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주관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어떤 곳일까.
해마다 64만여명에 달하는 대학 지원자들의 당락(當落)을 결정하는 국가시험의 출제와 관리를 맡고 있지만 일반인들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교육과정평가원의 전신(前身)은 국립교육평가원. 1985년 중앙교육평가원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져 대입학력고사의 출제·관리를 맡았다. 93년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교육개혁정책에 따라 국립교육평가원은 정부출연 연구기관으로 재편된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98년 창설됐다.
교육과정의 연구·개발과 중장기 발전방안 연구 기능을 갖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고사 출제·관리다. 그 중에서도 수능시험이 가장 큰 비중을 갖는다.
연간 예산은 1298억원(2014년 기준). 이 가운데 310억원 가량이 정부출연금이다. 예산 사용액 가운데 가장 많이 쓰이는 분야는 각종 수탁용역 사업비로 올해 534억원이 배정됐다. 수능 출제 및 관리에는 360억원 가량을 배정하고 있다.
수능시험과 연 2회 치러지는 수능 모의평가 외에도 중·고입 검정고시, 고졸 검정고시도 평가원이 주관한다. 일부 지역에서 치러지는 고교신입생 선발시험과 초·중등교사 임용시험도 맡고 있다.
박사급 연구원이 많다 보니 신입사원 초임(2013년 연봉 기준)은 전국 302개 공공기관 가운데 7번째로 많은 4168만원이다. 직원 평균연봉도 7400여만원(2013년 기준)에 달한다. 임직원 수는 정규직 245명과 무기계약직 21명. 여기에 비정규직 125명을 포함해 300명 이상이 근무하고 있다.
수능오류 반복되지만 안이한 대처
연간 1200억원이 넘는 예산을 쓰고, 직원 평균연봉도 웬만한 대기업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지만 임직원들의 근무태도는 안이하기 짝이 없었다.
특히 수능시험 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평가원 창설 이후 반복되고 있다. 2004년 언어영역, 2008년 과학탐구영 물리II, 2010년 지구과학I 등에서 출제오류가 발견돼 수험생들에게 큰 혼란을 줬다. 2008년 수능 때에는 논란이 커지자 정강정 당시 원장이 책임을 지고 사퇴하기도 했다.
이전 세번의 오류 때에는 빠른 시일 내에 복수정답을 인정해 입시일정에 차질을 주는 선에서 논란이 마무리됐다. 하지만 이번 세계지리 문제의 경우, 소송까지 벌인 끝에 1년이나 지난 시점에 마지못해 출제오류를 인정했다. 국가시험 주관기관의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렸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수능출제의 신뢰 뿐 아니라 대처마저도 서툴렀던 탓이다.
수능 이의신청제도가 형식적이란 지적이 매년 제기됐음에도 개선책이 마련되지 않은 것도 문제다. 지난해의 경우 수능 당일인 11월 7일부터 4일 동안 이의신청기간을 거쳐 12일부터 1주일 동안 문항심사를 벌였다. 출제오류 이의가 제기됐던 세계지리 8번 문항은 한국지리 등 14건과 함께 심의했는데 출제자를 포함한 15명의 심사위원이 2시간 만에 ‘정답에 이상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평가원에서 근무한 전직 직원들은 “평가원이 과거 국가고시의 권위만 믿고 출제오류에 대해 안이하게 대처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평가원 연구원 출신인 A씨는 “문제를 출제한 사람이 이의심사까지 맡다 보니 자신들의 실수를 스스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며 “해마다 모의평가를 포함해 수천 문항을 개발하는 평가원이 ‘무오류’일 거라고 믿는 것은 오산”이라고 말했다.
평가원 출신인 한 대학교수는 “기본적으로 시사통계 문제의 경우 기준점이나 집계기관, 시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수능시험 출제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그는 또 “출제위원 사이에 갑론을박을 벌어져도 출제기간, 인쇄·배포기간 막바지에 몰려 제기된 문제점을 명확히 해결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며 “논란이 벌어졌을 때 평가원의 무오류성을 과신하거나 면피성으로 대처할 게 아니라 과감하게 복수정답을 인정해 더 큰 부작용을 막으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평가원 출신의 다른 대학교수도 “문제은행식이 아니라 연간 수천 개의 새로운 문항을 만들어야 하는 경우, 우리나라 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국가시험 출제기관도 오류가 발생하기 마련”이라며 “이의심사 과정에서 의견이 모아지지 않는다면 교육부와 평가원이 최종심의를 해 빨리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보완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8억 파스타, 국무총리실 특별점검 중
평가원 임직원의 윤리문제 역시 도마 위에 올라 있다. 이른바 ‘8억 파스타’ 논란이다.
정홍원 국무총리의 특별점검 지시에 따라 현재 감찰 조사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올해 수능이 오는 불과 1주일 밖에 남지 않아 본격적인 점검은 수능 이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평가원 측은 “각 교과별로 연간 수백 차례의 회의가 열리고 지방에서 올라오는 분도 있다 보니 회의가 끝나면 간단히 식사를 할 수 밖에 없다”며 “평가원 건물 1층에 있어 해당 식당을 이용한 것뿐”이라는 입장이다.
중앙SUNDAY는 문제가 된 B레스토랑을 찾아 입장을 밝혀 줄 것을 요청했지만 레스토랑 측은 “논란이 불거진 뒤 평가원에서 더 이상 오지 않는다. 취재에 응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레스토랑 본사 측에도 해명을 요구했으나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한 전직 연구원은 “연간 수천 번의 회의가 열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회의 때마다 반드시 식사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정동 주변에 식당이 적지 않아 특정 식당에 ‘몰아주는’ 오해를 피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국무조정실은 일부 결제금액에 부정사용이 있을 수 있다고 의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가원이 B레스토랑에서 결제한 횟수가 과도하게 많은데다 음식값이 비싸지 않은 레스토랑인데도 단가가 높은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만약 부정사용 사실이 확인되면 국무조정실은 평가원을 검찰에 고발할 수 있다. 공공기관이 ‘카드깡’을 했다면 업무상 횡령 혐의가 적용되며 유죄가 확정되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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