 전기 사용 패턴은 어떤지도 스스로 학습해 반영한다. 네스트는 현재 미국과 영국에서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인공지능’이라면 제품가가 비싸겠다. 
애플 스토어를 통해 구매할 수 있는데 최초 가격은 199달러였다. 우리나라 돈으로 약 20만 원. 하지만 최근에 더 싸졌다. 지역에 있는 전력회사와 연계해 상품을 판매하는 덕분이다. 전력 회사 측에서는 네스트를 무료로 제공하고 소비자에게 에너지 절약 분만큼을 포인트로 돌려준다. 소비자는 이 포인트를 현금처럼 쌓아 기기 값을 갚는 데 사용한다. 

전력회사 측에서 네스트 사용을 권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나라도 경험했지만 잠시라도 ‘블랙아웃’이 발생하면 엄청난 복구 비용이 들어간다. 이를 예방할 수 있는데다 전기 사용량을 분산시킬 수 있기 때문에 안정적 전력 수급과 운용이 가능해진다. 우리나라에도 도입되면 좋겠지만 한국전력공사에서 독점적으로 전력 수급을 컨트롤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미국과 영국, 독일 등에는 지역 기반 전력회사가 수십~수백 개씩 있다. 

컨트롤러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효율적 냉방 시스템을 구축하는 제품은 없나? 
뉴욕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퀄키Quirky’에서 만드는 아로스Aros 스마트 에어컨이 대표적이다. 제너럴일렉트로닉GE에서 생산하는데 ‘네스트’처럼 지역 전기 사용량, 기상 상황 등에 따라 최적의 가동 타이밍을 찾아낸다. 네트워크로 연결돼 더 지능적이고 혁신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품은 올해도 속속 출시될 거다. 이를테면 구글에서 지난해 5억5000만 달러(약 5660억 원)에 인수한 ‘드롭캠Dropcam’ 같은 제품. 가정용 CCTV인 이 제품을 설치하면 집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자신의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방범용으로도 이용 가능하다. 

사물 인터넷이라고 하면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한때 유행한 아파트 광고를 떠올릴 것이다. 귀가 시간에 맞춰 보일러를 가동하고, 불을 밝히는…. 
아파트에 옵션으로 들어간 우리나라의 사물 인터넷은 실패작이다. 분양받을 때 포함돼 있지 않으면 추가 비용을 내 설치하지 않을뿐더러 시공이 돼 있다 하더라도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다. 내가 직접 비용을 지불하고 능동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그 시장은 발전하지 못한다. 사물 인터넷은 건축과 상관이 없다. 사물 인터넷을 내장한 집을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 집이 있는 상태에서 사물 인터넷이 가능한 제품을 사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가정용품을 살 때 이제껏 디자인과 성능 위주로 봤다면 앞으로는 네트워크 연결 가능 유무를 눈여겨보는 문화가 확산될 것이다. 실제 미국 아이들은 스마트폰이나 스마트패드와 연동되지 않는 장난감은 ‘후지다’고 사지 않는다. 

‘스마트 장난감’이란 이를테면 어떤 것인가? 
‘지타gTar’ 같은 장난감. 우리집에도 한 대 있는데 아이폰과 연동해 연주할 곡을 다운받거나 저장할 수있다. 다음에 눌러야 할 줄에 불빛이 들어와 쉽게 연주할 수 있다. 미국의 인시던트Incident라는 회사에서 만들었다. 향후 세계 제조업 시장은 수많은 중소기업이 창의적인 제품을 만드는 쪽으로 바뀔 것이다.

사물 인터넷이 일반화되면 새롭게 뜨는 기업도 생기겠다. 
사물 인터넷은 각종 사물에 컴퓨터 칩과 통신 기능을 내장하는 시스템이다. 실리콘 칩을 만드는 인텔, 퀄컴 같은 회사가 최근 다시 부흥하는 이유다. 삼성전자도 반도체 쪽 사업이 스마트폰 분야보다 좋아지고 있다. 인터넷은 공통으로 제공해야 하니 구글, 아마존처럼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도 큰 수익을 올릴 것이다

