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에 돈이 있으면 집어 가는 사람이 있듯 여자들이 야한 옷을 입고 다니면 성폭행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성폭행은 100% 남성들이 한다. 남자들은 씨를 뿌려 거기에서 건강하고 대를 이을 자손이 필요해서 그렇다.”(한겨레에서 위와 같은 이야기를 했느냐고 확인하자)“그런 얘길 했냐 안 했냐고 묻는다면 안 했다 소리는 안 하겠다. 다만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한 사람이 잘못된 건 맞지만 무조건 피해자는 아무런 조심을 안 해도 되고 가해자만 비난해야 할 게 아니라는 전제를 두고 말했다”
“왜곡된 성 인식이 아니라 팩트에 근거한 진화심리학에 나온 얘기다. 수치심을 느꼈다면 할 말이 없다.”- 한겨레(박수지), [단독] 법의학 권위자 “돈 있으면 집어가듯, 야한 옷 입으면 성폭행”, 2014년 5월 27일에서 발췌
이윤성 교수 발언, 어떻게 볼 것인가
이윤성 교수는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장수 프로그램의 애청자라면 익히 기억할만한 분입니다. 방송에서 이 교수는 항상 정의의 편에서 진실을 추구하는 데 도움을 주는 법의학의 권위자였습니다. 과학적 엄격함으로 범죄자의 심리와 범죄 행위의 잔인함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하던 그였습니다. 그래서 더욱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1. 팩트에 근거한 진화심리학?
이윤성 교수는 한겨레가 발언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자, “안 했다 소리는 안 하겠다”면서 자신의 발언은 “팩트에 근거한 진화심리학에서 나온 얘기”라고 합니다.
진화심리학은 인지심리학과 진화생물학에 그 바탕을 두고 인간의 심리를 진화론의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진화심리학은 남녀의 짝 찾기 전략은 다르다고 말합니다. 진화심리학의 ‘가설’은 탁월한 논리와 실증적인 연구 방법론으로 잘 설명할 수 없었던 여러 인간의 행동(마음)을 설명합니다. 하지만 그 학문의 권위나 대중적인 위상과 상관없이 어떤 학문적 가설도 성폭행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교수의 발언이 혹여라도 여성이 야한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책망하고, 그래서 성폭행의 원인과 책임을 그 ‘야한 옷 입은 여성’에게 조금이라도 돌리려는 취지가 있었다면, 이 발언은 정말 심각하게 위험하고, 폭력적인 이데올로기가 되는 셈입니다. 더불어 혹여라도 이윤성 교수의 ‘형식적 권위’를 빌려와 이 교수의 발언을 그렇게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실 여부’를 떠나 우리 공동체에 심각한 해악을 끼칠 수 있습니다.
2. 만에 하나 사실이라고 해도 그것 자체로 정당하지는 않습니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행동’, 그런 행동을 하게 하는 인간의 ‘마음’을 설명하는 아주 유력한 학문입니다. 하지만 진화심리학은 “그런 사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지,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실을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이 그 사실의 정당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논리학의 ‘자연주의적 오류’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것은 아주 자명합니다.
혹시 우리는 사실과 진실을 헷갈리는 건 아닐까요? 야한 옷을 입든 야하지 않은 옷을 입든 성폭행 (당)하는 사람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당위’는, 그런 사람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부정될 수 없는, 우리 공동체가 추구해야 하는 ‘진실’입니다.
이윤성 교수의 발언은 단순히 성적인 수치심과 언어적인 폭력(망언)이라는 익숙하게 반복되어 온 문제에 관한 질문뿐만 아니라 어떤 특정한 학문적 성과와 권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묻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권위 있는 학문의 잘 팔리는 ‘어떤 가설’을 마치 앞으로 더는 깨지지 않을 도그마로 받아들이고, 그 ‘단편적인 가설’로 세상을 너무 쉽게 설명하는 건 아닐까요?
