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February 9, 2015

금융임원되기

한 번에 수백 명의 신입 직원이 입사하는 금융회사에서 임원이 되는 건 과장을 조금 보태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 매월 실적에 대한 압박감을 이겨내고 꾸준히 성과를 낸 직원 중 선택받은 사람만 금융회사의 ‘별’이 될 수 있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임원 인사에서 국민은행은 10명, 우리은행은 12명, 신한은행은 3명이 임원으로 승진했다. 작년 임원 인사와 비교해 승진자 수가 소폭 줄었다. 금융회사들이 조직 개편을 통해 임원 자리를 줄였기 때문이다. 

올해 임원 인사에서는 지난해 개인정보 유출 등 여러 금융 사고를 거치며 어수선했던 조직 분위기를 추스르고 영업력을 회복하겠다는 금융회사들의 의지가 엿보였다. 국민은행의 경우 지역본부장 출신을 대거 임원으로 발탁했다. ‘영업통’을 중심으로 임원진을 꾸려 영업력 회복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도다.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영업통들이 임원으로 배치되다 보니 상고를 졸업한 뒤 곧바로 입행한 고졸 임원도 많았다. 우리은행은 승진한 12명의 임원 중 4명이 고졸이었다. 국민 기업 외환 하나은행도 상고 출신 임원을 배치했다.

여느 기업과 마찬가지로 금융회사에서 임원이 되면 연봉과 처우가 확연히 달라진다. 은행 임원들은 회사에서 승용차를 제공 받는다. 일반 기업에서 상무급은 종종 기사 없이 차만 제공 받기도 하지만 은행은 상무급도 기사가 딸린 차를 받는다. 차종은 대개 쌍용자동차의 체어맨, 현대자동차의 제네시스, 기아자동차의 K9이다. 
은행장은 주로 현대자동차의 에쿠스를 탄다. 기사와 유류비, 보험료와 고속도로 통행료 등 차량 유지와 관련한 모든 비용이 지원된다. 단, 교통법규를 위반했을 때 무는 범칙금은 개인이 낸다.

또 일반 기업 임원과 마찬가지로 개인집무실에서 일하고, 전담비서가 일정을 관리해주며, 배우자와 본인이 대형병원의 최고급형 건강검진을 제공받는다.
연봉은 천차만별이다. 정부(예금보험공사)가 최대 주주인 우리은행의 경우 상무 2억 원, 부행장 2억5000만 원 등이다. 민간 은행은 성과에 따라 3억 원 이상의 연봉을 받는 임원도 많다. 대학 최고경영자(CEO) 연수 비용을 회사로부터 지원받거나 회사를 대표해 각종 포럼과 세미나에 참석할 수 있는 점도 임원의 특권으로 꼽힌다.

임원으로 퇴직하면 퇴직 이후의 삶을 설계하기도 훨씬 수월해진다. 임원으로 퇴직하면 일정 기간 계열회사의 고문과 자문역을 맡을 수 있고 별도의 사무실을 제공받기도 한다. 한 금융회사의 임원은 “업무가 과중해 힘이 들지만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참여한다는 보람이 더 크다”고 말했다.

공문원에 대해 아라보자

3일 부산도시공사 건설본부장에 임명된 김종원 이사는 1991년 부산도시공사가 출범한 이후 첫 평사원 출신의 임원이다. 부산도시공사가 부산시 산하 공기업이다 보니 그동안 등기임원은 시 공무원 출신들이 맡았다. 이번에도 전임 본부장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부산시 기술직 간부들이 이 자리를 노렸지만 서병수 부산시장이 받아들이지 않아 내부 승진 임원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국내 공기업 임원 중 내부 승진 비율은 30%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치권 인사나 상급 부처 출신의 퇴직 공무원이 낙하산으로 내려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내부 출신이 공기업 사장 자리까지 올라가는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석효 전 한국가스공사 사장은 가스공사 공채 1기다. 조계륭 전 한국무역보험공사 사장 역시 무보 역사상 첫 공채 출신 사장이다. 다만 이들 내부 출신이 공교롭게도 비리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한 공공기관 직원은 “내부 출신 사장들이 경영을 잘해야 후배들에게도 길이 열린다”며 “이들이 개인 비리로 줄줄이 철창신세를 지면서 ‘차라리 관피아가 낫다’는 얘기까지 나온다”고 토로했다. 

공기업 임원 중 여성 임원 수는 일반 기업에 비해 현저히 적다. 기업경영성과 평가 사이트인 CEO스코어가 지난해 8월 발표한 ‘30대 공기업의 남녀 임직원 직급별 분포 현황’에 따르면 30개 공기업의 임원 중 여성 임원은 최연혜 한국철도공사 사장과 홍표근 한국광물자원공사 상임감사위원 등 단 2명이었다. 반면에 지난해 9월 말 기준 30대 그룹 여성 임원은 185명이었다.

공기업에서는 임원이 돼도 엄청난 혜택을 누리지는 못한다.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국전력의 경우 사장과 감사를 포함해 임원은 총 7명이다. 여기에 일반직군 최고위 직급인 ‘1급(갑)’ 중 임원 대우를 받는 직원 5명을 합치면 사실상 임원은 12명이다. 상임이사는 운전사와 함께 기아자동차 오피러스급의 차를 제공받는다. ‘1급(갑)’ 신분의 본부장급 임원은 회사 일이 있을 때마다 회사 차량을 배정받아 쓴다 .

