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주가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잡스 사후 3년 만에 주가가 2배나 올랐다. 애플 주가는 아이폰6 발표 기대감으로 지난 8월 100달러를 넘어선 뒤 9월 2일에는 103.3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시가총액도 사상 최고치인 6580억 달러에 달했다. 10월에는 미국 증시 하락 여파로 주춤, 100달러가 깨지면서 시가총액이 5800억 달러(약 580조 원)선까지 떨어졌지만 여전히 독보적인 세계 1위다(지난 10월 15일 기준 주가 96.26달러, 시가총액 5841억 달러). 시가총액 2위인 석유 회사 엑슨(4100억 달러)과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팀 쿡(54)이 사령탑을 맡은 2011년 8월 24일 애플 주가는 51.11달러(액면분할 기준)였다. 한때 애플 시가총액의 절반에 육박했던 삼성전자는 역으로 주가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금은 4배 이상 차이가 벌어졌다.
쿡의 애플에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잡스의 애플에서 쿡의 애플로 바뀐 것일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지금의 애플은 잡스든 쿡이든 누구의 애플이 아니라 지속가능하게 성장하는 ‘굿 컴퍼니’가 됐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쿡은 애플에 어떤 변화를 시도했을까. 우선 쿡은 잡스의 유산을 버렸다는 비난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는 “누구의 애플이라기보다는 좋은 회사로 변신시키는 게 최고경영자가 해야 할 일”이라고 소박하게 답한다. 쿡은 2011년 8월 잡스에 이어 애플의 CEO가 됐다.
지난 9월 9일 애플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 플린트 센터에서 4.7인치, 5.5인치의 아이폰6·6+와 애플워치 등 일련의 신제품을 발표했다. 플린트 센터는 애플 본사 근처인 2년제 대학 ‘디 앤자 컬리지’ 안에 있다. 이곳은 잡스가 1984년 매킨토시 컴퓨터를 발표한 곳으로 유명하다. 잡스는 당시 “매킨토시는 PC의 미래를 바꿔 놓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쿡이 이곳을 택한 것은 신제품에 중대한 의미를 부여하려 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그동안 쿡은 아이폰5와 아이패드 미니 등을 출시했지만 이는 기존 제품의 연장이었다. 잡스처럼 혁신적인 제품을 생산할 능력이 없다는 비판이 따라다녔다. 쿡은 올해 초 “새로운 카테고리의 대단한 제품을 준비하고 있다”고 응수해 왔다. 이날 아이폰6를 선보인 뒤 “한 가지가 더 있다(One more thing)”를 외치고 하이라이트인 애플워치를 공개했다.
제품 발표 이후 평가는 엇갈렸다. 한국 주요 언론은 대화면으로 전환한 아이폰6에 대해 “잡스의 유산과 철학을 팽개쳤다”며 평가절하했다. 아울러 미국판 포브스도 “쿡의 애플이 시장 선도자에서 추격자로 변신했다”고 지적했다.
잡스는 생전에 대화면 스마트폰에 독설을 퍼부었다. “손가락은 스마트폰을 쓰는 최고의 도구”라며 “스마트폰 크기는 한 손으로 모든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 3.5인치가 최적”이라고 말했다. 대화면 삼성 갤럭시 노트가 출시 되자 “사용하기 불편해 누구도 사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이날 쿡이 새로울 것 없는 제품을 들고 나온 것에 대해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대화면 아이폰6는 물론이고 애플이 선보인 스마트 워치는 이미 삼성·LG·소니 등이 판매 중이다. 모바일 결제인 애플페이 역시 구글이 3년 전 진출한 분야라는 점이다.
대화면 아이폰6 대박, 월가 ‘목표주가 올려’
반면 영국 가디언과 BBC방송, 일본 NHK방송과 니혼게이자이 신문 등 해외 주요 언론은 이번 신제품 발표에 대해 다른 평을 내놨다. 애플이 추격자로서의 면모를 보인 게 아니라 애플다운 전통을 지켰다고 평가했다. 애플워치만 해도 기존 스마트 워치와 기능 면에서 차별점이 확연하다고 분석했다. 그동안 애플은 기존 시장에 뛰어들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했다. 맥을 비롯해 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가 그렇다. 세계 최초 발명품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런 관점에서 쿡이 이날 선보인 제품은 기존 애플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신형 아이폰은 예약판매 신기록에 이어 보름 만에 2000만 대 이상 팔리는 대박을 냈다. 월가 역시 아이폰6 판매량 이외에 내년에 본격 선보일 애플워치도 ‘기대 이상의 혁신제품’이라며 목표주가를 상향조정했다.
