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공립고등학교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자율형 사립고(자사고)로 상징되는 이명박 정부의 고교다양화 정책과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이 도입한 고교선택제는 고교서열화를 강화했다. 학생의 선택을 받지 못한 일반고는 '똥통학교'라는 낙인이 찍혔다. 이런 가운데, 일반고 위기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혁신학교로 탈바꿈한 고교에서는 행복한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혁신고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오마이뉴스>는 다섯 차례에 걸쳐 일반고의 위기를 진단하고 그 대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편집자말] |
▲ 30일 경기도 시흥 매화고등학교 학생들이 활기찬 모습으로 등교하고 있다. 올해 매화고 2학년을 대상으로 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설문조사에 따르면, '나에게 관심을 갖고 따뜻하게 대해주는 선생님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84.8%였다. '우리학교는 선생님들이 열심히 가르쳐 주셔서 좋다'는 비율은 93%에 달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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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일 경기도 시흥 매화고등학교 학생들이 일찍 등교해 오전 수업 시작 전까지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다. 학생들은 이른 아침에 친구들과 함께 축구하는 것에 대해 "운동을 통해 스트레스를 건전하게 발산하며 활기차게 아침을 시작할 수 있어 수업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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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6일 열린 제2회 청소년 기술창업올림피아드 결선. 미래창조과학부와 교육부가 공동 주최하는 이 대회는 전국의 고등학교에서 435개 팀이 참가해, 창의성과 기술창업 아이디어를 놓고 경쟁했다. 결선에 오른 15개 팀의 대부분은 '과학 영재'들이 모인 과학고 학생들이었다.
1회 대회 공동 금상도 전북과학고와 한국과학영재학교(옛 부산과학고) 학생들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2회 대회에서는 파란이 일었다. 공동 금상 수상팀 중 한 곳이 일반계 고등학교 학생들이었던 탓이다. 이 학생들은 버섯뿌리를 이용한 단열재를 내놓아, 심사위원들의 박수를 받았다. 1회 대회 때 이 일반고 학생들이 다른 과학고 학생들을 제치고 동상을 받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셈이다.
이 학교는 경기도 시흥시 매화동에 있는 매화고등학교다. 아파트와 논밭으로 둘러싸인 이 학교 재학생의 부모 상당수는 인근 공단지역으로 출근하는 '블루칼라'다. 비평준화지역인 시흥의 학생들은 시내에 있는 학교를 선호한다. 때문에 2009년 설립 당시 매화고에는 인근 지역의 다른 일반고 진학에 실패한 학생들이 주로 입학했다. 학교 담벼락 주변에는 담배꽁초가 수두룩했고, 지역 주민들은 "매화고가 매화동을 망친다"고 혀를 찼다.
그러나 2010년에 과학중점학교로, 2011년에 혁신학교로 지정되면서 매화고가 180도 바뀌었다. 매화고 학생들은 과학고 학생들과 당당히 경쟁하면서 각종 과학·발명 대회에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기술창업올림피아드에서 금상을 받은 2학년생 이정호군은 "과학고 학생들을 이겨서 기분이 좋았다"면서 "학생들이 입시부담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 덕에 수상한 것 같다"고 전했다.
수능 문제 풀이는 가라... 확 바뀐 과학 수업
▲ 강선화 수리과학교육부장이 과학 수업에서 학생들과 함께 층간 소음 문제와 해결 방안에 대해 토의하고 있다. 매화고의 과학 수업 시간은 창의성과 융화적 사고를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융합인재교육(STEAM 교육) 방식의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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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화고 백태승 학생이 한국청소년과학창의대회에서 '페트병 전구 효율 분석과 단점 극복방안 탐구'라는 주제로 특별상을 받았다. 태승군은 "부모님은 공부를 많이 시키는 학교에 가길 바랐다, 그런 학교에 간 친구들은 '왜 공부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면서 "저는 스스로 크리스마스 때도 나와서 연구했다, 그 덕분에 꿈을 정할 수 있었고, 공부에 대한 동기 부여도 얻었다"고 말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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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악~"
지난달 30일 오전 매화고의 과학 수업 시간. 조별로 마주 앉은 학생들이 한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수업 시간에 스마트폰을 꺼내도 될까. 강선화 수리과학교육부장이 학생들에게 "스마트폰 소음 측정 앱에 몇 데시벨로 기록됐죠?"라고 묻자, 학생들은 서로 숫자를 외쳤다. 조는 학생은 찾아볼 수 없었다.
과학체험 활동을 기반으로 하는 융합인재교육(STEAM 교육) 방식의 수업이다. 강선화 부장은 "칠판에 각종 공식을 써넣기만 하는 수업은 교사로서 편하다, 수업 준비를 안 해도 된다"면서 "하지만 학생들을 위해 교사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가르침이 아닌 배움 중심의 수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선화 부장은 대기업 연구소 출신으로 경기도과학교육원 부설 영재교육원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2010년 부임해 혁신학교 선정을 추진한 홍정수 당시 매화고 교장은 2011년 강 부장을 매화고로 초빙했다. 홍정수 전 교장은 "더 좋은 교육을 위해 경기도 전체 학교에서 수소문해, 능력과 열정이 있는 교사 7명을 학교로 모셔왔다"고 밝혔다.