회사생활을 알아보자

원하는 직장에 어렵사리 입사하더라도 그게 다가 아니다. 모 대기업에서 유능하기로 소문난 한 고참 부장은 임원 승진이 안 되는 이유를 최근에야 알았다. 어떠한 윗사람도 일만 잘하는 부하직원을 자기 일처럼 챙겨주진 않는다는 거다. 직장에서 ‘능력’만으론 잘나가기 어렵다. ‘능력 플러스 정치’가 필요한 게 우리 현실이다.》

서울 광화문 사거리 횡단보도를 건너는 출근길 직장인들.


취업 전쟁의 시대, 원하는 직장에 입사하는 것은 명문대에 입학하는 것보다 더 짜릿하다.

물론, 더 짭짤하다. 당장 다음 달부터 통장에 입금될 월급을 생각할 때마다 밀려오는 도도한 행복감. 돈 위에서 파도타기를 하는 나날. 주변의 부러움 가득한 시선은 또 어떤가. 월드 스타, 거의 싸이 급이 된 기분일 것이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 100명 중 입사에 성공하는 사람은 4명이 채 안 된다. 이런 가운데 입사에 성공했다면 우선 이 기분, 만끽하기 바란다. 왜? 오래가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찬물을 끼얹어 대단히 미안한데, 이게 현실이다.

가족 같은 직장은 없다!

신입사원은 진정한 무한경쟁 지대에 들어섰다고 보면 된다. 사느냐 죽느냐, 매일 기로에 설 것이다. 화기애애한 가족 같은 분위기의 직장? 개가 먹어치운지 오래다.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이후 평생직장의 신화는 깨졌다. 비정규직이 정규직 숫자를 상회한 지도 꽤 지났다. 지금 비정규직인가, 아니면 정규직인가. 정규직으로 입사했다면 그나마 기회는 열려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에게 기회는 잔혹하리만치 제한적이다.

신입사원 대부분은 ‘별’을 다는 것을 꿈꾼다. 기업의 별, 임원이 되겠노라 일단 다짐해본다. 그러나 그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 아는 신입사원은 별로 없다. 입사 직후부터 임원 승진을 준비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저 세월이 지나 부장 정도까지 올라가면 기회가 열리지 않을까 막연히 기대해볼 뿐이다. 그 즈음에 준비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럴까? 아니다.

몇 해 전 한 글로벌 대기업에서 사내 정치(office politics)와 관련해 강의를 했다. 강의 후 수강생들과 식사를 하는데 한 분이 다가왔다. 그는 명문대 출신으로 입사 초기부터 일을 열심히 했고 인정도 받았지만 부장에 멈춰 이사 승진을 못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스스로 원인을 분석해보니 ‘사내 인적 네트워크 부족’이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했다. 그래서 이런저런 모임에 참가해왔다고 한다. 


“그걸 이제 알았냐?”

그런데 얼마 전 임원이 된 입사동기를 만나 “요즘 인적 네트워크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을 때, 그 동기가 한 대답에 충격을 받았단다. 

“나는 신입사원 때부터 그걸 알았는데, 넌 이제 알았냐?”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포인트는 바로 이것, 신입사원 때부터 ‘그걸’ 알았다는 점이다. 미리 인적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갖추려고 노력해온 사람은 임원 승진을 한 반면, 그렇게 못한 사람은 만년 부장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불편한 진실! 유념할 일이다.

정치에서도 국회의원이 3선 정도에 도달하면 프로야구의 1군, 2군처럼 운명이 갈린다. 1군은 대통령후보군이다. 2군은 국회 상임위원장 후보군이다. 초선 시절 그들 간엔 큰 격차가 없었다. 스펙 면이나 역량 면에서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언젠가 대통령에 도전해보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는 면에서도 차이가 없다. 무엇이 그들의 운명을 갈라놓을까. 운? 노력? 역시 노력이다. 

10년 정도 집중해서 한 가지 일만 하면 자연스럽게 달인이 된다. 그러나 집중하지 않고 이일 저일 하면 달인이 되지 못한다. 국회의원은 유능한 보좌진을 둬야 하고, 의원들 사이에서 자기 영역을 넓혀가야 하며, 언론과 대중에게 좋은 이미지로 어필해야 한다. 결국 정치란 사람 장사이고 정치인은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 

신입사원 시절에는 입사동기들 간에 스펙 차이나 역량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특히 공채를 거친 경우에는 더 그러하다. 임원을 꿈꾼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없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임원에 오르는 사람은 100명 중 1명도 안 되는 0.8%에 불과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2011년 11월 발표한 ‘2011년 승진·승급 관리 실태조사’ 결과가 그렇다. 대기업은 0.6%다. 

여성이라면 확률은 더 떨어진다. 삼성전자가 2012년 6월 발표한 ‘2012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말 기준 이 회사 전체 임원 중 여성의 비율은 1.5%에 불과하다. 전체 직원 22만 명의 40%가 여성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여성이 임원 될 확률은 1만 명 중 2명, 0.02%의 참혹한 수준이다.

입사 직후 신입사원은 선택해야 한다. ‘1%로 살 것인지 아니면 99%로 살 것인지’를. 상위 1%에 속해보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사생활을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 별 보고 출근해서 별 보고 퇴근해야 별을 달 수 있다. 우리 기업문화에서 조기 출근에 조기 퇴근 포기는 필수다. 인간적으로 살아보겠다고 생각한다면 일찌감치 99%에 속하기로 마음먹는 게 속 편할 것이다. 현실은 99%인데 이상은 1%라면, 속만 쓰릴 뿐이다.