세계 사물 인터넷 시장에서 주목받는 우리나라 기업도 있나? 
리버스Reverth라는 회사가 있다.지난 해 ‘리니어블Lineable’이라는 미아 찾기밴드를 만들어 세계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했다. 밴드 가격은 5달러. 14g에 완전 방수, 방진제품으로 블루투스 기반의 실시간 위치 추적기술을 탑재했다. 리니어블 사용자끼리 서로 돕는 시스템. 리니어블 앱을 설치한 수많은 스마트폰과 서버가 연동해 내 자녀는 물론 다른 자녀 위치까지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3D 프린터도 점점 영향력이 커지는 추세다. 
또 한 번의 산업혁명을 일으킬 것이란 전망이다. 의학계에서는 바이러스 항체와 인체 기관까지 3D 프린터로 만드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상용화되기엔 먼 얘기다. 이런 것도 만들어봤다, 하는 정도다. 지금 3D 프린터로 만드는 제품 대부분은 플라스틱이라 내구성이 떨어진다. 대상물을 적층 방식으로 쌓아올리는 시스템인데 건축가, 디자이너가 ‘창작품’으로 선보이는 수준이다. 프린터 가격은 약 200만 원. 신기술에 관심이 많다면 가정에서도 사용할 만하다.

3D 프린터로 무엇을 찍어내나? 
가장 많이 찍어내는 건 아이들을 위한 캐릭터다. 친구에게 준다며 ‘요다’나 ‘토토로’를 프린팅해 달라고 부탁한다. 핀셋이나 컵받침처럼 집에서 필요한 물건을 찍어내기도 한다. 디자이너나 건축가처럼 직접 대상물을 디자인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기술이 없어도 얼마든지 다양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오픈 소스 사이트인 ‘싱기버스닷컴Thingiverse.com’ 같은 곳에 가면 수많은 제품의 ‘도면’을 다운받을 수 있다. 이를 3D 프린터용 소프트웨어로 가져와 크기와 형태 등을 살짝 매만지면 된다. 기기 구입도 쉽다. 우리나라에 오픈크리에이터(www.opencreators.com)란 브랜드가 있다. 대학생들이 창업한 곳인데 레드닷어워드, IDEA 같은 세계적 디자인 어워드에서 상을 많이 받았다. 미국 유명 디자인 회사에 있는 멤버 한 명이 디자인을 맡아 완성도가 높다. 

3D 프린터만 있으면 뭐든 다 찍어내는 것처럼 인식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건 아닐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현재 3D로 찍어내는 제품 대부분은 플라스틱이다. 손톱깎이처럼 높은 강도를 필요로 하는 제품은 못 찍는다. 시간도 많이 걸린다. 컵 하나를 찍는 데 4~5시간이 소요된다. 전기료는 생각보다 많이 들지 않는다. 

일반 프린터 제품들은 잉크를 사용한다. 3D 프린터기는 어떤 원료를 사용하나? 
플라스틱 필라멘트가 있다. ‘PLA’와 ‘ABS’를 가장 많이 쓰는데 열을가하면 녹는 열 사고성 플라스틱이다. 거의 모든 3D 프린터에서 이 두 종류의 필라멘트를 사용한다. ‘PLA’와 ‘ABS’ 사이에는 유연성이나 강도 면에서 미묘하고 복잡한 차이가 있으니 직접 사용하면서 본인이 만들 제품에 더 적확한 것을 찾는 것이 좋다. 

더 다양한 재질의 제품을 보다 빠르게 찍어내는 것이 3D 프린터의 향후 발전 방향이 되는 건가? 
그렇다. 재질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 지금은 플라스틱 위주지만 금속, 폴리우레탄, 나무 등 다양한 재질의 실험이 한창이다. 주물, 압출, 레이저 커팅 같은 방법을 접목해 프린팅 속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8비트 컴퓨터가 처음 보급됐을 때를 생각해봐라. 코딩도 하고, 게임도 하면서 5~10년이 흘렀다. 이후 컴퓨터 속도가 빨라지고 소프트웨어가 많아지고 네트워킹이 구축되면서 어마어마한 혁신이 일어났다. 3D 프린터 역시 컴퓨터처럼 엄청난 혁신을 몰고 올 것이다. 지금 당장 산업혁명으로 이어지진 않겠지만 재료가 다양해지고 품질도 좋아지면서 산업 전반에 적잖은 변화를 몰고 올 거다. 평소 만들고 싶었던 것을 스스로 직접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기술이 표준화되고 획일화되면 몰개성의 디자인이 범람하는 것 아닌가? 
오히려 그 반대다. 표준화 된 디자인에 지친 사람들은 점점 신선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찾을 것이다. 남다른 논점과 관점, 디자인 감각을 가진 사람이 대접받을 것이다. 미래를 크리에이터 혹은 메이커의 시대라고 부르는 이유다. 지금은 몇몇 브랜드가 최고의 제품과 스타일을 제시하고 대중이 따라가는 모습이지만 머지않은 미래에는 내가 직접 만들거나 다른 사람들과 협업한 제품, 이를테면 자신이 만든 팔찌나 목걸이를 걸치는 이가 진정한 패셔니스타로 인정받을 것이다. 3D 프린터로 만든 백이나 구두가 명품 못지않은 자랑거리가 되는 것이다. 

