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March 21, 2015

서울의 건축

보물처럼 지켜야 할 건축 명소 1

전 세계 많은 도시가 비슷비슷해지는 요즘, 서울을 서울답게 만드는 최고의 장소와 공간, 건축물은 무엇일까. 지금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젊은 건축가 37명이 ‘그곳’에 섰다.
창경궁 대온실 네임리스
“서울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다사다난한 역사와 이를 딛고 이룩한 번영이 격렬하게 부딪치는 곳이에요. 과거와 현재, 쇠퇴와 발전, 서양과 동양의 모습이 어지럽게 섞여 있지요. 창경궁 대온실에 가면 그런 역사적 배경이 총체적으로 보여 기분이 묘해져요. 일제가 순종을 유폐하면서 위로를 건넨다며 신축한 건물이 바로 이 대온실이에요. 1909년 건립한 국내 최초의 서양식 온실. 일본인이 설계하고 프랑스 회사가 시공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쓰이지 않던 철골과 유리를 처음으로 사용했습니다. ‘근본’ 없는 구조물이지만 이것 역시 서울을 상징하는 근대 문화유산이라고 생각해요. 벚꽃 문양과 용마루 등 섬세한 디테일과 깨끗한 흰색 구조물의 조화도 뛰어나고요. 온실에는 생달나무, 고사리 등 우리나라 전통 수종과 식물이 많아요. 어딘가 모르게 야무지고 단단한 느낌입니다.”


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는 나은중(오른쪽)·유소래(왼쪽) 건축가. 2009년 뉴욕에서 네임리스 건축을 개소한 후 서울로 사무실을 확장했다. 거대한 레고 블록 2개를 교차해 놓은 듯한 형태의 별내 RW 콘크리트 교회, 남양주에 있는 ‘삼각학교’ 등이 대표작. 간결하고 미학적인 디자인이 특징이다. <설화문화전>에 출품한 활 구조물을 비롯해 다양한 공공예술, 전시, 설치 작업도 진행했다. www.namelessarchitecture.com

수연산방 
김은하

“이태준 작가가 철원 고향 집의 건축 자재를 서울로 그대로 옮겨와 지은 고택입니다. 그의 작품 속에 성북동 집에 대한 묘사가 있는데 이를 바탕으로 1930년쯤 지었다고 추정하고 있어요. ‘문인이 모이는 산속의 작은 집’이라는 뜻의 수연산방壽硯山房은 1900년 초반, 실제 사람이 살던 생활 건축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의미가 있어요. 궁궐 건축과 현대건축 사이의 공백이 큰 서울에서 서민 가옥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귀한 자료가 여전히 숨쉬고 있는 거니까요. 한옥 하면 기와지붕, 처마, 서까래 같은 외관을 이야기하지만 수연산방은 생활의 편의를 위해 시도한 합리적인 내부 구조를 보는 것이 더 흥미로운 건축이에요. 1930년대까지만 해도 집은 남녀의 공간이 나뉘어 있었는데, 이곳은 성별을 초월한 집약체예요. 특히 누마루는 안방이자 사랑채로 사용한 ‘멀티룸’이죠. 창호가 아닌 유리로 창을 마감한 것도 놀랍습니다. 가장 재미있는 것은 화장실이에요. 당시 본체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곳은 마루와 연결돼 있어요. 2000년대에 등장한 ‘모던 한옥’의 시초죠.” 


강원도 원주의 단독주택 사랑재와 선유리 도시형 생활 주택 등 주거 프로젝트를 진행한 비원 파트너스의 김은하 소장. 현재 서울특별시건축사회 교류협력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1900년대 서민 가옥 연구와 복원 사업을 기획하고 있다. www.beonarchi.com