얼마 동안 사생활을 포기해야 할까? 20년 이상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대졸 신입사원이 임원이 되기까지 평균 21.2년이 걸린다. 대기업 임원이 되려면 23.6년이 소요된다. 28세에 대기업에 입사하는 경우 0.6%의 확률을 뚫는다고 하더라도, 52세는 돼야 임원이 된다는 이야기다. 


프레시하게 넋 놓고 있다간…

임원은 ‘별’이다.

그렇다면 상위 1%에 속해보겠다고 마음먹는 직장인은 구체적으로 얼마나 될까. 잡코리아 에이치알파트너스가 지난 4월 전국 남녀 직장인 69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임원 승진을 준비 중인 직장인은 남성이 38.5%, 여성이 25.8%, 평균이 31.8%였다. 현실에 비해 여성 직장인의 의지가 의외로 도발적이다. 

임원 승진 준비를 시작하는 시기는 대략 언제쯤일까. 직장 경력 3∼5년 때부터 준비한다는 응답이 26.8%, 입사하는 순간부터 준비한다는 응답이 22.3%였다. 신입사원 때부터 상위 1%에 속해보려 준비를 시작하는 직장인이 대략 5명 중 1명 정도에 불과하다. 다른 말로 5명 가운데 4명은 신입사원 시절, 그 중요한 시기를 프레시(fresh)하게 넋 놓고 지낸다는 뜻이다.

임원이 되어보겠다는 사람들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알아보자. 직무분야 전문지식 습득 44.1%, 인맥관리 41.4% 순이었다. 그런데 업무 역량은 기본 중에서도 기본이다. 임원 승진심사에서 결정적 고려사항이 아니다. 부장 정도까지 승진할 정도면 업무 역량은 그야말로 도 긴 개 긴. 인사권자인 사주(또는 CEO)의 마음을 움직일 ‘결정적 그놈’은 과연 뭘까. 충성도? 섭외력? 판단력? 결단력? 통솔력? 

대한석탄공사 사장을 지냈고 ‘임원의 조건’을 집필한 조관일 창의경영연구소 대표가 꼽은 임원의 첫 번째 조건은 ‘정치력’이다. ‘사내 정치를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도 신입 때부터. 사내 정치를 잘 모르면 임원이 되기도 어렵지만, 된 이후에도 오래 살아남기 어렵다고 한다. 조 대표가 꼽은 두 번째 조건은 ‘충성심’이고 세 번째는 ‘추진력’이다. 

미세하지만 이론(異論)이 있을 수 있다. 일부는 ‘충성심’을 첫 번째 조건으로 꼽기도 한다. 틀린 관점은 아니다. 그런데 충성심을 보여주는 것도 결국 사주(또는 CEO)를 상대로 하는 사내 정치의 일종이다. 사주(또는 CEO)의 처지에 서보면 답이 바로 나온다. 업무 역량이 비슷하다면 어떤 사람을 임원, 특히 등기임원으로 삼고 싶을까. 역시 충성심이 높은 사람일 것이다. 충성도가 높다면 업무 역량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큰 문제가 아니라고 저들은 생각한다. 왜 이토록 충성심에 매달릴까. 그것은 당신이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하는 이유와 같다. 외롭고 두렵기 때문이다. 


능력보다 충성심

인간은 기본적으로 외로운 존재다. 또 불완전하기에 늘 두려워한다. 그런데 사주(또는 CEO)가 되면 이런 감정이 극대화한다. 더 외로움을, 두려움을 느낀다. 조직은 기본적으로 피라미드 구조다. 그 파라미드의 정점에 혼자 서 있다고 생각해보라! 책임을 오롯이 혼자 져야 한다면? 결정이 잘못될 경우 회사가 망할 수도, 교도소에 가야 할 수도 있다면? 

이때 사주(또는 CEO)는 ‘누군가 이 일을 대신해줄 사람이 없을까?’ ‘이 외로운 결정에 확신을 불어넣어줄 사람이 없을까’라고 생각한다. 바로 이때 부르면 군말 없이 신속하게 달려와 조언도 해주고 확신도 불어넣어주는 존재가 바로 임원이다. 더 정확한 조언, 더 확고한 확신을 불어넣어줄 수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별 중의 별, 차기 CEO감이다.

이사회는 늘 아름다운 결정만 내리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비난을 받거나 비판을 감수해야 할 때가 더 많다. 감원 결정도, 임금삭감 결정도, 사업철수 결정도 내려야 한다. 때로는 편법, 불법 행위도 공모해야 할지 모른다. 회사 밖에 나가 발설하면 회사가 위기에 빠지는 비밀을 공유해야 한다. 사주(또는 CEO)가 충성도를 따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죽으라고 하면 죽는 시늉이라도 할 만한 충성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니, 사주(또는 CEO)가 그런 충성도를 하루아침에 확인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꽤 긴 시간인 20여 년 동안 내 사람이 될 만한지 아닌지를 진단하는 것이다. 처음엔 멀리 두고 눈여겨보다 나중에는 가까이 두고 검증하는 식이다. 그래서 임원이 되기 원하면 가능한 한 빨리 저들 곁으로 다가가야 한다. 최대한 신속하게 직속 라인에 들어가는 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 


A급 직원은 따로 관리

사실, 어느 기업이건 A급 직원은 입사 초기부터 따로 관리한다. 회사가 이 직원의 근무지나 경력을 엘리트 코스로 관리해준다. 그러다 못 따라오면 중도 탈락시키고 잘 따라오면 요직에서 요직으로 돌리며 키워나간다. 

