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January 28, 2017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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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 히틀러랑 나치가 나쁘다는 생각에는 다들 이견이 없을것이다.유대인을 학살한 홀로코스트가 워낙에 유명하니까.

그리고 이 나치와 히틀러를 몰아낸 영국과 미국은 종종 자유와 인권을 수호하는 정의의 사도처럼 묘사된다.

그런데,정말로 이게 사실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전혀 아니다.종전이후 영미권 세력이 패권을 잡아가면서 보기좋게 포장된 것일뿐 이들도 크게 다를거없다.

지금부터 대영제국의 이면을 알아보자!

1.인도의 뱅갈 대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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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19세기에 이르러 전세계에 식민지를 건설한덕에 해가지지않는 나라라 불리웠다.이들이 세계의 패권을 잡았다는 사실에 감히 어느누구도 이견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러한 대영제국의 가장 거대한 식민지중 하나였던 인도는 1947년 독립하기 전까지 경제적으로 끊임없이 수탈당한다.

이미 인도는 18세기부터 영국의 곡물 수탈로 주기적인 기아를 겪어왔는데 적게는 수만명에서 많게는 수백만명이 굶주림으로 아사하였다.

그리고 이게 절정을 찍은게 1943년 뱅갈 대기근이다.

당시 인도에게 식량을 제공하던 영국령 '버마'가 적국이었던 일본에게 점령당하게 된다.

그러자 영국 처칠 내각은 일본의 인도 침략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뱅갈과 방글라데시 지역의 식량을 곡물로 징발하는 한편, 민간으로의 반출은 금지한다.

그덕에 뱅갈지역에는 역사상 최악의 대기근이 몰려왔고 수많은 인도인들이 굶어죽게된다.

보다못한 당시 영국 총통이 본국에게 구호를 요청했으나 처칠은 이를 묵살.심지어 구호물자를 보내주겠다는 호주와 미국의 요청도 거부한다.

전문가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이 대기근 기간동안 뱅갈 지역에서만 300~700만명 정도가 아사한걸로 추정된다.

물론 처칠이 일부러 저들을 아사하게 했다는 생각은 안한다.하지만,처칠이 당시 뱅갈문제에 조금만 더 신경을 썼다면 피해를 줄일수 있었다는건 분명한 사실이다.앞으로 처칠에대해 평가할때는 이런 사항들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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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보어전쟁-유대인 수용소의 모티브가 된 보어인 수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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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대에 보어인들이 거주하던 오렌지 자유국과 트란스발 공화국에서 다이아몬드 광산이 발견된다.그러자 이게 탐이 난 영국은 1880년 보어전쟁을 일으킨다.

하지만 보어인의 치고 빠지는 게릴라 전술에 패배.덕분에 독이오른 영국은 1899년부터 1902년까지 이루어진 2차 보어전쟁에서는 그들의 장기인 게릴리전을 할수 없도록 보어인 거주지역을 싸그리 날려버린다는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그와함께 16만명이 넘는 보어인 여자와 아이,노인을 집단 수용소에 감금한다.

당시 집단 수용소의 환경은 열약해서,이질 콜레라등 온갖 전염병이 창궐하게 되고,덕분에 2만명의 보어인이 수용소에서 죽게된다.

이러한 보어인 집단 감금은 보어군의 사기를 떨어뜨렸고,덕분에 영국에게 달콤한 승리를 안겨주었다.

그리고 이때 사용된 수용소는 훗날 한 독일인이 만든 유대인 수용소의 모티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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