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October 30, 2021

와인 스타트업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창업에 뛰어들며 한국 경제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성장을 돕기 위해 스타트업 인터뷰 시리즈 ‘스타트업 취중잡담’을 게재합니다. 그들은 어떤 일에 취해 있을까요? 그들의 성장기와 고민을 통해 한국 경제의 미래를 탐색해 보시죠.

박재정 퍼플독 대표와 퍼플독 홍대점. /더비비드, 퍼플독
박재정 퍼플독 대표와 퍼플독 홍대점. /더비비드, 퍼플독

와인은 어렵다. ‘바디감’이니 ‘타닌’이니 모르는 단어투성이다. 대중화되고 있다는데, 처음 시도하는 사람에겐 문턱이 높다. 보관법도 까다롭고, 맛있게 먹기 위해 지켜야 할 규칙도 많다.

와인 정기구독 서비스 ‘퍼플독’은 일상에서 와인을 즐기고 싶은 사람을 목표로 한 서비스다. 퍼플독의 박재정 대표(51)가 직장 다닐 때 고객사에게 와인을 선물했던 경험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시작했다. 서울 강남구 씨이오스위트에서 박 대표를 만났다.

◇와인 아카데미 학위 취득한 법무팀장

퍼플독 홍대점. 와인 정기구독 최초 결제를 하고, 퍼플독에서 큐레이션한 와인을 살펴볼 수 있다. /퍼플독
퍼플독 홍대점. 와인 정기구독 최초 결제를 하고, 퍼플독에서 큐레이션한 와인을 살펴볼 수 있다. /퍼플독

퍼플독은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취향에 맞는 와인을 배송해 주는 와인 정기구독 스타트업이다. 배송되는 와인의 수와 종류에 따라 9가지 종류의 멤버십이 있다. 배송한 와인과 관련된 콘텐츠도 제공한다. 온라인몰에선 ‘무알콜 와인’을 판다.

1995년 부산대 법대를 졸업한 박 대표는 20년간 기업법무전문가로 일했다. “현대건설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매일유업에서 법무팀장까지 했습니다. 업무상 고객사와 만날 때, 와인을 마실 일이 많았어요. 체계적으로 와인을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습니다.”

와인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이 커질 때 재직 중이던 매일유업이 프랑스 와인 아카데미 ‘듀뱅’의 라이선스를 받아 서울지사 운영을 시작했다. “당장 등록해서 팀원들과 3년간 공부하며 와인 세계에 눈을 떴습니다. 최고 레벨의 학위도 취득했죠.”

(맨 오른쪽) 과거 직장인 시절 박재정 대표. /박재정 대표 제공
(맨 오른쪽) 과거 직장인 시절 박재정 대표. /박재정 대표 제공

그즈음 ‘내 사업’에 대한 갈증이 생겼다. “운 좋게 회사에서 뜻이 맞는 동료(현 부대표)를 만나서 함께 퇴사했어요. 2014년 법인을 설립해 3년 동안 기존 직무 경험을 살려 법무 아웃소싱 업체를 운영했습니다.”

-지금은 그 일을 하지 않네요.

“법무 업무를 대행하는 업체다 보니 원래 하고 싶었던 ‘내 일’을 할 수가 없었어요. 고객사가 맡긴 일을 처리하는 게 급급해 일의 휘발성이 강했죠. 회의감이 들어 새 일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2017년 12월 다른 옛 동료 직원까지 함께 사업하겠다고 모였다. “사업이 하고 싶어 모인 사람들인 만큼 보다 본질적인 일로 업종을 전환하기로 했어요. 고민 끝에 우리 모두의 공통점인 와인을 떠올렸죠. 사업성도 있다고 판단했어요. 저도주(알코올 도수가 낮은 술)를 선호하는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와인이 이전보다 훨씬 자주 식탁 위에 오르고 있었거든요.”

◇와인 고수 대신 와인 초보에 주목한 이유

월 3만9000원 구독 상품 선택 시 매달 배송되는 와인과 콘텐츠. /퍼플독
월 3만9000원 구독 상품 선택 시 매달 배송되는 와인과 콘텐츠. /퍼플독

고민 끝에 와인 유통방식에 변화를 주는 데서 시작하기로 했다. “이미 와인을 잘 아는 소비자가 할인마트나 소매점에서 자신이 마실 와인을 고르는 전통 방식의 유통을 하긴 싫었어요. 뒤늦게 와인의 매력에 눈 뜬 저처럼 새로운 소비자층이 와인을 접할 수 있기를 바랐죠. 그때 찾은 해결책이 맞춤형 구독 서비스였습니다.”