애플 주가는 지금보다 2배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헤지펀드 투자자로 유명한 칼 아이칸이 지난 10월 9일 애플의 적정 주가가 현재의 2배인 주당 203달러라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아이칸은 애플 주식 5300만 주를 보유하고 있다. 그는 이날 쿡 CEO에게 ‘세일: 애플 주식이 반값에 팔리고 있다(Sale: Apple Shares at Half Price)’는 공개서한을 보냈다. 아이칸이 계산한 애플의 시가총액 적정치는 1조2000억 달러(약 1200조 원)다. 이는 우리나라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1428조 원와 맞먹는 수준이다.
아이칸은 “쿡은 애플에 이상적인 CEO”라고 평하면서 추가로 자사주 매입을 주문했다. 이어 애플의 2015 회계 연도의 매출·이익이 전년 대비 각각 25%, 44%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애플 회계 연도는 9월 마지막 토요일에 끝난다. 2015 회계연도는 지난 9월 28일 시작됐다.
아이칸은 이익의 19배가 애플 시가총액의 적정선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환산하면 적정 주가는 주당 203달러, 시가총액은 1조2000억 달러가 된다. 전망의 근거는 아이폰 뿐 아니라 아이패드와 애플워치 등이 추가로 이익을 내는 데다 아이폰6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을 빼앗아 올 것이라는 분석에서다. 그는 “애플의 경쟁자는 구글 외엔 없다”고 단언했다.
아이칸의 분석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애플의 TV 사업과 모바일 결제인 애플페이에 대한 분석이다. 그는 2016 회계연도에 애플이 55·65인치 초고해상도(UHD) TV를 내놓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런 TV를 2016년 1200만 대, 2017년 2500만 대를 판매할 것으로 추정했다. 평균 판매 가격이 1500달러라고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애플페이 역시 2017년에 25억 달러의 매출을 올려 미국 신용카드 시장의 30%를 점유할 것으로 내다봤다. 애플 고객은 비교적 소비성향이 강한 고소득자라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아이칸의 분석대로 애플의 시가총액이 1조 달러에는 턱 없이 못 미치더라도 주가 상승에 대한 전망은 여전하다. 각종 지표가 호조다. 애플의 2015년 순이익 전망치를 바탕으로 한 주가수익비율(PER)은 8배밖에 안 된다. 이는 약 15배 수준인 S&P500 지수의 절반 수준이다. 애플 주식 등 20억 달러를 운용하는 번험 자산운용의 펀드 매니저 존 번험은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시가총액 1조 달러는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애플 주식은 이익과 매출 등 어떤 지표를 보더라도 매우 싼 주식이고 앞으로 몇 년간 훨씬 더 많은 돈을 벌 것”으로 예상했다.
팀 쿡의 애플을 분석한 미국의 저널리스트 유카리 이와 타니 케인은 저서 『유령에 사로잡힌 제국(가제, Haunted Empire)』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CEO가 된 뒤 쿡은 지인들에게 “아침에 일어났을 때 잡스라면 어떻게 생각하고 결정했는지를 먼저 생각하고 단지 옳은 일을 하는 거야라고 내 자신을 타일렀다”고 털어 놨다. 쿡의 가장 큰 매력은 잡스와 달리 종교단체 교주 같은 카리스마가 없다는 점이다. 인간적으로 다가서는데 잡스 만큼의 부담이 없다. 쿡은 뭔가를 결정할 때 해당 본부장부터 직원까지 소통한다. 잡스와 달리 주주와 언론·소비자의 반응도 확인한다.’