이 때문에 직장에서는 첫 근무지가 대개 자신의 라인이 된다. 첫 상사가 그만큼 중요하다. A급 직원을 따로 관리하는 이유도 결국 라인과 관련이 깊다. 유력 부서의 유력 인물 밑에 잠재력 있는 신입사원을 배치해 회사를 이끌 엘리트 집단을 만들어가는 전략이다. 실력도 있지만 충성도도 높은 직속 진골 라인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입사 초기 A급 직원으로 분류돼 핵심 부서를 첫 근무지로 배정받았다면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일단 직속 라인에 속할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반면 B급 이하 직원으로 분류돼 평범한 부서의 눈 풀린 상사 밑에서 일하는 처지가 됐다면 빨간불이 켜졌다고 봐야 한다. 신입사원에게 빨간불 운운하다니 너무 잔인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엄연한 현실, 실제 상황이다. 이 경우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발군의 역량 발휘로 B급 딱지를 떼거나 초강력 충성 맹세 요법으로 기존 라인에서 탈출해 직속 라인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직장인이 이 대목에서 한 번 걸린다. 무엇에? 인정 또는 의리에. 내가 모시던 상사, 함께 울고 웃던 동료를 ‘버린다’는 느낌? 그 느낌 아니까 차마 잔인해지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눌러앉기로 하고 결국 함께 침몰하고야 만다. 그들을 버릴 바에는 차라리 나도 함께 망하는 것. 아름답거나 장렬한가. 만약에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은 영화를 너무 많이 봤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것이 실제다. 임원이 되기를 원한다면, 직속 라인에서 부른다면 언제라도 옮겨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만약에 불러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찾아가야 한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것,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 이게 녹록지 않다.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만약에 거절당한다면 보통 민망한 일이 아니다. 그래도 적당한 명분이나 사적인 자리를 만들어 찾아가길 권한다. 어차피 일하는 것, 직속 라인에서 일해야 승진 기회도 더 보장되고, 하다못해 배우는 것도 더 많다. 이런 것이 바로 인맥관리다.


공범의 치명적 매력

인맥관리와 관련해 많은 사람이 착각하는 것 하나가 있다. ‘인맥이 넓은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맞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맥의 질이다. 광범위하게 회사 내외 인맥을 쌓아 나쁠 건 없지만, 무엇보다 회사 내 직속 라인과 아주 끈끈한 사이로 엮여야 한다. 직속 라인에 속하더라도 그 속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계속 상하 라인을 관리해야 한다. 나를 확실하게 끌어주는 상사가 단 한 명만 있어도 구조조정에서 살아남는다. 

직속 라인에 속하더라도 어떤 충성심을 보여줄 것인지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사주(또는 CEO)는 한번 충성심을 보였다고 단번에 넘어오지 않는다. 저들은 지켜야 할 것이 많고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조심스럽고 신중하다. 쉽게 신뢰하지도 못할뿐더러 변덕스럽기도 하다.

충성심을 보이려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회사에서 충성심을 돋보이게 만들려면 무슨 짓을 해야 할까. 무릎을 꿇는 일 정도는 오히려 애교에 가깝다. 이보다 훨씬 비굴한 일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순도도 높아야 하지만, 경쟁자의 그것과 차별성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저들이 당신에게 중독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당신의 충성심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치명적 매력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충성심을 보이기에도 버거운데, 거기에 치명적 매력까지 더하라니 상당히 부담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그래야 0.8%에 들어갈 수 있다. 치명적 매력을 더하는 방법에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강력한 한 가지 방법은 ‘죄를 숨기는 데 적극적으로 조력하고 끝까지 입을 닫는 것’이다. 공범이 되는 것이 순도 높은 충성심을 보일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이야기다.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성격을 가진 사람은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대기업에서 사주의 신임을 받아 전문경영인 CEO 자리에 오른 사람치고 형사 처벌을 받지 않은 사람, 받을 위기에 처한 적이 없는 사람, 국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지목되지 않은 사람, 감사원 조사나 정부 위원회 조사에 불려가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기자들은 안다

정치권에서 계파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국회의원도 정치하면서 교도소 담장 위를 걷지만 기업 경영진도 매한가지다. 편법이나 불법을 저지르라는 얘기가 아니다. 그런 일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충성심이 있어야 임원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정도까지 해낼 자신이 없다면, 상사의 자가용 오일 교환 날짜를 챙겨 적시에 교환해주는 열의라도 보여야 한다. 이것도 할 자신이 없다면, 99%로 살아가는 게 맞다. 아마추어이기 때문이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어떤 궂은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 프로페셔널이다.

언론계 기자라면 누구나 다 안다. 기자가 대기업 사주에 대해 안 좋은 내용으로 기사를 쓰고 있으면 해당 기업의 그 쟁쟁한 홍보담당 임원들이 열 시간이고 스무 시간이고 언론사에서 죽치면서 기사를 빼달라고, 혹은 사주의 이름이라도 안 나가게 해달라고 필사적으로 요구해 관철시키는 사실을 말이다. 그야말로 수단, 방법 안 가린다. 자존심 때문에 이런 궂은 일을 못하겠다고 하면 아마추어다. 