3D 프린터로 찍어낸 제품과 ‘장인’이 만든 제품은 완성도 면에서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기술을 앞세워 재빨리 찍어낸 제품이 장인 정신으로 만든 제품의 완성도와 매력을 넘어설 수 있을까? 
장인 정신은 앞으로도 여전히 유효하고 또 인정받을 것이다. 럭셔리 시계 브랜드에서 단순한 기술만 이용해서는 도저히 만들 수 없는 정교하고 아름다운 제품을 선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다. 반면 중저가 브랜드에서는 IT 기술을 접목한, 뭔가 새로운 제품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삼성, 애플 등 여러 기업에서 출시하고 있는 재밌고 혁신적 기능의 웨어러블시계가 인기를 끌면 지금 같은 단순한 시계로는 더 이상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소비재 시장은 장인이 만든 것과 내가 직접 만든 제품이 뒤섞이는 쪽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내 자신이 뭔가를 할 수 없게 통제해놓은 제품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 사람도 늘 것이다. 

‘두 잇 유어셀프’ 문화는 10여 년 전부터 미래 트렌드나 키워드로 주목받았지만 기대한 것만큼 파괴력이 크진 않다. 
우리나라의 특수한 문화적 상황 탓도 있다. 고려・조선 시대의 직업에 따른 사회 계급, 사농공상士農工商의 폐해가 남아 있어 자신은 가만히 있고 남을 부리는 걸 최고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시작한 ‘메이커 페어Maker Faire’란 축제가 있다.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과학 창작물을 선보이는 자리다. 후원사가 없어 참가비까지 직접 내야 하지만 매년 수십만 명이 참가한다. 오픈 소스를 활용하고, IT 기술을 연동한 제품이 수두룩하다. 아이디어와 시스템을 공유해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선보이는 트렌드는 피할 수 없는, 이 시대의 거대한 흐름이다. 우리나라 역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다

최근 일본 소프트뱅크에서 인간형 로봇 ‘페퍼Pepper’를 올 2월부터 판매한다고 밝혔다. 
키 121cm, 몸무게 28kg의 로봇이다. 가격은 약 200만원. 만만한 금액이 아니지만 부담스러운 가격도 아니다. OS(Operating System)를 개방해 수많은 개발자가 참여하면서 지난 10여년 간 관련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했다. 인간의 어조를 파악해 대화를 나누는 것은 기본. 가슴 쪽에 있는 커다란 디스플레이 창을 통해 여러 가지 앱을 설치하고, 화상 통화에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가정용 로봇 시장은 올해를 기점으로 크게 커질 전망이다. 미국 MIT 로봇공학 연구팀이 만든 ‘지보Jibo’도선주문을 받고 있다. 팔다리 없이 머리와 몸체만 있는 디자인. 애니메이션<월Wall-E>에 나오는 귀여운 외모의 ‘이브’를 모티프로 했다. 역시 인간과 대화가 가능한 이 로봇은 주인이 없을 때 대신 전화를 받고 요리법도 알려준다. 밤에는 아이들을 재우면서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관련 영상도 보여주고 액션도 하면서 최고의 이야기꾼 역할까지 수행한다. 가격은 600달러. 스마트폰과 비슷한 금액이다. 출시는 올해 9월로 예정돼 있다. 로봇 관련 특허 기술을 가장 많이 보유한 기업이 일본 자동차 브랜드 혼다인데 이렇게 신제품을 선보이는 기업이 늘면 기다렸다는 듯 혁신적 신제품을 선보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시장이 커지면 어느 순간 로봇과 함께하는 삶이 일상이 될 거다. 마치 청소 로봇 ‘룸바’가 나온 후에 비슷한 제품이 쏟아져 청소하는 로봇이 하나도 신기하지 않게 된 것처럼. 

<아이 로봇> 같은 영화를 보면 로봇이 인간의 감정을 갖게 되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모습도 나온다. 
하하! 그런 상황이 벌어지거나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상황은 지금 수준으로는 나오기 힘들다. 지금 출시하는 로봇은 명확한 명령과 조작에 의해 움직이는 로봇 컴퓨터에 ‘불과’하다.