자신이 가진 지식으로 사람을 너무 함부로 취급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렇게 ‘지식’을 가장한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렇게 ‘지식’을 가장한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댓글/트랙백 (48)
김승협
heyjude
민노씨
2. 길거리에 돈이 있으면 집어 가는 사람이 있다
2. 성폭행범 = 돈 줍는 사람
2. 당연히 존중해야 마땅한 ‘여성’이라는 존재를 길거리에 떨어진 돈(전적인 욕구의 대상, 혹은 물적 교환가치)과 다름 없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김현수
당신은 당신의 딸이 핫팬츠 입고 다니는것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말입니까?
한국처럼 젊은 학생들이 핫팬츠와 미니스커트를 약속이나 한듯이 착용하고 다니는 나라를 본적이 없어요..
눈을 둘데가 없어서 민망한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노출이 심하면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비유를 들어 한것을 가지고 말도안되는 공격을 하는 것을 보면 상식에 의심이들정도입니다.
비유의 말꼬리를 잡고늘어지려는 태도는 옳지 않습니다. 이교수의 취지를 조금만 보려고 해보세요
대한의 젊은 딸들이 노출을 심하게 하고 다녀도 정말 괜찮나요? 외국경험이 좀있다고 할수 있는 저로서는
정말 한국여성들의 노출패션에대해서는 할말을 잃게 만드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일본의 경우도 유학생조차 미니스커트, 핫팬츠를 아무렇치도 않게 입고다녀서 민망한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일본학생이 핫팬츠를 입고 있는 경우는 정말 눈씻고도 볼수가 없습니다. 미국에서도 관광하러 돌아다니는 한국 젊은 여성들의 노출수위는 가관입니다. 한국여성의 노출은 국내 해외를 가리지 않고 민망할정도로 심합니다.
민망할정도가 아닙니다. 사고가 걱정될정도로 심합니다. 도데체 무슨생각으로 이교수의 발언을 공격들하시는지
논리학 전공자들이신가요? 사회철학, 패미니즘을 이론적으로 옹호하고들싶은가요?
글로
http://i1.kym-cdn.com/photos/images/newsfeed/000/475/113/495.jpg
민노씨
간단히 제 판단과 의견을 남깁니다.
ㄴ. 평범한 옷을 입고 다니면 성폭행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ㄷ. 히잡처럼 얼굴을 가리고 다니면 성폭행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링크가 포함된 댓글은 스팸 여부를 필터링하는 과정을 시스템적으로 자동 수반해서 최종 입력(현출) 시간이 깁니다. 답답함을 드려 죄송합니다만, 양해를 구합니다. 그리고 아래 같은 글(링크 없는 댓글)은 지우겠습니다.
rakies
슬로우뉴스짱
asshole
글로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전문강사 위촉식에서 ‘성폭력에 관한 법의학적 이야기’라는 강연에서 한 말임을 생각해 볼때, 정말 놀라운 말입니다. 마치 페미니즘 담론에서 성폭행 이슈에 대해 일반적으로 하는 이야기들을 그대로 반대로 뒤집어놓은 듯한 발언을 ‘진화심리학’입네 하고 주워섬겼다는 사실이요. 전체 강연을 들어보지 않아 판단은 못하겠지만, 꼭 일부러 알고 어깃장을 놓을 심산으로 반대되는 말만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네요.
저는 이 교수의 발언과 같은 주장들을 반박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은 그들이 주장하는 팩트가 팩트가 아니라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팩트건 아니건간에 그런식으로 말해서는 안된다, 하는 것은 그 다음 문제죠. 그런 점에서 조금 아쉬운 글이네요. 변죽만 울리고 지나간 느낌이에요.
