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January 30, 2022

안철수

 스타트업 성장을 돕는 스타트업 인터뷰 시리즈 ‘스타트업 취중잡담’은 대선 후보들을 초청해 스타트업 대표들과 대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인생 선배로서 스타트업 대표들에게 조언도 하고, 창업 정책도 밝히는 자리인데요. 첫 회로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와 ‘피카타임’을 진행했습니다. 스웨덴에서 유래한 피카(Pika)란 커피를 매개로 사람들과 대화하고 경험과 취향을 나누는 시간을 뜻합니다.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영상으로도 만나보시죠.

세 명의 스타트업 대표들과 안철수가 만났다. 이들은 정치인 안철수가 아닌 벤처창업 선배 안철수에게 고민거리를 털어놓고 여러 질문을 던졌다. 안철수 후보에게 창업 고민거리를 털어놓은 이들은 기능성 깔창을 개발한 워킹마스터 기희경 대표, 가정용 성병검사 키트를 만드는 체킷 박지현 대표, 미세전류로 미생물막을 제거하는 특허기술로 창업한 프록시헬스케어 김영욱 대표다.

안철수 후보가 벤처회사를 이끌던 게 벌써 20여년 전이니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안 후보 본인도 ‘나 때와 지금은 다를텐데’라며 우려하기도 했으나 후배들과 공감할 수 있는 일화 위주로 조언했다. 벤처창업 선배의 경험이 스타트업 대표들에게 적어도 다양한 선택지를 줄 순 있을 거다.

1월 27일(목) 공개된 영상에서 스타트업 대표들과 안 후보가 나눈 이야기를 정리했다.

직원 월급도 못 주는 데 100억원 거절

안 후보가 가장 먼저 만난 스타트업은 기능성 깔창을 개발한 기희경 워킹마스터 대표다. 안 후보는 달리기에 관한 책을 냈을 만큼 달리기 마니아다. 그는 달리기를 취미로 갖게 된 이유로 “처음에 맘이 너무 괴로워서 잊기 위해 무작정 걷기 시작했는데, 그게 달리기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달리다 보면 땀에 절고, 심장은 터질 것 같고, 팔다리는 천근만근 무거워지는데, 그러면서 근심거리를 잊게 된다”고 덧붙였다.

기 대표는 올해로 창업한 지 5년이 됐는데, 요즘 고민거리로 ‘데스밸리’를 들었다. 데스밸리(Death Valley)란 스타트업이 외부 자금 유입을 받지 못해 시행착오를 겪는 시기를 말한다. 이 시기를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데스밸리에 빗댄 것이다. 통상 창업 3~5년차에 나타나며, 흑자를 내기 전까지 기간을 데스밸리로 보기도 한다. 기 대표는 깔창과 신발이라는 제조업 특성상 인건비가 높고, 코로나 감염병 여파로 공장 가동을 하지 못해 자금이 부족한 죽음의 계곡에 빠진 것이다.

‘회사 운영 시절 데스밸리 경험을 들려달라’는 질문에 안 후보는 1995년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 연구소 설립 후, 2~3년이 지났는데도 계속된 적자 직원 월급조차 주지 못 할 때는 예시로 들었다. 은행 대출을 알아보러 다닐 때 실리콘밸리에 있는 세계 1위 백신 회사가 그를 찾아와 ‘1000만달러 줄 테니 팔라’고 한 것이다. 잘 알려진 ‘100억원 인수 제의’ 일화다. “알고 보니 우리 회사 가치가 100억원이 아니라, 백신 시장이 앞으로 성장할 거고 한국에는 우리 회사밖에 없으니까 우리를 인수해서 제품을 없애면 한국 시장을 다 가질 수 있을 거라 본 것이었어요. 우리나라를 우리 군대가 보호해야지 남의 군대가 보호해줄 수 없잖아요. 거절하고 그다음 날부터 은행에 또 돈 꾸러 다녔네요.”