이 대목에서 인맥은, 특히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과의 인맥은 ‘양’이 아니라 ‘질’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출마를 하겠다는 사람치고 정치권에 그나름의 인맥이 없는 사람은 없다. 보통은 실력자 아무개도 잘 알고 아무개도 잘 안다고 말하고 다닌다. 그러니까 공천을 받는 데 문제가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뚜껑을 열어보면 다름 사람이 공천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뭘 착각한 것일까. ‘그냥 아는 사이’와 ‘잘 아는 사이’의 차이를 몰랐기 때문이다.


인맥은 量이 아니라 質

같은 회사에 20년 정도 근무하면 사내에선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가 된다. 특히 회장이나 사장 이하 임원 대부분과는 아는 사이라고 봐야 한다. 이런 속에서 누구는 임원으로 승진하고 누구는 탈락한다. 탈락한 사람은 대부분 그들과 ‘그냥 아는 사이’인 사람일 것이다. 반면에 승진한 사람은 그들과 ‘잘 아는 사이’인 사람일 것이다. 

나는 공천을 확신하며 대통령과도 잘 아는 사이라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바로 휴대전화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보세요. 대통령이 곧바로 받거나 최소한 얼마 뒤에라도 리턴 콜이 오지 않는다면 ‘잘 안다’고 하지 마세요.” 

잘 아는 사이란 이런 사이다. 전화를 언제나 반갑게 또는 기꺼이 받아줄 정도의 사이다. 이런 점에서는 A급 직원도 방심해선 안 된다. A급 직원이랍시고 실력을 과신한 나머지 충성심 따위 우습게 알고 지내다가는 ‘주류 계파와 잘 아는 사이’의 지위에서 곧바로 밀려난다. 충성심은 사주(또는 CEO)가 인정하는 주류 계파에 들어가게도 하고 또 거기서 쫓겨나게도 한다. 

구태 정치의 상징이라는 계파, 하지만 절대 사라지지 않을 계파는 정치권에만 있는 게 아니다. 계파는 회사에선 주로 ‘라인’으로 불리는데 상당수 회사에서 엄존한다. 라인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그만한 유용성이 있기 때문이다. 떼를 지어 적을 상대하는 편이 혼자 상대하는 편보다 확실히 유리하기 때문이다. 소위 ‘라인 불멸의 법칙’은 인간의 생존본능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그만큼 강력한 것이다. 


라인 불멸의 법칙

역대 대통령 가운데 계파 없이 정치를 한 사람은 없다. 상도동계, 동교동계, 친노계, 친이계, 친박계가 이를 증명한다. 정치권의 별, 국회의원도 결국 어떤 계파에 소속돼야 달 수 있다. 언제나 쇄신 대상으로 언급되지만 정치권에서도, 회사에서도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 

회사의 직속 라인은 물론 사주(또는 CEO) 라인이다. 그러나 정작 적지 않은 사주(또는 CEO)는 직원들에게 “줄을 서지 말라”고 역설한다. 정말 역설적인 시추에이션이 아닐 수 없다. 더 웃긴 건, 이를 곧이곧대로 믿고 열심히 따르는 직장인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어? 나도 그랬는데’라고 생각한다면 바보처럼 살아왔다고 자백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들이 줄을 서지 말라고 하는 것은 ‘나 이외 누구 밑에도 줄을 서지 말라’는 뜻이다. ‘나에게 맞서는 어떤 라인도 만들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하다. 직속 라인 이외 어떤 라인도 위험하기 그지없는 라인이다. 어떤 조직이든 무조건 직속 라인에 들어가고 볼 일인 것이다.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적지 않은 직장인이 줄서기에 거부감을 드러낸다. 인크루트가 2010년 6월 직장인 105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어느 파벌에도 속하지 않고 무당파로 남겠다’는 응답자가 43.8%였다. 우매한 다수임에 틀림없다. 99%에 속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그렇게 생각해도 관계없다. 하지만 1%에 속하기로 마음먹었는데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생각을 바꿔야 한다. 재차 강조하지만, 사주 직속 라인, 진골 라인에 들지 않고는 임원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무당파로 지내다 부장급 정도에 라인을 잡겠다’는 사람도 꽤 있다. 나름 영리한 전략일 것 같지만, 사주(또는 CEO)는 생경한 충성심에 거부감을 보일 것이다. 묵은 김치같이 오래된, 충분히 검증된, 순도 100%의 충성심이어야 저들은 안심한다. 라인에 속할 요량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들어가는 게 좋다. 그래야 나중에 대접받는다. 저들이 때 되면 알아서 이사 승진을 챙겨줄 정도의 대접 말이다.
승진의 정치학은 결국 충성의 정치학이자 직속 라인의 정치학이다. 

회사 임원되기

54세 남성, 전략기획 또는 기술직.’

국내 대기업 임원들의 평균(지난해 9월 말 기준)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기업 평가 회사인 CEO스코어가 국내 30대 그룹(공기업 제외) 상근 임원 9479명을 전수 조사한 결과다. 이들이 근무하는 회사는 금융감독원에 지난해 3분기(7∼9월) 분기 보고서를 제출한 30대 그룹 소속 281개 계열사다. 30대 그룹 중에는 분기 보고서 제출 기업이 없는 부영그룹만 제외됐다.

국내 30대 그룹 임원들의 직급별·직무별 비중 및 평균 연령 등을 모두 조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CEO스코어는 지난해 4분기(10∼12월)와 올 1월 임원 인사를 단행한 삼성 현대자동차 LG 등 10개 그룹 신규 임원 623명에 대한 조사도 병행했다. 