홍정수 전 교장은 매화고를 바꾸기 위해 혁신학교와 과학중점학교의 융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과학교사들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닌, 학생들이 직접 주제를 정해 탐구하고 실험하도록 수업을 진행했다. 강선화 부장은 "처음엔 학생들이 말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곧 학생들이 과학에 흥미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백태승군은 지난 1월 과학대회 왕중왕전이라 불리는 한국청소년과학창의대회에서 '페트병 전구 효율 분석과 단점 극복방안 탐구'라는 주제로 특별상을 받았다. 태승군은 "책상에서 공부만 하는 것에 회의감이 있었다"면서 "매화고에서는 직접 연구주제를 정하고, 실험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상을 받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부모님은 공부를 많이 시키는 학교에 가길 바랐다, 그런 학교에 간 친구들은 '왜 공부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면서 "저는 스스로 크리스마스 때도 나와서 연구했다, 그 덕분에 꿈을 정할 수 있었고, 공부에 대한 동기 부여도 얻었다"고 말했다. 태승군은 울산과학기술대에 1차 합격했고, 포스텍과 카이스트 문도 두드리고 있다.
'발명 학교' 매화고, 그 비법은?
▲ 30일 경기도 시흥 매화고등학교에서 발명특허 동아리(HELIOS) 학생들이 임종우 지도교사와 함께 3D 프린터를 작동하고 있다.임종우 지도교사는 수업 시간에 수능 문제 풀이가 아닌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쳤고, 여기에 흥미를 느낀 학생들은 발명을 하면서 자존감을 찾게 됐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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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고는 '발명 학교'로도 유명하다. 홍정수 전 교장은 2012년 발명에 관심이 많은 과학교사 임종우씨를 데려왔다. 임종우씨는 수업 시간에 수능 문제 풀이가 아닌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쳤고, 여기에 흥미를 느낀 학생들은 발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곧 큰 성과가 나타났다. 매화고 학생들은 전국 학생발명품 경진대회 등 각종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중국국제발명전을 비롯한 다수의 국제대회에서도 상을 탔다. 임종우씨는 "단순한 수능 문제 풀이만 하면, 학생들이 대학에 가서 학과를 잘못 선택했다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많은 학생들이 다른 학교에 갔으면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 취급을 받았겠지만, 매화고에서는 발명을 하면서 자존감을 찾고, 그 덕분에 학교에 다니는 걸 좋아한다"면서 "학생들은 좋은 대학이나 대기업에 가지 않더라도 자신의 꿈을 찾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3학년생 박민홍군 역시 발명으로 다수의 상을 받았다. 특히 소외된 이웃을 위한 아이디어 대회에서 대학생 형들과 경쟁해 은상을 받은 것이 그에겐 가장 뿌듯한 기억으로 남았다. 민홍군은 "다른 학교 친구들은 공부만 하고 있어 불행해 보인다"면서 "저는 이곳에서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상도 타고 뜻 깊은 일도 하고 있어서 즐겁다"고 전했다.
이 학교 2학년 학생의 학부모인 최윤정씨는 "딸이 중학교 때부터 임종우씨를 알게 돼 매화고로 오고 싶어 했지만, 교육환경이 더 좋은 지역 학교에 보냈더니 펑펑 울더라"며 "결국 딸을 매화고에 다닐 수 있도록 다시 이사를 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이어 "아이가 발명한다고 늦은 밤까지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즐거워 보인다"고 덧붙였다. 김재연 교감은 "집에 가라고 해도 학교를 떠나지 않는 학생들이 많다"고 거들었다.
"아이를 이 학교에 잘 보낸 것 같다"
▲ 매화고 3학년 학생이 인문사회교육부 독서지도교사를 찾아와 진로에 대한 고민을 상담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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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설립 당시 매화고에는 인근 지역의 다른 일반고 진학에 실패한 학생들이 주로 입해 수준 떨어지는 학교라고 알려졌지만, 현재 매화고는 혁신학교 지정 이후 학생들의 자유롭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만족도가 높은 학교로 변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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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고의 인문사회 중점 프로그램도 주목을 받고 있다. 다른 학교에 없는 독서지도사가 운영하는 '자유 글쓰기 프로그램'은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박선화 인문사회교육부장은 "매달 여러 인문학 프로젝트나 대회를 운영하고 있는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하게 만드는 인문학 아카데미의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박주빈양은 지난달 교내 인문사회 학술소논문 대회에 참여했다. '예술과 문학의 접목과 교육에서의 그 활용'이라는 주제로 본선에 올랐다. 주빈양은 "음악과 미술을 좋아하지만 재능이 없다는 걸 느끼고 꿈을 포기했다"면서 "소논문 대회를 통해 미술품 경매에 대한 꿈을 세웠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매화고가 다른 학교와 달리 학생들에게 자율성, 창조성 등을 충분히 보장해 줄 수 있었던 것은 교사가 학생을 존중하도록 만드는 학교 문화 혁신 때문이다. 홍 전 교장은 "아이들이 잘못해도, 아이들 탓만 말자는 공감대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직접 배려·존중·나눔을 강조하는 '더불어 살기' 교재를 만들어 학생들을 가르쳤다. 교사 1명이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 4~5명을 집중적으로 보살피는 '무한도전 프로그램'은 학생들의 만족도를 크게 높였다. 박경애 교무부장은 "학교가 따뜻해졌다"고 전했다.
무한도전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1학년생 신예진양은 "공부에 흥미가 없었고 낯가림이 심해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면서 "하지만 선생님들이 보살펴주시면서, 고민이 있으면 선생님께 털어놓는 사이가 됐다, 학교에 가는 게 재밌다"고 말했다. 이어 "공부하는 방법도 배우면서, 처음으로 혼자 공부를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올해 매화고 2학년을 대상으로 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설문조사에 따르면, '나에게 관심을 갖고 따뜻하게 대해주는 선생님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84.8%였다. '우리학교는 선생님들이 열심히 가르쳐 주셔서 좋다'는 비율은 93%에 달했다. 학부모 최윤정씨는 "얼마 전 2학년 6반 학생들이 다리에 깁스를 한 친구를 끌어주고 밀어주면서 춘천 남이섬에 다녀왔다"면서 "아이를 이 학교에 잘 보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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