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pril 29, 2015

빌 비올라의 인생 성찰

 

인간과 자연, 현세와 내세를 평생의 작품 주제로 삼고 있는 현대미술계 최고의 영상 시인 빌 비올라. 올 상반기 최고 기대작 중 하나로 꼽힌 그의 대규모 개인전이 최근 국제갤러리에서 시작됐다. 작품을 더 재미있고 밀도 높게 즐기기 위한 핵심 키워드는 하나다. 인생人生.


“빌 비올라는 지난 40여 년간 3가지 형이상학적 질문과 싸워왔다. 첫째 나는 누구인가, 둘째 나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셋째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오랫동안 빌 비올라의 작품 세계를 탐구한 세계적 큐레이터 제롬 뇌트르Jerome Neutres 의 말이다. 이런 질문은 빌 비올라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던지는 것이기도 하다. 우주에서 찰나의 삶을 살고, 존재 자체에 관해 의문을 갖는 건 그나 우리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빌 비올라의 고민은 우리 개개인과 연결되고, 그의 작품은 지구상 수많은 사람들에게 공감과 감동, 자각을 불러일으키며 다양한 이슈와 화제를 낳는다.

인생에 관한 근원적 성찰을 시적이고, 철학적이며, 아름다운 영상으로 구현하며 세계 최고의 비디오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한 빌 비올라는 이번 전시에서도 ‘나’와 인생에 관한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꼭 봐야 할 작품은 국제갤러리 3관을 통째로 차지한 대작 ‘도치된 탄생Inverted Birth’. 5m 높이의 대규모 스크린을 통해 상영되는 8분 22초 길이의 영상으로 그 존재감이 남다르다. 상반신을 탈의한 한 중년 남성의 몸 위로 ‘오물’ 같은 검은색 액체가 쏟아지면서 영상은 시작된다. 거친 물 소리가 공간 전체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화면 속 남자는 고통의 순간을 견디며 묵묵히 서 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의 몸을 더럽혔던 액체가 블랙홀 같은 허공으로 빨려 들어가고 남자의 몸은 서서히 정화되고 깨끗해지며 마침내 구원을 얻는다. 이제, 그의 주변에는 부드러운 안개가 넘실댄다. 이 작품을 통해 빌 비올라는 이런저런 고통과 상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의 삶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신의 존재, 새로운 탄생의 윤회 등에 관한 판단은 관람객의 몫이다. 다만, 빌 비올라는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어딘가, 어디엔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뭔가가 더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물의 순교자Water Martyr’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2014년 런던 세인트 폴 성당에서 첫선을 보여 화제가 된 작품. 흙, 공기, 불, 물을 키워드로 각각의 상황에서 고통받는 인간을 4개의 영상 작품을 통해 보여주는데 국제갤러리 전시에는 ‘물’을 키워드로 한 작품만 출품했다. 7분 10초짜리 영상은 물로 고통받는 인간을 보여주지만 그 장면은 그 내용과 달리 무척 아름답다. 밧줄에 양 발목을 묶인 남자가 서서히 거꾸로 매달리고 하늘에서는 폭우 같은 물이 쏟아진다. ‘폭력적’ 물줄기지만 남자의 숭고한 표정과 자세는 흔들림이 없다. 슬로모션 기법을 적용해 극도로 느리게 움직이는 영상. 조바심을 내며 결말을 기다리게 되는데 남자는 모든 고통을 감내하다 예수처럼 유유히 승천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너머의 존재를 향한 오마주
영성이나 영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나 배경을 묻는 질문에 그는 여섯 살 꼬마였을 때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호수에 빠져 짧게나마 죽음을 경험한 적이 있다. 밑바닥으로 점점 빨려 들어가면서 저 높이 수면을 봤는데 무척 아름다웠다. 푸른색, 녹색 등 여러 가지 색깔이 수면에서 찬란하게 일렁였다. 삼촌이 나를 잡아 끌어올렸지만 나는 그 아름다운 세상 속에 좀 더 오랫동안 머물고 싶었다. 지금도 그때의 경험을 종종 떠올린다.” 예술관에 대해서는 이렇게 덧붙였다. “아이 때는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 작지만 성인이 되면서 좀 더 큰 프레임 안에서 세상을 보게 된다. 사고의 지평이 넓어지는 거다. 인간이 대단한 점은 밤하늘의 별은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의 공간, 오랜 시간의 흐름까지 사유하고 상상할 수 있다는 거다. 그런 속성을 통해 나 역시 구원의 문제와 같은 화두를 갖게 됐고, 오랫동안 이를 주제로 한 창작물을 선보이고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탄생과 소멸의 사이클을 거친다.



이 무한하고 거대한 우주의 흐름에서 인간의 삶은 극도로 작고 유한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을 더욱 가치 있게 살고 후대에도 보탬이 되는 일을 해야 한다. 내겐 예술이 그런 삶을 위한 방편이 된다. 고통받는 인간이 자주 나오는 이유는 우리 삶에서 고통이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부처 역시 ‘삶은 고행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또한 모든 인간에게 고통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통해 새로운 삶과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다.” 고故 백남준의 제자로 작가 활동을 시작한 그는 불교와 동양철학에 심취하면서 작품 활동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1980년대에는 일본에 약 18개 월간 머물며 선불교를 공부하기도 했다. “그때의 시간과 경험이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유머 감각이 넘치고 매사에 자유롭게 사고하는 분을 스승으로 모셨다. 한번은 그분을 내 스튜디오로 모셔 작품을 보여주는데 헛기침만 할 뿐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그러다 세 번째 작품을 보여드렸는데 내 이마를 탁 치면서 ‘머릿속에 생각이 너무 많다’고 하시더라.” 미국 시러큐스 대학에서 뉴미디어와 인지심리학, 음악 등을 공부한 그는 스승인 백남준에 대해서도 깊은 존경을 표했다. “내 인생을 통틀어 그렇게 재미있고, 생기 넘치고, 아름답고, 창의적인 사람은 지금껏 본 적이 없다. 정말 대단한 분이다. 비디오 아트의 신세계를 개척하고 열었다는 점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빌 비올라 전시는 국제갤러리 2관과 3관에서 5월 3일까지 진행한다. 2005~2014년에 제작한 총 7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여인의 삶, 남녀 관계, 순교자의 존재, 어머니와 아들 등 다양한 인간관계와 삶을 성찰하는 자리.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평소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던 영성과 영혼, 내세와 구원 등에 관해 잠시나마 생각하게 된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너머의 세계에 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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