대기업에서 임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1%가 채 되지 않는다. 삼성그룹은 전체 직원 22만 명 중 임원이 2000여 명(0.9%) 수준이다. SK그룹도 8만 명 중 720여 명(0.9%)으로 삼성과 비율이 비슷하다. 현대자동차그룹은 11만 명 중 500여 명(0.5%), LG그룹은 13만3000명 중 800여 명(0.6%)으로 비율이 더 낮다(국내 사업장 기준). 임원 승진은 그야말로 ‘바늘구멍 뚫기’인 셈이다.

직장인들의 ‘꿈’으로 여겨지는 대기업 임원은 어떤 사람일까. 본보가 CEO스코어 자료를 토대로 ‘임원의 세계’에 대한 단면을 하나씩 벗겨 봤다.  

▼ 입사 뒤 20년 이상 걸려… 57%가 전략-기술 파트 출신 ▼

직장인, ‘별’이 될 확률 0.9%


여전히 단단한 유리 천장

지난해 9월 말 기준 30대 그룹 임원 중에는 남성이 9294명(98%)으로 압도적이다. 여성 임원은 185명으로 2%에 불과하다. 여성들이 겪고 있는 ‘유리 천장’이 여전히 심각하다는 얘기다.

그나마 여성 임원 비율이 높은 곳은 유통업체가 많은 현대백화점그룹(8.0%) 신세계그룹(7.2%) CJ그룹(6.2%) 등이다. 현대중공업 LS 대우조선해양 대림 에쓰오일 대우건설 동국제강 영풍 등 8개 그룹은 여성 임원이 단 1명도 없다.

4대 그룹의 여성 임원 비율은 현대자동차(0.8%) SK(1.7%) LG(1.7%) 모두 평균치를 밑돌았지만 삼성(2.6%)만 유일하게 전체 평균보다 높았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모두 바꾸라”고 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1993년)을 전후로 삼성그룹 내에서 여성 인재들을 확보하고 육성하는 제도들이 잇달아 도입됐기 때문이다. 2011년 김정미 제일모직 상무를 시작으로 1993년 봄에 입사한 대졸 여성 공채 1기들의 임원 승진 소식도 속속 들려오고 있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12월 임원 정기 인사 때도 신임 임원 243명(분기 보고서 제출 기업 기준) 가운데 12명(4.9%)이 여성이었다. 같은 달 현대차그룹 인사에서는 이소영 현대캐피탈 리스크관리실장과 이정원 현대캐피탈 디자인랩실장이 임원 첫 단계인 이사대우로 승진했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 인사를 낸 삼성 현대차 LG 현대중공업 GS 한화 신세계 LS 대림 코오롱 등 10개 그룹에서 신규 선임된 임원은 623명이다. 이 중 여성은 20명으로 3.2%에 불과했다.


전략기획, 기술 전공이 가장 많아

직무별로 나눴을 때 가장 많은 임원을 배출한 부문은 전략기획이다. 30대 그룹 임원 중 이 부문에서 일하는 임원은 전체 9479명 중 2808명(29.6%)이었다. 다음으로 임원이 많은 곳은 기술(엔지니어) 파트로 2579명(27.2%)이나 됐다. 영업·마케팅(1107명), 연구개발(R&D·1010명)이 뒤를 이었다. 기술 및 R&D 인력이 전체 임원의 40%가 넘는 셈이다.

그룹별로 살펴보면 주로 조선이나 건설을 주력 계열사로 둔 곳이 기술 전공 임원이 많았다. 현대중공업그룹(66.1%)과 대우건설(56.9%)이 대표적이다. R&D 임원 비율은 삼성그룹(19.1%)과 LG그룹(18.4%)이 가장 높았다. LS그룹과 GS그룹은 재무통 임원 비율이 각각 9.3%, 7.0%로 30대 그룹 평균인 3.3%의 2배를 넘었다.

올해 임원 인사에서도 기술 부문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최근 인사를 한 10개 그룹 임원 승진자(신규 임원 제외) 453명 중 기술 부문이 149명(32.9%)으로 가장 많았다. 전략기획이 101명(22.3%)으로 두 번째였다. R&D 인력도 52명(11.5%)이 승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정몽구 회장이 항상 ‘품질 경영’을 강조하고 있는 현대차그룹에선 올해 임원 승진자(신규 선임 포함)의 43.6%가 R&D 및 기술 인력이었다.


임원의 세계는 ‘정글’

‘인재’에 목마른 기업들은 외부 인력을 파격적인 대우로 스카우트하거나 뛰어난 성과를 낸 30대나 40대 초반 직원을 임원으로 전격 발탁하기도 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2월 만 33세인 프리나브 미스트리 상무와 만 39세인 데이브 다스 상무에게 ‘30대 별’의 영광을 안겼다. 구광모 상무(LG), 정기선 상무(현대중공업), 김동관 상무(한화) 등 30대 나이의 오너 가(家) 3, 4세들도 이번 인사에서 임원이 됐다. 지난해 9월 기준으로 보면 30대 그룹 중에는 SK GS 한진 LS 현대 OCI 미래에셋 등 7개 그룹에 30대 임원 9명이 재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20년 이상 한 우물을 파야 임원이 될 수 있다. 사원 대리 과장 차장 부장의 단계를 하나씩 밟는 동안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한다. 이 때문에 임원들의 나이는 대부분 50대에 몰려 있다. 30대 그룹 임원 중 50대는 7256명으로 전체의 76.5%를 차지한다. 40대와 60대가 각각 1228명(13.0%), 986명(10.4%)이다.