케인의 분석대로 쿡은 관리형 CEO다. 그는 잡스에 의존했던 애플의 기업문화 변신을 가장 먼저 시도했다. 잡스가 오로지 제품과 디자인에만 신경 쓰던 것과 달리 본연의 기업활동에 주안점을 둔 셈이다. 대표적인게 주주 친화 경영이다. 애플은 2010년 이후 100조 원이 넘는 현금을 보유했다. 잡스는 1995년 이후 한 번도 배당을 하지 않았다. 줄곧 주주들로부터 ‘막대한 현금자산을 투자자와 나눠 가져야 한다’는 압력을 받아왔다. 쿡은 잡스의 ‘무배당 원칙’을 깨고 2012년 17년 만에 대규모 배당을 했다. 이어 주식 분할까지 하면서 유통 물량을 늘렸다. 지속적으로 자사주를 매입해 주가를 받쳤다. 배당과 자사주 매입에만 50조 원의 현금을 풀었다. 주주 친화 정책이 이어지면서 월가뿐 아니라 세계적인 헤지펀드에서 앞다퉈 애플 주식 매입에 나섰다. 애플 주가는 올해 100달러를 돌파했다.
조직구성도 투명하게 바꿨다. 잡스 1인이 주도하던 경영 스타일에서 시스템 경영을 정착시켰다. 쿡은 디자인을 총괄하는 조너선 아이브에게 제품 개발을 위임하고, 마케팅은 필 쉴러, 소프트웨어 개발은 크레이그 페러리기 같은 주요 임원에게 권한을 위임했다.
쿡은 엄청난 일벌레로 유명하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춘은 2008년 팀 쿡을 ‘일 중독자’로 표현했다. 새벽 4시 30 분에 일어나 이메일을 보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새벽에 전화회의를 할 만큼 일에 열정을 쏟는다. 일벌레지만 쿡은 침착하고 차분한 성격의 소유자다. 잡스가 사람들 앞에 나서 논쟁을 즐기고 회의를 주도하면서 감정을 거리낌없이 표현한 것과 대조적이다.
잡스의 ‘무배당’ 깨고 주주 친화 경영
대표적인 게 직원들과의 직접 소통이다. 그는 이메일과 사내 미팅을 통해 직원들과 자주 만난다. 디자인에 집착했던 잡스가 점심을 조너선 아이브와 대부분 보냈던 것과 달리 쿡은 회사 식당에서 직원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린다. 포춘은 “애플은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할 인간 CEO가 필요하고 그게 바로 쿡”이라고 평했다. 잡스가 종교 교주 같은 역할을 했던 것에 빗댄 말이다.
쿡은 거대 기업이 된 애플의 사회적 책임에도 눈을 돌렸다. 우선 근로환경이 열악하다고 미국과 중국 언론에서 비난을 받던 중국 아이폰 조립공장 개선에 착수했다. 2012년 중국 공장 노동자의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임금을 인상하면서 노동조건을 개선했다. 쿡은 “모든 근로자가 안전한 근로환경에서 일할 권리가 있다”며 “애플보다 더 노동자의 근로환경 개선에 노력하는 기업은 없다”고 말했다.
잡스 시절 찾아보기 어렵던 친환경 정책과 기부도 확대했다. 지속가능 경영으로의 전환이다. 그는 먼저 애플 본사 데이터센터를 100%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움직일 수 있게 거액을 투자했다. 온실가스 배출량 ‘0’이다. 주주총회에서 친환경 정책에 반대하는 주주가 “지속가능 경영에 들어가는 비용을 공개하고 수익성이 보장되는 범위에서 만 친환경 경영을 추진하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쿡은 “애플의 지속가능 경영이 싫으면 주식을 팔고 떠나라”며 단호하게 대응했다. 조용하고 신사적인 그의 대응이 이례적이었다. 친환경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준 셈이다.
쿡의 애플은 소비자·주주·직원 등 다양한 고객 계층을 만족시킨다는 데 잡스와 확연한 차이점을 드러낸다. 벤처로 창업해 ‘나를 따르라’는 카리스마로 애플을 이끌던 잡스와 비교된다. 쿡은 미국 오번대학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IBM에 입사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듀크대학 경영대학원을 마쳤다. IBM에서 12년 동안 제조와 유통을 담당하다 PC업체인 컴팩으로 이직했다. 컴팩에서 부사장으로 있던 그는 6개월 만에 잡스를 만나 1998년 애플 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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