구글이 개발한 무인 자동차도 2015년부터 상용화된다고 들었다. 
캘리포니아 도로교통법이 2015년 1월부터 바뀌어 무인 자동차 통행을 승인한다. 대중교통에 무인 자동차를 투입하는 것도 허가한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무인 자동차가 다른 자동차들처럼 시내를 질주하는 것은 아니다. 시속 40km 정도로 속도 제한을 두고 구글 본사와 가까운 곳에서만 시범운행하며 이런저런 위험 요소를 체크하게 된다. 최근 ‘테슬라모터스Teslamotors’에서 선보인 자동차에도 무인 자동차 기능이 있다. 주차는 기본. 자동 주행 모드를 누르면 핸들에서 손을 떼도 자동차가 스스로 알아서 다른 차를 피하고 속도를 조절하며 목적지에 도착한다. 

미래 사회를 이야기할 때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곳이 구글이다. 이 기업이 세상을 움직이는 방법과 방향성은 어떤 것인가? 
구글은 세상을 움직이거나 지배한다는 생각이 전혀 없다. 다만 실험할 뿐이다. 이 거대한 조직은 아메바처럼 움직인다. 누군가 새로운 프로젝트를 제안하면 멤버를 영입하는 ‘영업’이 시작되고 본격적인 진행에 들어간다. 그 과정에서 어떤프로젝트는 없어지고 또 어떤 프로젝트는 세를 불려 세상에 알려진다. 경영진의 승인 없이 세상에 공개되는 경우도 많다. 일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다. 장난치고, 실험하고, 모험하는 문화를 최대한 용인하는 것이 구글의 힘이고 운영 철학이다. 

세계 곳곳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실시간으로 소개하는 모습이 놀랍다. 이런 정보는 어떻게 얻는 것인가? 
‘유튜브’가 답이다. 관심 기술이나 프로젝트에 대한 구체적 키워드를 유튜브에 입력하면 관련 영상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IT 기술, 물리학 등 각 방면을 대표하는 전문가의 SNS를 팔로잉하는 것도 방법이다. 라이코스 전 대표이사 임정욱이 운영하는 웹사이트(estima.wordpress.com)가 대표적으로, 모바일과 웹 트렌드 관련 정보를 살필 때 유용하다. ‘광파리’라는 이름으로 블로그 활동을 하는 <한국경제신문> 김광현 부장의 페이스북(www.facebook.com/kwang8e), <매일경제신문> 손재권 기자의 트위터(twitter.com/gjack)도 추천한다

미래 기술 속에 파묻혀 사는 이가 생각하는 럭셔리한 삶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나는 럭셔리가 뭔지 잘 모른다. 막연히 행복한 삶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할 뿐. 그렇다면 내게 어떤 삶이 행복을 주느냐? 얽매이는 것 없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삶이다. 뭔가 새로운 변화와 기술을 습득해 ‘진화’하는 삶도 중시한다. 새로운 경험을 최대한 많이 하고 싶다.

서울의 건축

보물처럼 지켜야 할 건축 명소 1

전 세계 많은 도시가 비슷비슷해지는 요즘, 서울을 서울답게 만드는 최고의 장소와 공간, 건축물은 무엇일까. 지금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젊은 건축가 37명이 ‘그곳’에 섰다.
창경궁 대온실 네임리스
“서울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다사다난한 역사와 이를 딛고 이룩한 번영이 격렬하게 부딪치는 곳이에요. 과거와 현재, 쇠퇴와 발전, 서양과 동양의 모습이 어지럽게 섞여 있지요. 창경궁 대온실에 가면 그런 역사적 배경이 총체적으로 보여 기분이 묘해져요. 일제가 순종을 유폐하면서 위로를 건넨다며 신축한 건물이 바로 이 대온실이에요. 1909년 건립한 국내 최초의 서양식 온실. 일본인이 설계하고 프랑스 회사가 시공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쓰이지 않던 철골과 유리를 처음으로 사용했습니다. ‘근본’ 없는 구조물이지만 이것 역시 서울을 상징하는 근대 문화유산이라고 생각해요. 벚꽃 문양과 용마루 등 섬세한 디테일과 깨끗한 흰색 구조물의 조화도 뛰어나고요. 온실에는 생달나무, 고사리 등 우리나라 전통 수종과 식물이 많아요. 어딘가 모르게 야무지고 단단한 느낌입니다.”