호기롭게 인수 제의를 거절했지만, 당장 회사 사정이 나아진 건 아니었다. 안 후보는 컴퓨터 백신 V3를 기업을 대상으로 한 B2B 사업으로 확장했을 때도 회상했다. 컴퓨터 바이러스 치료를 위한 프로그램은 다른 소프트웨어와 제작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든다. 안 후보는 “예를 들어 문서 작성 프로그램이라면 개발 후 유지보수비용이 별로 들지 않지만, 컴퓨터 바이러스는 매일 수천 개씩 새로 쏟아져 나와 매번 새롭게 만들어야 해 비용이 어마어마하다”고 했다. 이어 “당시 해결책은 ‘1년 사용료’를 받는 것이었는데, 기업을 설득하기 쉽지 않았다”며 “4~5년 걸렸다”고 했다.

당시 안 후보가 기업 고객을 설득한 방법은 기업 입장에서 유리한 점, 이득이 되는 부분을 강조한 것이었다. ‘V3를 쓰면 컴퓨터 바이러스 치료, 보안에 드는 경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지금까지 무료 배포하던 소프트웨어가 상업적으로 성공한 사례는 V3가 유일하다 평가 받는다.

안 후보는 데스밸리를 극복하기 위해 책 하나를 추천했다. 제프리 무어의 ‘Crossing the Chasm(고비를 넘어서)’이라는 책이 있다. 그는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이 데스밸리를 어떻게 넘었는지에 관한 내용”이라며 “캐즘(Chasm), 절벽을 넘어야 사람들이 제품을 많이 찾는 주류 시장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딱 한 번의 광고비’밖에 없었던 안철수가 내린 선택

다음으로는 가정에서 성병 검사를 하고 원격으로 진단을 받을 수 있는 키트 ‘체킷’을 개발한 박지현 대표와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나라에선 원래 의사가 비대면으로 진료를 보고 약을 처방하는 원격진료가 불법이나, 코로나 감염병 여파로 한시적 허용됐다.

안 후보는 한때 원격진료에 부정적 입장이었는데, 최근엔 빠르게 자리 잡고 있는 원격진료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원격진료에 대한 의견을 묻는 말에 안 후보는 “지금이 한시적이긴 해도 세계적으로 시장이 커지고 있는 추세니까, 우리도 언제까지 닫아 놓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스타트업 체킷의 고민은 ‘성병 검사 키트’라는 낯선 제품 그 자체였다. 박 대표는 “외국에선 성병검사를 하는 게 자연스러운데, 우리나라에선 쉬쉬하는 분위기는 물론 병원 가는 것 자체를 꺼린다”며 “성병 검사를 맘 놓고 받게 하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는 창업 계기를 밝혔다. 이제 막 생기기 시작한 시장이지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박 대표는 제품을 무료로 배포하는 것을 고려 중이라며 안 후보에게 V3를 무료로 배포했던 배경을 물었다.

이에 대한 안 후보 답변은 이랬다. “그땐 목적이 있었던 게 아니에요. 제 의학논문 잘 쓰려고 컴퓨터 공부를 좀 했는데, 그때 하필 제 컴퓨터 90%가 바이러스에 감염이 돼버린 거예요. 아무도 이걸 치료 못 한다고 하니까 제가 분석이라도 해볼 요량으로 봤는데 생각보다 쉽게 치료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밤새워서 만든 게 백신 V3 시작이에요. 그게 1988년이니까 33년전. 주변에서도 컴퓨터 바이러스 때문에 고민인 사람이 많으니까 무료 배포하기 시작한 건데, 점점 많은 사람이 쓰니까 계속 무료 배포를 했죠. ‘아 나도 드디어 사회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돈 벌 생각보다는 그냥 그 자체가 기쁨이었죠.”

마케팅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성병 검사 키트처럼 컴퓨터 보안 백신도 당시 낯설었는데, 이를 알리기 위해 어떤 전략을 폈냐는 것이다. 안 후보는 회사 이름은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에서 ‘안철수연구소’로 바꿨던 시기를 말했다. “안랩이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회사로 시작했지만, 나중엔 종합 보안회사로 확장했어요. 그래서 이름을 바꿨죠. 그런데 여전히 우리 회사를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회사로만 아는 거예요. 당시 신문 광고 효과가 좋을 때라, 광고를 내야겠다 싶긴 했는데 문제는 광고를 딱 한 번 할 비용밖에 없었어요. 고민하다가 제 머리를 무지개색으로 염색했어요. 광고카피는 ‘안철수가 변했다.’ 회사가 변한다는 건 CEO가 변하는 거랑 마찬가지니까요.”

