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는 통보를 받자마자 가슴이 뛰어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저는 대질신문 바로 전날 신당동 어느 골목에서 도움을 요청한 A씨를 만났습니다. A씨는 마치 그날의 고통이 되살아오는 것처럼 고통스러워 했습니다. 다행히 많은 분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무사히 대질 신문을 마쳤습니다. 그러나 고문 가해자와 피해자의 만남을 아무런 안전 조치나 대책도 없이 기계적으로 진행하는 모습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고문 가해자와 대질 신문... 고통이 되살아났다
▲ 지난 2012년 12월 14일 오후 이근안 전 경감이 서울 성동구의 한 뷔페 식당에서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고백> 출판기념회를 열어 "고문 당한 사람들과 그 가족들에게 사죄한다"고 밝혔다. | |
ⓒ 강민수 |
고문 가해자들은 법정에서 절대 자신의 고문 행위를 시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증거가 있느냐며 살아 있는 피해자를 능멸하고 비웃기까지 합니다. 인간 백정에서 목사로 거듭났다는 고문 가해자 한 사람은 법정에 거구의 괴한들과 함께 등장해 공포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2000년 이후 진실화해위원회 등 국가 과거사 조사기구들에 의해 한국 전쟁과 권위주의 통치 시기 국가가 저지른 학살, 고문 조작 등 중대한 인권 침해 사건에 대한 진실 규명 작업이 진행됐습니다. 진실 규명 작업이 중단된 2010년 이후부터는 국가 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재심과 국가 상대 손해배상 소송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국가 폭력 피해자들은 주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하에서 발생한 집단 학살과 고문 조작에 의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거나 의문사하거나 또는 장기간의 감옥 생활을 겪었던 분들입니다. 수십 년간 감옥 생활과 사회적 고립을 겪으면서 가족들도 죽거나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오랜 감옥 생활을 마치고 나온 후에도 주위의 눈총과 시선은 따가웠습니다. 경제적 능력도 이미 상실한 상태였습니다. 다행히도 민주주의가 진전되면서 과거 국가 폭력에 대한 재조사가 이뤄지고 진실 규명과 재심, 국가 배상을 통해 명예회복을 이룬 분도 있지만, 그 수는 매우 적습니다.
2005년 9월, 현 양승태 대법원장의 전임자였던 이용훈 대법원장이 취임하면서 사법부 과거사 정리, 법원 개혁, 검찰 개혁의 바람이 잠시 일어났습니다. 그때 대법원장은 "권위주의 체제가 장기화하면서 법관이 국민의 기본권과 법치 질서 수호라는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한 경우가 있었고, 그 결과 헌법의 기본 가치나 절차적 정의에 맞지 않는 판결이 선고되기도 했다"며 사과했습니다. 실제로 1970~80년대 6500여 건의 공안 사건 판결문을 검토해 224건의 '문제 판결', 즉 재심 사유가 있다고 추정하는 판결을 찾기도 했습니다.
법무부도 사형제 폐지, 과거사 문제, 국가 인권 정책에 관한 진취적인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과거사 진상 규명에 적극 협조하는 한편 재심 절차가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서는 공판에 적극 참여하고, 국가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 민·형사상 무한 책임을 진다는 의미에서 공소시효 연장 배제, 소멸시효 이익 포기 등을 법률적으로 정비하겠다고 했습니다.
달라진 법정, 하지만...
지난 2007년 1월 23일 서울중앙지법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 사형수 8명에 대해 재심을 열고,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부는 그해 1월 30일 재심 항소를 포기했고, 재심 무죄 판결은 확정됐습니다.
그때 검찰은 "결국 사형 선고의 근거가 된 반국가단체 구성 부분 등에 대해 검찰이 상소해도 무죄 판결이 번복될 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30여 년간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을 위해 애써 온 유족들의 고통을 감안해야 한다는 점도 고려했다"고 했고, 많은 이가 검찰의 항소 포기 결정을 지켜보며 잔잔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얼마간 재심 법정에서도 아름다운 사과와 반성의 판결문이 흘러나왔습니다. 지난 2008년 11월 25일 광주고법 오송회 사건 재심 선고 공판에서 재판장은 피고인 9명에 대해 재심을 열고 전원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법원은 "그동안 억울한 옥살이로 심적 고통을 주고 사법부에 대한 기대를 무너뜨린 데 대해 사죄드립니다"고 했습니다.