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는 나은중(오른쪽)·유소래(왼쪽) 건축가. 2009년 뉴욕에서 네임리스 건축을 개소한 후 서울로 사무실을 확장했다. 거대한 레고 블록 2개를 교차해 놓은 듯한 형태의 별내 RW 콘크리트 교회, 남양주에 있는 ‘삼각학교’ 등이 대표작. 간결하고 미학적인 디자인이 특징이다. <설화문화전>에 출품한 활 구조물을 비롯해 다양한 공공예술, 전시, 설치 작업도 진행했다. www.namelessarchitecture.com

수연산방 
김은하

“이태준 작가가 철원 고향 집의 건축 자재를 서울로 그대로 옮겨와 지은 고택입니다. 그의 작품 속에 성북동 집에 대한 묘사가 있는데 이를 바탕으로 1930년쯤 지었다고 추정하고 있어요. ‘문인이 모이는 산속의 작은 집’이라는 뜻의 수연산방壽硯山房은 1900년 초반, 실제 사람이 살던 생활 건축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의미가 있어요. 궁궐 건축과 현대건축 사이의 공백이 큰 서울에서 서민 가옥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귀한 자료가 여전히 숨쉬고 있는 거니까요. 한옥 하면 기와지붕, 처마, 서까래 같은 외관을 이야기하지만 수연산방은 생활의 편의를 위해 시도한 합리적인 내부 구조를 보는 것이 더 흥미로운 건축이에요. 1930년대까지만 해도 집은 남녀의 공간이 나뉘어 있었는데, 이곳은 성별을 초월한 집약체예요. 특히 누마루는 안방이자 사랑채로 사용한 ‘멀티룸’이죠. 창호가 아닌 유리로 창을 마감한 것도 놀랍습니다. 가장 재미있는 것은 화장실이에요. 당시 본체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곳은 마루와 연결돼 있어요. 2000년대에 등장한 ‘모던 한옥’의 시초죠.” 


강원도 원주의 단독주택 사랑재와 선유리 도시형 생활 주택 등 주거 프로젝트를 진행한 비원 파트너스의 김은하 소장. 현재 서울특별시건축사회 교류협력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1900년대 서민 가옥 연구와 복원 사업을 기획하고 있다. www.beonarchi.com

서울스퀘어 
이호락

“서울스퀘어는 서울역에서 나왔을 때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건물로 서울의 첫인상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드라마 <미생>으로 주목받은 건물로 ‘원 인터내셔널’ 본사죠(웃음). 1977년 지상 23층, 연면적 13만 2806m2(4만174평) 규모로 완공된 국내 최대 빌딩 중 하나로 당시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이 건물의 위용에 위축되곤 했죠. 서울 고도성장의 상징이던 건물이 2007년 모건스탠리에 매각되면서 레노베이션을 했습니다. 당시 첫 설계안을 보면 외관이 아주 전위적이고 화려해요. 자금 문제가 얽히면서 담백하고 차분한 디자인으로 변경되었는데 오히려 잘된 케이스라고 봅니다. 벽돌을 채택해 본래 붉은빛 외관을 유지하고,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 측면의 지하 통로는 그대로 뒀습니다. 통로와 지하 분위기가 이어질 수 있도록 내부 역시 벽돌로 마감하고요. 무작정 새 빌딩을 세워 올리기에는 공간이 더이상 부족한 현재의 서울이 어떻게 도시를 다듬으면 좋을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해요” 


정림건축에 재직 중인 이호락 건축가는 수원화성박물관, 이화여자대학교 디자인관, 경주대학교 공학관 등 굵직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실무 경력을 쌓았다. 서울 낙산에서 자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소규모 레노베이션 등 ‘작은 건축’에도 관심이 많다. www.junglim.co.kr

테헤란로
 백준범

“1972년부터 논밭을 개발해 조성한 곳이 테헤란로입니다. ‘IT 밸리’를 구상했지만 IMF 이후 금융·보험 회사들이 자리를 잡았죠. 혹자는 테헤란로가 외국 자본과 외국인 건축가가 결탁해 세워 올린 빌딩 숲에 불과하다고 폄하하며 우리 문화는 없다고 단언하지만 저는 좀 다른 생각입니다. 테헤란로는 서울 모던 건축의 시작점이에요. 초고층 빌딩에 대한 노하우와 기술이 전무하던 시절 테헤란로는 서울 빌딩의 지침이자 교본이었습니다. 경제 발전 속도와 건축 성숙의 속도가 비례하지 않던 시절 이곳이 없었다면 서울의 빌딩 문화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최근에는 한국 회사들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도 많고, 해외에서 실무를 쌓은 건축가들의 움직임도 활발합니다. 개인적으로 포스코 빌딩을 가장 좋아해요. 두 개 동을 나눠 브리지로 연결한 구성이 간결하고 무엇보다 비율이 절묘합니다. 지방이 아닌 탄탄한 근육으로 무장한 덩치 좋은 남자, 날렵하기까지한 야구 선수 같은 느낌이에요.”