서울스퀘어 
이호락

“서울스퀘어는 서울역에서 나왔을 때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건물로 서울의 첫인상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드라마 <미생>으로 주목받은 건물로 ‘원 인터내셔널’ 본사죠(웃음). 1977년 지상 23층, 연면적 13만 2806m2(4만174평) 규모로 완공된 국내 최대 빌딩 중 하나로 당시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이 건물의 위용에 위축되곤 했죠. 서울 고도성장의 상징이던 건물이 2007년 모건스탠리에 매각되면서 레노베이션을 했습니다. 당시 첫 설계안을 보면 외관이 아주 전위적이고 화려해요. 자금 문제가 얽히면서 담백하고 차분한 디자인으로 변경되었는데 오히려 잘된 케이스라고 봅니다. 벽돌을 채택해 본래 붉은빛 외관을 유지하고,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 측면의 지하 통로는 그대로 뒀습니다. 통로와 지하 분위기가 이어질 수 있도록 내부 역시 벽돌로 마감하고요. 무작정 새 빌딩을 세워 올리기에는 공간이 더이상 부족한 현재의 서울이 어떻게 도시를 다듬으면 좋을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해요” 


정림건축에 재직 중인 이호락 건축가는 수원화성박물관, 이화여자대학교 디자인관, 경주대학교 공학관 등 굵직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실무 경력을 쌓았다. 서울 낙산에서 자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소규모 레노베이션 등 ‘작은 건축’에도 관심이 많다. www.junglim.co.kr

테헤란로
 백준범

“1972년부터 논밭을 개발해 조성한 곳이 테헤란로입니다. ‘IT 밸리’를 구상했지만 IMF 이후 금융·보험 회사들이 자리를 잡았죠. 혹자는 테헤란로가 외국 자본과 외국인 건축가가 결탁해 세워 올린 빌딩 숲에 불과하다고 폄하하며 우리 문화는 없다고 단언하지만 저는 좀 다른 생각입니다. 테헤란로는 서울 모던 건축의 시작점이에요. 초고층 빌딩에 대한 노하우와 기술이 전무하던 시절 테헤란로는 서울 빌딩의 지침이자 교본이었습니다. 경제 발전 속도와 건축 성숙의 속도가 비례하지 않던 시절 이곳이 없었다면 서울의 빌딩 문화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최근에는 한국 회사들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도 많고, 해외에서 실무를 쌓은 건축가들의 움직임도 활발합니다. 개인적으로 포스코 빌딩을 가장 좋아해요. 두 개 동을 나눠 브리지로 연결한 구성이 간결하고 무엇보다 비율이 절묘합니다. 지방이 아닌 탄탄한 근육으로 무장한 덩치 좋은 남자, 날렵하기까지한 야구 선수 같은 느낌이에요.”


하버드 대학교 건축학과 석사 과정을 마친 백준범 건축가. 노먼 포스터의 ‘포스터 앤드 파트너스’에서 근무했으며 버진 갤럭시 우주 항공기지 ‘스페이스포트 아메리카’ 프로젝트를 총괄했다. 현재 창조건축 상무로 재직 중이며 모바일 건축 ‘BMW 7시리즈 모빌리티 라운지’를 선보이는 등 혁신적인 건축에 대한 관심이 높다. www.cja.co.kr

우사단길
 하태석

“이태원역을 중심으로 큰길가 반대편 쪽으로 오면 우사단길이 펼쳐져요. 이슬람 사원부터 도깨비 재래시장까지 이르는 길인데 다양한 공방과 디자인 숍이 철물점, 미장원과 사이좋게 섞여 있지요.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된 건 이 일대가 몇 년 전 재개발 구역으로 묶이면서부터예요. 개발이 진행되면 가게를 비워줘야 해 임대료가 낮게 책정됐고 덕분에 디자이너와 아티스트가 모여들면서 하나둘 재미있는 점포가 늘어났지요. 아티스트의 재능 기부 프로젝트도 심심찮게 일어나요. 도깨비시장에 가면 초입 도로와 점포 천막을 “여기로 오세요” 하는 텍스트와 그림으로 화사하게 바꾼 모습을 볼 수 있어요. 건축주와 상인, 주민과 아티스트가 함께 만든 공간과 프로젝트가 도시를 더욱 살기 좋고 재미있게 만들어요. 함께하는 과정에서 차별화된 디테일과 이야기가 생기지요. 우사단길이 매력적인 또 다른 이유는 큰길 주변으로 골목길이 많다는 거예요. 길 안쪽으로 들어가면 다양한 형태의 지붕과 계단, 공터가 만드는 또 다른 풍경이 마법처럼 펼쳐져요. 지대가 높아 가슴이 뻥 뚫리는 듯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건축 프로젝트에 각종 IT 기술을 접목해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이끌어내는 건축가. 2010년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서는 앱을 통해 시민들이 직접 자신이 살 집을 선택하고 이 결과가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미분 생활 적분 도시’를 선보였다. 건축사무소 SCALe, 젊은건축가포럼코리아를 이끌고 있다.