세 명의 스타트업 대표들은 모두 슬럼프 극복법, 힘들 때 어떻게 스트레스를 푸는지를 물었다. 한 회사를 운영하는 대표는 어디 가서 고민을 털어놓기가 어렵다. 직원들에게 어려움과 힘듦을 토로하면, 회사 전체가 동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 후보는 회사 수장은 두려움과 걱정을 드러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보험 외판원이 회사를 찾아왔던 일화를 들었다. “직원이 20여명일 때인데, 영업하는 분이 수완이 너무 좋아서 전직원이 보험 가입을 한 거예요. 근데 걱정되더라고요. 1년 뒤에 이 회사가 안 망할 자신이 없어서요. 그니까 1년 뒤에는 보험료 납부를 못할 거 같은… 하지만 속으로 한 생각일 뿐이었죠. 직원들한테 절대 얘기하면 안 되죠.”

안 후보는 사업하면서 남과 절대 비교하지 말라고도 강조했다. “한 번은 직원들 다 퇴근하고 밤에 혼자 남아서 회계장부 검산을 하고 있는데,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나’ 싶더라고요. 지금 의사 친구들은 존경받으면서 가족들과 좋은 시간 보내고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그때 결국 내린 결론은 ‘다른 사람하고 비교 안 한다’예요. 그런 생각이 들 땐 내가 지금까지 해온 걸 다시 되돌아봤어요. 그럼 힘이 되더라고요. ‘그래도 여기까지 왔구나’ 싶어서.”

‘돈 주세요’ 바짓가랑이 붙잡고 뻗치기 한 사연

마지막으로 등장한 김영욱 프록시헬스케어 대표는 의대 출신 전자공학박사로서 안 후보처럼 안정적인 길을 뒤로하고 창업에 도전했다는 접점이 있다. 직접 개발한 미생물막 제거 기술 ‘트로마츠’를 상용화한 칫솔을 개발했다. 안랩처럼 상장을 꿈꾸는 스타트업이기도 하다.

정치와 사업 둘 중에 뭐가 더 힘드냐는 질문에 안 후보는 “당연히 사업”이라고 했다. 월급 받는 직원들의 생계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사업할 때 가장 힘든 건 ‘수금’이라며 어음깡 일화를 말했다. “기업에 제품을 납품하면 돈을 바로 받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면 이제 돈 받아야 하는 결제권자 집 앞에 가요. 밤늦게까지 뻗치기를 하면 그 사람이 술 취해서 비틀비틀 걸어와요. 제가 가서 바지 붙잡고 돈 달라고 해요. 그럼 동네 창피하니까 내일 아침에 오라고 하죠. 담날 가면 6개월 어음을 끊어줍니다. IMF 전이니까 그때만 해도 1년이 제일 빨리 받는 거였거든요. 그럼 이제 어음 모아 어음깡 하러 가야죠. 이자율이 10%일 때니까 피눈물 났죠. 그래도 하는 수 있나요.”

안 후보는 정치인이 다섯번째 직업이다. 의사, IT전문가, 벤처창업가, 대학교수 다음 직업이다. 마지막으로 세 스타트업 대표가 공통으로 질문은 ‘정치를 하는 이유’로 안 후보는 “늘 두 가지를 늘 고려했는데, ‘잘 할 수 있으면서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일’”이라며 “학부 시절 의료 봉사를 한 것도, 백신을 무료로 배포한 것도, 강단에서 후배들을 가르친 것도 정치인이 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고 했다.

벤처창업가 안철수 다시 떠올리기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는 의사이자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을 직접 개발한 보안전문가다. 지금 어떤 스타트업 창업가와 견주어도 찾아보기 힘든 경쟁력 있는 커리어다.

1988년 서울대 의대 박사과정 재학 중 사용하고 있던 디스켓이 바이러스 ‘브레인’에 감염된 사실을 발견하고 밤을 새우며 치료 프로그램을 만들어 ‘백신’이라는 이름을 붙인 게 계기다. 이후 백신을 무료로 배포하면서 인터넷상에서 젊은 층에게 지지를 얻었다. 한동안 의사이자 백신 프로그램 개발자로 살다, 1995년 의대 교수직을 뒤로 하고 지금의 안랩인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를 창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