하버드 대학교 건축학과 석사 과정을 마친 백준범 건축가. 노먼 포스터의 ‘포스터 앤드 파트너스’에서 근무했으며 버진 갤럭시 우주 항공기지 ‘스페이스포트 아메리카’ 프로젝트를 총괄했다. 현재 창조건축 상무로 재직 중이며 모바일 건축 ‘BMW 7시리즈 모빌리티 라운지’를 선보이는 등 혁신적인 건축에 대한 관심이 높다. www.cja.co.kr

우사단길
 하태석

“이태원역을 중심으로 큰길가 반대편 쪽으로 오면 우사단길이 펼쳐져요. 이슬람 사원부터 도깨비 재래시장까지 이르는 길인데 다양한 공방과 디자인 숍이 철물점, 미장원과 사이좋게 섞여 있지요.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된 건 이 일대가 몇 년 전 재개발 구역으로 묶이면서부터예요. 개발이 진행되면 가게를 비워줘야 해 임대료가 낮게 책정됐고 덕분에 디자이너와 아티스트가 모여들면서 하나둘 재미있는 점포가 늘어났지요. 아티스트의 재능 기부 프로젝트도 심심찮게 일어나요. 도깨비시장에 가면 초입 도로와 점포 천막을 “여기로 오세요” 하는 텍스트와 그림으로 화사하게 바꾼 모습을 볼 수 있어요. 건축주와 상인, 주민과 아티스트가 함께 만든 공간과 프로젝트가 도시를 더욱 살기 좋고 재미있게 만들어요. 함께하는 과정에서 차별화된 디테일과 이야기가 생기지요. 우사단길이 매력적인 또 다른 이유는 큰길 주변으로 골목길이 많다는 거예요. 길 안쪽으로 들어가면 다양한 형태의 지붕과 계단, 공터가 만드는 또 다른 풍경이 마법처럼 펼쳐져요. 지대가 높아 가슴이 뻥 뚫리는 듯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건축 프로젝트에 각종 IT 기술을 접목해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이끌어내는 건축가. 2010년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서는 앱을 통해 시민들이 직접 자신이 살 집을 선택하고 이 결과가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미분 생활 적분 도시’를 선보였다. 건축사무소 SCALe, 젊은건축가포럼코리아를 이끌고 있다.

서울성곽
 어번 디테일

“독일과 한국 국적의 건축가 셋으로 구성된 우리가 만장일치로 선택한 곳이 서울성곽입니다. 조선 건국과 함께 건립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데다 지형의 70%가 산인 서울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덕분이지요. 서울성곽은 산의 능선을 따라 축조한 건축 유산으로 이곳에 서면 서울이 어떤 형태로 잉태되고 발전했는지가 한눈에 들어와요. 산 중턱까지 들어선 주택을 보면 고저高低를 가리지 않고 구석구석 스며드는 강물 같다는 생각이 들지요. 기록에 따르면 과거 한양 인구가 약 20만 명이었다고 해요. 어마어마한 규모로, 당시 독일에는 이렇게 큰 도시가 없었습니다. 서울성곽을 찬찬히 보면 한국인의 미감과 자연관도 읽혀요. 도성을 방어할 목적으로 지었지만 위압적인 구석이 전혀 없어요. 산세를 따라 있는 듯 없는 듯 자연스럽게 자리잡고 있지요. 그렇다고 기능성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에요. 안쪽에서 보면 낮아 보이지만 바깥쪽에서 보면 이미 충분히 높이 자리하고 있어 공략이 쉽지 않지요. 서울성곽은 백악산 구간(창의문~혜화문), 낙산 구간(혜화문~광화문), 인왕산 구간(숭례문~창의문) 등 총 네 구간으로 이뤄져 있는데 시간이 될 때 쉬엄쉬엄 걸어보세요. 서울이 한층 더 역사적이고 아름답게 느껴질 겁니다.”


독일 출신의 건축가 다니엘 텐들러Daniel Tandler(오른쪽)와 한국 출신의 최지희(가운데), 김원천 소장(왼쪽)이 팀을 꾸린 어번 디테일. 젊은 건축가들의 그룹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도시형 한옥 설계와 레노베이션에 특히 강하다. 명륜동에 있는 한옥을 개조해 사무실로 사용하며 가구도 직접 디자인한다. www.chamooree.com(제작중)

