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소련 붕괴 이후 승리감에 취해"
미하일 고르바초프(83) 전 소련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사태를 언급하며 "세계가 새로운 냉전 직전의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이날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 기념식 연설에서 "이미 신(新) 냉전이 시작됐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고 dpa 통신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소련의 개혁·개방 정책을 이끌면서 베를린 장벽 붕괴의 실마리를 제공한 인물로 평가받는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서방, 특히 미국이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승리주의에 취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서방 지도자들의 머릿속에 도취감과 승리주의가 스며들었고 그들은 러시아가 약해지고 견제세력이 부재한 점을 이용해 세계에 대한 독점적 리더십과 지배를 추구했다. 주의하라는 경고의 말도 귀담아듣지 않았다"면서 "최근 몇 달간의 일들은 상대방의 이익을 무시한 근시안적 정책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유럽에 대해 "세계에서 변화를 이끄는 대신 정치적 격변과 세력권 다툼, 최종적으로는 군사적 갈등의 장(場)이 됐다"라면서 "그 결과 유럽은 다른 권력 중추들이 동력을 얻는 동안 약해질 수밖에 없었고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유럽은 국제 문제에서 강한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러시아와 독일의 동반자 관계 없이는 유럽에 안보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고 덧붙였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또 현 국제 정세를 물집이 피가 나고 곪은 상처로 발전한 상황이라고 비유하면서 "누가 지금 일어나는 일들로 가장 고통받는가. 그 대답은 틀림없이 유럽"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서방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확대해 옛 유고슬라비아와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 사태에 개입하고 미사일 방어계획을 세우면서 러시아를 화나게 했다고 지적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대해서도 "극적인 상황이 벌어지는데도 별다른 역할을 하지도, 확실한 조처를 하지도 않았다"라고 비판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오랫동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권위주의 통치를 비판해 왔지만,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서는 러시아와 푸틴 대통령을 옹호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는 앞서 기념식 참석 전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과 인터뷰에서 독일 인사들에게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러시아와 푸틴 대통령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당시 "우크라이나 문제는 단지 (러시아를 비판하기 위해) 미국이 찾으려는 하나의 구실에 불과하다"면서 미국은 독자적인 계획에 따라 세계의 모든 문제에 개입하길 원하며 이에 러시아가 반기를 든 것이 양국 간 갈등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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