식음료 업체 임원 A 씨는 1990년에 입사해 23년 만인 2013년 말 상무가 됐다. 고생의 결실은 달콤했다. 연봉은 직전 해의 2배로 올랐다. 개인 사무 공간도 따로 생겼다. 각종 행사장에는 본인의 이름표가 붙은 좌석이 생겼다. 차량과 관련한 모든 비용도 회사가 지원한다.

그렇다고 임원이 과연 직장 생활의 꽃이기만 할까. 대부분의 임원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이사’ 또는 ‘상무’라는 직함을 받아드는 순간 계약직 신분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한번 삐끗하면 언제든 회사를 나가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책임이 늘어나면서 업무도 폭증한다. A 씨는 “부장 때는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주말에 나왔지만 임원이 되고부터는 밀린 업무를 보기 위해 수시로 나온다”며 “임원의 경우 평가가 회사 실적과 직결되기 때문에 훨씬 압박감이 크다”고 말했다. 통신업계 임원 B 씨는 “그토록 갈망하던 임원인데 3개월 정도 지나니까 붕 뜬 기분이 모두 사라졌다”며 “실적 부담 때문에 책임의 범위도 배는 늘어난 것 같다”고 했다. 이 때문에 재계에선 “부장까지는 안전한 차를 타고 사파리 관광을 하는 것이라면 임원이 되면 진정한 정글에 들어서는 셈”이라는 말도 나온다.

30대 그룹 전체 임원의 평균 나이는 54.3세다. 그룹 임원들의 평균 나이는 미래에셋이 49.4세로 유일하게 50세 아래다. CJ가 두 번째로 젊은 51.8세다. 대우조선해양(58.1세) 동부(57.4세) 포스코(57.3세)는 임원의 평균 연령이 가장 많은 기업들로 조사됐다.


감원 한파에 떠는 임원들

“지난해는 여러 가지로 어려운 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실적을 내서 임원 승진을 한 여러분은 정말 능력 있는 인재들입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달 19일 서울 중구 동호로 신라호텔에서 열린 삼성그룹 신임 임원 만찬 행사에 참석해 이런 격려의 말을 건넸다. 지난해 12월 승진한 신임 임원 240여 명은 4박 5일간의 ‘빡빡한’ 교육 일정을 마친 뒤 부부 동반으로 만찬 행사에 참석했다. 이 행사는 이 부회장이 상무로 승진했던 2003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았을 정도로 삼성으로선 중요한 행사다.

이 부회장의 말에서처럼 올해 삼성 신임 임원들의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새롭게 임원의 반열에 오른 이들이 2013년 331명에서 지난해에는 253명으로 무려 78명(23.6%)이나 줄었기 때문이다. 예년에도 “임원이 되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했지만 지난해는 그 구멍이 훨씬 좁았던 셈이다. 삼성그룹은 올해 퇴직자에 비해 승진자가 적어 전체 임원도 100여 명(약 5%) 줄어들었다.

삼성그룹의 한 계열사 신임 임원 C 씨는 “내가 승진하는 만큼 누군가는 나간다는 얘기”라며 “올해는 승진을 축하받는 자리보다는 떠나는 상무들을 위한 송별회 자리가 더 많았다”고 전했다.

다른 기업들이라고 사정이 다를 리 없다. SK그룹도 임원이 올해 15∼20명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KT는 지난해 봄 대규모 감원과 함께 시행한 조직 개편으로 전국 지점장 자리가 대폭 줄어 올해 상무보 수십 명이 회사를 떠났다.

재계 관계자는 “불황이 지속되면 기업은 가장 먼저 임원들부터 줄이게 돼 있다”며 “임원들은 높은 연봉과 각종 복지 혜택을 받지만 신분이 불안한 ‘동전의 양면’ 위에 놓여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뛰다보면 임원 되는 것… 임원을 목표로 삼으면 지쳐 ▼

송현주 삼성전자 상무

“오전 6시반 출근… 가전디자인 총괄, ‘점심 간담회’로 후배들과 소통”

2013년 12월 상무로 승진하면서 가장 먼저 달라진 것은 출근 시간이었다. 오전 6시 반이면 책상에 앉는 게 일상이 됐다. 다른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까지 1시간 반가량이 그에게 주어진 유일한 개인 업무 시간이다. 밀린 e메일 답변도 하고 최신 디자인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각종 자료도 뒤적인다. 물론 이 시간마저도 다른 파트 임원들과의 업무협의에 할애해야 하는 날이 적잖다.

오전 8시부터 그는 시간의 노예가 된다. 그가 필요해 잡은 일정보다 그를 필요로 해서 잡힌 일정이 더 많아서다. 사무실은 서울이지만 회의 때문에 하루에 두 번씩 경기 수원을 오가기도 한다. 인터뷰는 2일 오후 5시에 잡혀 있었다. 정각에 맞춰 도착한 그는 “막 회의를 마치고 오느라 머리 손질도 제대로 못했다”며 머쓱해했다.

송현주 삼성전자 상무(46)는 생활가전사업부 디자인그룹을 총괄하는 그룹장이다. KAIST에서 산업미술학으로 학사, 석사학위를 받은 뒤 1993년 봄 특채로 삼성에 입사했다. 삼성그룹의 첫 대졸 여성 공채 입사자들과 동기다. 송 상무는 “1993년을 기점으로 여성을 배려하고 성장시키는 여러 제도들이 생겼다”며 “제가 임원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라고 말했다.