노량진수산시장
 오브라 아키텍트

“노량진수산시장은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예요. 기차역이나 다리, 도로만큼이나 중요한 서울의 ‘기반 시설’이지요. 서울 특유의 ‘푸드 솔food soul’도 느껴지고요. 뉴욕에도 이렇게 큰 소매시장은 없습니다. 시장 보는 것을 즐기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며, 매사에 흥정을 하는 서울 사람들이 있기에 이런 시장도 자리 잡을 수 있는 것이겠지요. 도심에 이렇게 거대한 시장이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건축적으로도 인상적이에요. 식빵처럼 툭툭 자른 콘크리트 구조물 몇 개로 뼈대를 잡고 그 안에 수많은 상점과 식당, 길을 냈지요. 그 공간 안에서 상인과 고객 간에 활발한 거래가 일어나고요. 20세기 초에 유행한 건축 스타일인 ‘모던 건축’의 정신은 과도한 장식이나 과시를 지양하고 건축물에 내재된 본연의 목적과 실용성에 충실한 것이 특징이에요. 건축가나 건축주보다는 그 건축물을 사용할 사람들을 중요시하지요. 노량진수산시장에 오면 진정 좋은 건축이 어떤 건지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뉴욕과 베이징, 서울에 사무실을 둔 건축 집단. 대표를 맡고 있는 파블로Pablo(오른쪽)는 아르헨티나 출신, 제니퍼 리Jennifer Lee(왼쪽)는 재미교포 2세로 둘 모두 리처드 마이어, 스티븐 홀 등 세계적 건축가 사무실에서 일하며 경력을 쌓았다. 김수근 프리뷰상 수상작으로, 중국 베이징 외곽에 있는 산허 유치원 등 전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작업물을 선보이고 있다. 장식성을 최대한 배제하고 실용성을 강조한 설계가 특징이며 ‘예술적’ 건축을 지향한다. www.obraarchitects.com

Tuesday, March 10, 2015

인재를 잃고 있다

우리나라 최고의 스시 장인 중 하나로 꼽히는 김원일(58)씨가 ‘천재 비자’로 불리는 ‘O1’ 비자를 받아 3월2일 미국으로 출국한다. 한국에서 요리를 접고 미국에 새 둥지를 튼다는 얘기다.

미 국토안보국이 규정한 ‘O1’비자는 ‘과학, 예술, 교육, 체육 등의 방면에서 특별한 능력이나 성취(Extraordinary Ability or Achievement)가 있는 사람에게 부여하는 비자. 비자 자격요건을 보면, ‘노벨상 수상이나 이와 동등한 자격을 갖춘 경우’, ‘아카데미상, 에미상, 영화감독 조합상 수상자나 이에 상응하는 수준의 자격을 갖춘 자’ 등이다. 현재 미국에서 약 9000명에게만 발급됐으며, ‘천재 비자(Genius Visa)’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출국 나흘 전 경기도 분당에 있는 그의 식당에서 만났다. 식당은 이미 폐업한 상태타.

―왜 미국으로 떠나는가.
“97년 이 자리에 식당을 열고, 요리학교를 개교하는 게 꿈이었다. 94년 도제식 요리학원을 열었지만, 엄격한 교육 때문에 제자들에게 3번이나 소송을 당했다. 그래도 계속하고 싶었는데 교육부에서 인가를 내주지 않았다. ‘악법도 법이니 지켜야 한다’며 규정상의 이유로 정식학교를 허가해 주지 않았다. 내 부족한 탓이었겠지만, 여기서는 더 이상 내꿈을 펼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이런 비자가 있는지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언제부터 비자를 준비했나.
“미국 변호사를 만났는데, ‘당신 정도면 충분히 O1비자를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지난 1년간 준비했다. 내 책, 언론에서 나를 다룬 내용 등 나에 관한 모든 자료가 필요하다고 해서 미국으로 자료를 부치는데만 480만원이 들었다. 지난 1월2일자로 비자가 나왔다. 그는 지난 2010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도 “차라리 뉴욕에 가서 진검승부를 해볼까 싶다”고 했다.

 우리나라 초밥 장인 중 최고 수준으로 꼽히는 김원일씨가 2일 미국으로 떠난다. 사진 위는 2010년 그가 운영하는 일식당에서의 모습. 아래 사진은 2월27일 그가 마지막으로 식당에 들러 주방을 정리하는 모습이다.
 우리나라 초밥 장인 중 최고 수준으로 꼽히는 김원일씨가 2일 미국으로 떠난다. 사진 위는 2010년 그가 운영하는 일식당에서의 모습. 아래 사진은 2월27일 그가 마지막으로 식당에 들러 주방을 정리하는 모습이다.
―한국에서 식당하면서 무엇이 가장 좌절이었나?
“우리 식문화다. 값싸고 푸짐한 식당도 있고, 제대로 맛을 내는 미식가를 위한 최고급 식당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싸고 푸짐한 식당’이 유일한 미덕으로 꼽힌다. 벤츠타고 와서도 우리 식당 가격을 보고 돌려 나가는 사람도 있다. 일식당에서는 일명 쓰끼다시(곁들임요리)가 많아야 손님이 좋아한다. 정작 본 요리가 나오면 배불러서 먹지 못한다. 그런데도 맨날 ‘싸고 푸짐한’ 얘기만 한다. 텔레비전이나 신문도 문제다. 그게 유일한 가치인 것처럼 가르친다.”