2008년 11월 28일 춘천지법은 1972년 춘천 강간살인사건에 대한 재심을 열고 피고인 정원섭씨에게 36년 만에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때 재판장은 "긴 시간 동안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법원의 문을 두드린 피고인 정씨에게 경의를 표한다"며 "수사 과정에서 자신이 마땅히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와 적법 절차를 보장받지 못한 채 고통을 겪었던 피고인이 마지막 희망으로 기댔던 법원마저 진지한 성찰과 고민이 부족했고, 그 결과 피고인의 호소를 충분히 경청할 수 없었다는 점에 대해 어떠한 변명의 여지도 없다"고 사과했습니다.
그런데, 2009년 11월 26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 67명에 대해 국가가 635억 원의 국가 배상을 판결하자, 그동안 조금씩 고개를 들던 과거사 재심에 대한 반동의 흐름이 가시화됐습니다. 검찰은 국가 불법 행위에 대해 배상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나치게 배상액이 크고 국민의 법 감정에 반하는 과다한 배상이 될 수 있다며 항소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국가의 손해배상, 공소시효 따질 일인가
▲ 박정희 대통령 시절 국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했던 대통령 긴급조치 9호가 위헌 판결이 났지만 70년대에는 합법이었으므로 당시 법원 판결에는 국가 책임이 없다는 대법원 판결에 긴급조치 피해자들이 지난 4일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 |
ⓒ 박소희 |
그때까지만 해도 국가의 손해배상 소멸시효 주장에 대해 서울중앙지법 등 하급심에서는 "재심을 통해 법원의 판단을 받기 전까지 고문 행위 가담자가 소속돼 있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제기한다는 것은 합리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며 "법이 개인에게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국제적으로도 중대한 반인권적 행위에 대해서는 공소 시효의 적용을 배제해야 한다는 논의가 지속되고 있다", "국가의 위법한 조치로 인한 결과에 대해 필요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 "국가가 소멸 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통로를 사실상 봉쇄하는 것"이라며 기각했습니다.
그런데 2011년 1월 13일 대법원은 민족일보 조용수씨에 대한 국가배상 청구소송 판결에서 "국가의 불법행위부터 장시간이 경과해 통화 가치에 상당한 변동이 생겼는데도 덮어놓고 불법 행위부터 지연손해금이 발생한다고 보는 경우 합리적 이유 없는 현저한 과잉 배상의 문제가 제기된다"고 선고했습니다.
잘못된 판결로 말미암은 고통이 수십 년이 아니라 2010년 3월 16일 손해배상 청구소송 변론이 끝난 시점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손해배상이 늦어져 국가가 당연히 물어야 할 지연 이자 69억여 원이 졸지에 2천여만 원으로 감액된, 기막힌 판결이었습니다. 이는 며칠 후 벌어진 인혁당 재건위 사건 국가배상 판결에서도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위자료를 제외하고 국가가 물어야 할 지연 이자금이 400억에서 11억여 원으로 줄었습니다.
그 후 지금까지 전국의 하급심에서 여러 건의 과거사 재심이 벌어지고 있지만 국가배상 판결은 이 같은 대법원의 판례에 따라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수십 년간 국가 폭력에 몸서리치는 고통을 당한 고문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이런 판결들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간첩 아버지를 둔 적이 없다'며 20여 년 전부터 연락을 끊은 아들과 형제(4남 3녀)들을 한 번만이라도 만날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
- 납북 귀환 어부 B씨(B씨는 장애인 및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매달 50만 원의 지원비로 생계를 꾸리고 있다.)
"수감 생활 동안 전 재산을 팔아 구명 운동을 하던 부모님은 화병으로 돌아가시고, 자식들과 관계도 멀어졌다."