서울성곽
 어번 디테일

“독일과 한국 국적의 건축가 셋으로 구성된 우리가 만장일치로 선택한 곳이 서울성곽입니다. 조선 건국과 함께 건립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데다 지형의 70%가 산인 서울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덕분이지요. 서울성곽은 산의 능선을 따라 축조한 건축 유산으로 이곳에 서면 서울이 어떤 형태로 잉태되고 발전했는지가 한눈에 들어와요. 산 중턱까지 들어선 주택을 보면 고저高低를 가리지 않고 구석구석 스며드는 강물 같다는 생각이 들지요. 기록에 따르면 과거 한양 인구가 약 20만 명이었다고 해요. 어마어마한 규모로, 당시 독일에는 이렇게 큰 도시가 없었습니다. 서울성곽을 찬찬히 보면 한국인의 미감과 자연관도 읽혀요. 도성을 방어할 목적으로 지었지만 위압적인 구석이 전혀 없어요. 산세를 따라 있는 듯 없는 듯 자연스럽게 자리잡고 있지요. 그렇다고 기능성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에요. 안쪽에서 보면 낮아 보이지만 바깥쪽에서 보면 이미 충분히 높이 자리하고 있어 공략이 쉽지 않지요. 서울성곽은 백악산 구간(창의문~혜화문), 낙산 구간(혜화문~광화문), 인왕산 구간(숭례문~창의문) 등 총 네 구간으로 이뤄져 있는데 시간이 될 때 쉬엄쉬엄 걸어보세요. 서울이 한층 더 역사적이고 아름답게 느껴질 겁니다.”


독일 출신의 건축가 다니엘 텐들러Daniel Tandler(오른쪽)와 한국 출신의 최지희(가운데), 김원천 소장(왼쪽)이 팀을 꾸린 어번 디테일. 젊은 건축가들의 그룹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도시형 한옥 설계와 레노베이션에 특히 강하다. 명륜동에 있는 한옥을 개조해 사무실로 사용하며 가구도 직접 디자인한다. www.chamooree.com(제작중)

노량진수산시장
 오브라 아키텍트

“노량진수산시장은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예요. 기차역이나 다리, 도로만큼이나 중요한 서울의 ‘기반 시설’이지요. 서울 특유의 ‘푸드 솔food soul’도 느껴지고요. 뉴욕에도 이렇게 큰 소매시장은 없습니다. 시장 보는 것을 즐기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며, 매사에 흥정을 하는 서울 사람들이 있기에 이런 시장도 자리 잡을 수 있는 것이겠지요. 도심에 이렇게 거대한 시장이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건축적으로도 인상적이에요. 식빵처럼 툭툭 자른 콘크리트 구조물 몇 개로 뼈대를 잡고 그 안에 수많은 상점과 식당, 길을 냈지요. 그 공간 안에서 상인과 고객 간에 활발한 거래가 일어나고요. 20세기 초에 유행한 건축 스타일인 ‘모던 건축’의 정신은 과도한 장식이나 과시를 지양하고 건축물에 내재된 본연의 목적과 실용성에 충실한 것이 특징이에요. 건축가나 건축주보다는 그 건축물을 사용할 사람들을 중요시하지요. 노량진수산시장에 오면 진정 좋은 건축이 어떤 건지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뉴욕과 베이징, 서울에 사무실을 둔 건축 집단. 대표를 맡고 있는 파블로Pablo(오른쪽)는 아르헨티나 출신, 제니퍼 리Jennifer Lee(왼쪽)는 재미교포 2세로 둘 모두 리처드 마이어, 스티븐 홀 등 세계적 건축가 사무실에서 일하며 경력을 쌓았다. 김수근 프리뷰상 수상작으로, 중국 베이징 외곽에 있는 산허 유치원 등 전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작업물을 선보이고 있다. 장식성을 최대한 배제하고 실용성을 강조한 설계가 특징이며 ‘예술적’ 건축을 지향한다. www.obraarchitec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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