송 상무가 이끌고 있는 디자인그룹에는 60명이 소속돼 있다. 3일 미디어설명회에서 윤부근 삼성전자 사장이 직접 공개한 전자동세탁기 ‘액티브워시’와 2015년형 ‘스마트에어컨 Q9000’, 공기청정기 ‘블루스카이 AX7000’ 등이 모두 이 그룹에서 디자인한 제품들이다.

그룹 전체를 이끌어야 하는 위치이기에 그의 고민은 늘 후배들을 향해 있다. 틈날 때마다 그룹 구성원 서너 명씩 짝을 지어 점심을 함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이를 ‘점심 간담회’라 부른다.

“요즘 직장 문화가 저녁에 회식하는 걸 즐기진 않잖아요. 그래서 점심이라도 같이 먹으면서 교류를 하는 거예요. 편한 시간을 가지려고 일부러 회사에서 조금 떨어진 ‘핫’한 식당을 찾지만 저도 모르게 업무 얘기만 하다 오는 경우도 많죠.”

송 상무가 생각하는 임원으로서의 리더십은 ‘같이 고민하고 같이 뛰는 것’이다. 실제 20년 전에는 ‘관리형 임원’이 주류였다면 지금은 ‘실무형 임원’이 더 많아졌단다. 송 상무는 “삼성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 중 하나인 만큼 제품 디자인과 성능에 대한 시장의 눈높이가 예전보다 훨씬 높아졌다”며 “회사가 임원들에게도 현장 업무를 놓지 말 것을 요구하는 이유”라고 했다.

임원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혜택은 휴대전화와 자동차와 관련한 모든 비용을 회사가 지불해 주는 것이라고 했다. 송 상무는 “임원들에겐 24시간 동안 어디에서든 일할 수 있는 ‘모바일 오피스’가 필수적이다”며 “거의 매일 한 차례 수원을 다녀오는데 운전하는 동안 전화로 업무지시를 내릴 때가 많다”고 말했다.

또 달라진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신입사원 채용 때 면접을 보는 것’과 ‘양각을 넣어 좀 더 고급스러워진 명함’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송 상무는 마지막으로 “임원은 신분이 계약직이다 보니 단기 성과를 좇을 가능성이 크지만 사원이든 임원이든 가장 큰 덕목은 멀리 보고 뚝심 있게 일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종률 현대자동차 상무▼
“직장생활 31년 중 24년 현장근무… 휴대전화엔 부하직원 343명 빼곡”


“술요? 잘 못 먹습니다. 그래도 정성을 다해 먹으려고 노력합니다.”

5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현대자동차 남부지역본부에서 만난 김종률 본부장(55·상무)은 ‘영업직원들을 관리하려면 술이 꼭 필요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김 본부장은 “(술을 잘 먹기 위한) 약까지 먹어봤지만 조직 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게 술 먹는 자리였다. 그러나 체육대회에서 343명에 이르는 직원 모두와 술 반잔씩이라도 먹다 보니 직원들도 진정성을 알아줬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서초구, 동작구에서 주로 영업을 하는 남부지역본부는 현대차가 국내 시장을 사수하기 위한 최전선이다. 지난달 수입 승용차의 국내 시장점유율이 18%가 넘어 역대 최대 기록을 세울 정도로 수입차의 공세가 거세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 강남권만 놓고 보면 수입차의 시장점유율은 30%대에 이른다. 직원들을 독려하면서 기존 고객을 유지하고 신규 고객을 발굴하는 김 본부장의 야전사령관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그는 회사의 비전과 판매목표를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직원들과 개인적으로 친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본부장은 “지점을 방문할 때 미리 인사카드를 보면서 직원들의 이름을 모두 외운다”라며 “이름이 비슷하다거나 고향이 같다거나, 하나라도 공통점을 찾아서 먼저 말을 건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단 직원들과 소통이 이뤄지면 서로 비전을 공유하면서 목표도 달성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직원들이 리더를 따르는 것은 리더가 잘났거나 ‘당근과 채찍’을 가졌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김 본부장은 휴대전화에 남부지역본부 소속 모든 직원(343명)의 이름과 연락처, 사진, 세세한 특징까지 기록해 수시로 확인을 한다. 

기계공학과 출신인 김 본부장은 1983년 현대차 연구소로 입사했다. 하지만 부산에 있는 부모, 가족들과 생활하기 위해 영업직에 지원했다. 연구직을 박차고 영업현장으로 오면서 직장생활 31년 중 24년을 본사 조직이 아닌 현장에서 근무했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동기들 상당수는 회사를 떠났지만 그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2010년 1월 기업의 ‘별’인 임원을 달았다. 당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신임 임원 부부들을 초청해 격려하면서 부인에게 스카프를 선물했다. 김 본부장은 “현장을 누볐던 제가 임원이 됐을 때가 저와 아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물질적인 보상도 뒤따랐다. 연봉은 세전 기준으로 직원 시절보다 배로 뛰었다. 현장 업무가 많은 지역본부장이란 보직 덕분에 운전사가 딸린 자동차도 탈 수 있었다. 현대차는 보통 부사장급이 돼야 운전사가 있는 자동차가 제공된다. 
김 본부장은 “임원을 달고 간 첫 해외 출장에서 비즈니스클래스 좌석과 혼자 호텔 방 하나를 배정 받고는 임원이 됐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며 웃었다.
임원을 꿈꾸는 직장인들에게 조언을 해달라는 요청에 그는 한참을 망설였다. “인생지사 새옹지마입니다. 임원이 목표가 아니라 성실히 최선을 다하면 그 결과로 임원도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