- 조작 간첩사건 피해자 C씨
"고문과 폭행을 당하던 그때가 떠오를 때면 으스러졌던 팔에 통증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 조작 간첩사건 피해자 D씨(중정 고문 수사 후 구속되어 무기징역 선고 받고 21년간 복역. 1989년 출소 후 이듬해 아들은 자살했다.)
"당시 수사관들도 독재 정권에서 살기 위한 방편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용서하고 싶습니다."
- 조작 간첩사건 피해자 E씨
"한 친구는 고문 후유증으로 몇 차례 수술을 받다 1998년 세상을 떠났다... 두 차례 암 수술에다 12가지 합병증에 시달려 죽고 싶었지만 진실 규명을 위해 29년을 버텨왔다."
- 고문 조작사건 피해자 F씨
G씨와 그의 친척은 각각 징역과 자격정지 15년과 10년 형을 선고받고 만기 복역했으며, 10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다른 동료는 1990년에 옥사했다. 또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G씨의 형도 고문 후유증으로 9년 전 숨졌다.
- 조작 간첩사건 피해자 G씨
아내는 충격으로 정신병을 얻었고, 알츠하이머병을 앓던 아버지는 세상을 뜨기 직전에도 "억울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아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세 살배기 아들은 물에 빠져 숨졌다.
- 고문 조작사건 피해자 H씨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나온 I씨 형제는 고문 후유증으로 병원을 전전하다가 형은 출소 3년 만에, 동생은 출소 2년 만에 숨졌다.
- 조작 간첩사건 피해자 I씨
"27년 동안 겪어온 고통이 너무 커서 무죄 판결도 내 마음을 다 씻어내지는 못한다... 아내는 석방을 위해 백방으로 뛰다 울화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 조작 간첩사건 피해자 J씨
국가에 의해 망가진 사람들, '과도한 배상'은 존재할까
▲ 지난 2011년 12월 30일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64세로 별세한 가운데,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 영정사진이 놓여져 있다. | |
ⓒ 유성호 |
과연 이분들에게 '과도한 배상'이란 무엇일까요.
차라리 국가는 '과도한 배상' 비슷한 것이라도 해본 적 있을까요. 연일 터지는 수천억 국방부 군납 비리나 수조 원이 넘는 4대강 개발 손실에는 놀랍도록 냉정한 분들이 왜 아이들 무상급식 예산과 국가 폭력 피해자 손해 배상금에는 유독 핏발선 눈으로 '국가 재정 위기'를 부르짖을까요.
국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거꾸로 하는, 참으로 망측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국가 폭력 피해자의 재심 현황과 국가 배상 소송의 여러 문제점을 논의하는 자리가 오는 25일 화요일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개최됩니다.
재심과 국가 배상 소송뿐 아니라 한국 전쟁 시기 대전 산내면 희생자 유족회 분들과 원풍모방 동지회, 긴급조치 피해자, 납북피해자 등 국가 폭력에 의해 한 생을 유린당한 피해자분들이 직접 나와 재심과 국가 손해 배상에 얽힌 억울한 사연을 이야기합니다. 또 토론회에서는 재심과 국가 배상 소송을 직접 이끌어가시는 여러 변호사님(김형태, 이상희, 조영선, 오세범 변호사)들이 참석해 법률 전문가로서 법정 일선에서 목도하는 문제점에 대한 분석과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 25일 국회토론회 과거사 재심과 국가배상 소송과정에서의 국가폭력과 2차피해 토론회 | |
ⓒ 인권의학연구소 |
"트라우마의 재경험은 때로 원래의 트라우마보다도 더 큰 고통을 피해자에게 가져다줄 수 있다. 과거의 트라우마에 현재의 트라우마가 더해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에게는 트라우마의 영향에서 자신은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을 안겨줄 수 있다."
국가 폭력 피해자들의 고통을 줄이는 데는 개인의 회복력뿐 아니라 사회적 지지와 공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합니다. 국가 배상금보다 중요한 것은 고문 가해자와 법원, 검찰 등 국가의 진정한 사과와 반성, 재발 방지를 위한 진지한 노력입니다. 지금 국가 폭력 피해자들이 원하는 것도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이분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공감과 지지는 고문과 국가 폭력을 방지하는 가장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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