―그래서 김원일 식당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초밥에 회가 너무 작다’ ‘요리사가 손님을 가르치려고 든다’고 욕을 했다.
“생선 15g, 밥 20g을 합쳐 35g으로 만든 초밥이 제대로 된 초밥이다. 초밥이 입에 들어갔을 때 밥이 타액을 흡수하면서 맛이 결정 나는 거다. 생선은 약 8㎝가 적당하다. 생선 큰 것을 좋아할 거면 생선 먹고, 밥한숟가락 먹으면 된다. 그래서 그렇다고 얘기를 하다가 흥분도 하고 그랬다.” 지난 인터뷰에서도 그는 ‘상도(商道)가 있으면 손님에겐 객도(客道)가 있어야 한다’고 얘기했다. 프랑스 레스토랑에서는 풋고추랑 된장 달라는 말을 하지 않으면서, 일식집에서만 그런 것을 찾는 건 요리를 죽이는 일이라는 것이다.

―또 어떤 점이 섭섭했나.
“싼 재료라도 최고의 맛을 내는 게 요리다. 이를테면 ‘무로 만든 후식’ 같은 것이다. 덜렁 멜론 한 조각을 내놓으면 ‘비싼 집이다’ 하지만 무를 조려 후식으로 만들면 ‘비싼 집에서 무를 후식으로 내놓으냐’ 하고 화를 낸다. 멜론 한 조각 내는 것보다 훨씬 공이 많이 드는 일이다. 외국인들은 ‘무에서 어떻게 이런 단맛이 나는가’ 묻고 또 묻는다.”

―이 식당의 요리는 수준급이지만, 손님이 많지 않아 걱정스러웠다. 그나마 번 돈은 책10여권을 내는데 많이 쏟아부은 것 같은데.
“책 17권을 내는데 약 20억원이 들었다. 이런 책이 나와야 서점에 가면 내 책은 저 아래 장 속에 넣어놓고, 위에는 ‘오천원으로 요리하는 법’류의 책들만 진열해 놓더라. 그래도 식당을 찾는 손님들이 있어, 애들 공부시키고, 책도 냈다. 미국에서 일본 식당하는 사람들이 내 책 보고 요리를 했다고 하더라. 미국에가면 그 책들부터 영어로 번역해 출간할 계획이다. 변호사가 미국측 출판사와 접촉 중이다.”

―미국에 가면 무엇을 할 생각인가.
“워싱턴에다 식당을 낼 생각이다. 거기서 한 상에 2000만원짜리 요리를 내는 최고급 식당으로 승부를 내 보겠다. 그걸로 돈 벌어 미국 50개 주에 내 요리학교를 세우는 게 목표다.”

―미국에서 일식이라면 이미 ‘노부(Nobu)’레스토랑의 마쓰히사 노부유키(松久信幸) 같은 일본인이 꽉 잡고 있는 게 아닌가.
“미국 LA에서 할리우드 스타들이 찾는 일식당을 하는 후배가 내가 미국간다고 했더니 긴장된다더라. 그 식당이 1인분에 500달러다. 뉴욕에서 노부에서 나도 먹어봤는데, 요리로는 내가 앞설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여기서 장사가 잘 됐으면, 미국으로 떠나지 않았을텐데 아쉽다.
“내가 부족한 것도 있었고, 우리 식문화에 대해서도 섭섭한 게 있지만 꼭 그래서 떠나는 건 아니다. 올해 우리나이로 쉰아홉이 됐다. 예순부터 새 인생에 도전하는 것, 꼭 해보고 싶었다. 응원해 달라.



김원일은
57년 생. 부산에서 고교 졸업 후 부산 코모도 호텔 주방일을 시작했다. 일본으로 건너가 아베노쯔지 조리사전문학교, 대학원 다녔다. 일본 도쿄의 고급 레스토랑 ‘퀸 엘리스’에서 일했고, 사장이 끊어준 비행기 표를 들고 프랑스로 건너가 식당에 취직, 프랑스 요리를 배웠다. 1997년 경기도 분당에서 테이블 세개로 식당을 시작해 미식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아왔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