와인 초보자에게 와인을 제대로 소개하기 위해선 일회성 추천 서비스를 넘어서야 한다는 판단이 들었다. “같은 추천 시스템이라도 넷플릭스 같은 콘텐츠 구독과는 결이 달라요. 콘텐츠 구독은 가볍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와인은 실물로 받아서 직접 마시기 때문에 입맛에 맞지 않으면 바로 서비스 해지로 이어져요. 추천에서 끝날 게 아니라 고객의 피드백을 받으며 계속 조율해 나가는 과정이 필수란 생각이 들었어요. 일회성 취향 추천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와인 모른다고 기죽지 마세요, 떠먹여드릴게요

퍼플독 와인 정기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면 함께 오는 와인 설명서. /퍼플독
퍼플독 와인 정기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면 함께 오는 와인 설명서. /퍼플독

와인 정기 구독 서비스를 알아보니 규제 문제가 있었다. 주류는 온라인 신청에 의한 배송이 불가능한 것이다. “전통주를 제외한 나머지 주류는 전화 또는 온라인 주문이 안됩니다. 청소년이 구매할 위험성 때문에 규제해둔 것이죠. 앞서 시도했던 주류 구독 스타트업들이 바로 이 규제 때문에 사업을 중도 포기했더라고요.”고심 끝에 결제를 ‘대면’으로 하기로 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결제한 후, 와인을 택배로 보내주기로 한 것이다. “온라인 결제하고 택배를 받는 것은 안되지만, 앱으로 예약한 후 오프라인 매장에서 결제한 고객에게 와인을 배송하는 건 문제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처음 저희를 경험하시는 고객에게 퍼플독 매장을 보여주고, 고객과 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으니 더 좋을 거라 판단했어요.”

퍼플독은 와인 정기구독 서비스뿐 아니라, 무알콜 와인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사진은 제품 중 하나인 제로 와인 no.7. /퍼플독
퍼플독은 와인 정기구독 서비스뿐 아니라, 무알콜 와인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사진은 제품 중 하나인 제로 와인 no.7. /퍼플독

2018년 7월 1일, 와인 정기구독 서비스 ‘퍼플독’을 론칭했다. “퍼플독 홈페이지에서 회원가입을 할 때 와인 설문을 작성해요. AI가 설문 결과를 기반으로 최초로 배송할 와인을 결정하죠. 고객은 매장에 찾아가 딱 한 번만 결제를 하면 돼요. 이후에는 해지 전까지 등록된 결제 정보로 결제해서 와인을 추천해 배송해드리죠. 와인을 받은 소비자가 피드백을 전달하면, 이를 기반으로 다음 와인을 선별합니다. 이번 달에 배송받은 와인이 생각했던 것보다 쓰다고 하면 다음 달에는 단맛이 더 강한 와인을 선별해 배송해 주는 식이죠.”

횟수를 거듭할수록 이용자 취향에 가까워진다. “통상 세 달 정도 이용하면 진짜 좋아하는 와인이 무엇인지 알게 되죠. 와인에 대한 지불 용의와 지갑 사정이 저마다 다른 것을 고려해, 구독 상품 금액대를 월 3만9000원부터 100만원까지 설정했습니다.”

와인과 함께 제공되는 음성 콘텐츠 '1분 레슨'. /퍼플독
와인과 함께 제공되는 음성 콘텐츠 '1분 레슨'. /퍼플독

먹는 재미 뿐 아니라 ‘아는 재미’도 챙겼다. 라벨 읽는 법, 어울리는 음식, 테이스팅 노트 그리고 보관 방법까지 다양한 종류의 정보를 실물 와인과 함께 제공한다. 와인병에 부착된 QR코드를 찍으면 받아본 와인 종류와 관련된 콘텐츠 감상 후 피드백도 남길 수 있다. 별도의 온라인몰에선 ‘무알콜’ 와인을 판매한다.

“글과 함께 음성 콘텐츠 ‘1분 레슨’도 제공하고 있어요. 미술관에서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면서 미술 작품을 200% 즐길 수 있는 것과 같아요. 처음에는 콘텐츠를 제대로 보는 구독자가 20%도 되지 않았는데요. 이제는 많은 분이 콘텐츠를 즐겨 주십니다. 주축 소비자는 30대 여성입니다. 삶의 질 향상에 관심 많고 지적 호기심이 많은 소비자층이죠. 이런 데이터를 보며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맞구나’ 확신했습니다.”

◇오프라인 매장 개점, 국내 최고 와인 플랫폼 목표

앞으로 3년 내 구독 스타트업 최초로 유니콘 기업이 되는 것이 퍼플독의 목표다. /더비비드
앞으로 3년 내 구독 스타트업 최초로 유니콘 기업이 되는 것이 퍼플독의 목표다. /더비비드

지난 7월 서울 홍대에 ‘경험 중심’의 오프라인 매장을 열었다. “100여종이 넘는 와인을 시음·시향 할 수 있어요. 와인에 호기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찾아오실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온라인으로 지식을 얻을 수도 있지만 직접 향을 맡고 마셔보는 경험에 비견할 수 없어 많은 분들이 호응해 주고 계십니다. 온라인몰에선 무알콜 와인을 판매하고요.”

온·오프라인에서 쌓은 취향 데이터를 활용해 국내 최대 와인 플랫폼이 되는 게 목표다. “현재 국내 클라우드 IT기업과 함께 추천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어요. 마트, 백화점 등의 와인 소매점에 저희 플랫폼을 제공하고 싶어요. 소매점에 온 손님들이 퍼플독 추천 시스템을 통해 와인을 고르게 하고, 와인에 대한 콘텐츠도 얻어 가는 거죠.

가격 대비 근사한 와인이 참 많은데 정보가 부족해서 아무 와인이나 구매하시는 걸 보면 참 안타까워요. 소비자의 선택을 밀착해서 돕는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퍼플독 앱도 개발 중입니다. 5년 안에 국내 와인 소매시장의 50%를 차지하고 싶어요. 앞으로 3년 내 구독 스타트업 최초로 유니콘 기업이 되는 게 제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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