김현수
어떤 자극이 곧바로 행동으로 이어진다고 하는 논리는 분명 오류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논리적인 오류를 지적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말끔히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여학생이나 여성들의
노출문화는, 외국 경험이 많은 제가 감히 평가해보아도 심각한 수준입니다. 상식적이고 건강한 시민수준에서
본다면 정말 여성의 노출 문제는 심각한 수준입니다. 가까운 일본을 놓고 비교해보아도 노출수위가 너무높으며
인구비율당 성폭력문제의 비율이 많은것이 사실입니다. 위 글의 논조는 군데군데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며 대단히 편견에 사로잡힌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남성을 두둔하고자 하는것도 아닙니다.
제대로된 성교육이나 사회생활 교육이 결여된 한국 교육문화, 유치원 학예회에서 조차 연예인 아이돌 노래를 틀어놓고 엉덩이를 흔들어 대는 춤을 가르쳐 선보이는 유치원교사들, ‘섹시’라는말을 아무렇치도 않게 자녀들에게 사용하는 부모들, 정말 한심할정도의 교육수준입니다. 인도나 동남아와 비하면 그래도 낫지만, 근대화, 민주화를 표방하는 나라의
교육수준이 매우 낮은 것이 실정입니다.
저는 그런의미에서 이교수의 발언에 적극 찬성합니다. 도데체 무슨 근거로 이교수를 공격하는지 어디서 어떤 교육을 받고 무슨 공부를 하길래 이교수를 공격하는지 알수가 없군요. 이정도의 글로 논리적인 완결성을 갖추었다고 생각되어서 슬로우 뉴스 같이 건전한 대안 뉴스 사이트에 글을 올리는지요..
자기자녀가 섹시한게 좋고 관능적으로 보이는게 좋고 자극적으로 보일만한 옷을 입고 다녀도 아무일없는 그런 사회를 희망하신다면 그런나라를 만들어야겠죠. 그리고 그런 나라, 사회가 어디있나를 먼저 찿아보고 모델로 한번 삼아봅시다. 저도 그런나라가 있다면 거기가서 평생 살고 싶습니다. 은행금고 열어두고 도둑맞았다고 한탄하는사람, 탐나는 물건 간수하지 못하고 잃어버리는 사람, 소중한것인줄 알긴 하는데 자랑은 하고 싶은 사람, 나는 자랑할테니 너는 까불지말고 침이나 흘리고있으라!!
우리가 사는세계는 천국이나 극락이 아닙니다. 선과 악이 공존하고 나의 바램과 타인의 욕망이 뒤섞인 사회입니다. 최대한 서로 조심하고 사는것이 상책입니다.
이교수 발언 하나 틀린것 없습니다. 억지로 곡해해서 비판하지말고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에서 생각해보세요.
내가 딸가진 부모라면, 어떻게 해야하나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생각하지 못하니 그냥 노출하고 싶은대로 하게 놓아두어야 할지…. 논리적인 정합성을 따지기 이전에 우리의 감성과 몸이 작동하는 방식을 잘 살펴야합니다.
세상은 많이 배운사람, 바보, 천치, 힘센사람, 돈많은 사람이 혼잡해있는 곳입니다.
서로 조심하고 삽시다.
sohyoun (@sohyoun)
노출이 성폭행의 원인이 될 수 있느냐 하는….. 한국 사회의 여성의 노출에 대한 얘기가 아닙니다
nodab
sohyoun (@sohyoun)
어디까지가 성충동을 유발하는 수위라고 정확하게 말할 수 있을까요!
성폭행범 역시 묶은 머리 뒷덜미만 봐도 유혹으로 느끼고 해서는 안되는 행동임에도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미성숙하고 비뚤어진 그들 자신이 문제라는 겁니다
범죄 충동에 대한 자제력을 더 약화시키는 것은 아닐지…
어떤 행동이 범죄를 유발한다고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봅니다
김현수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이차적인 문제입니다. 우선당장 밤늦게 인적이 드문데 있는것은 걱정이 되는 것이고, 여성이 노출이 심하면 걱정이되는 것이 인간의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심정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문제를 이해하고 보는 것이 제일의 라는 겁니다. 원인 결과를 추론하는 문제는 고려해야될 변수가 많습니다. 단선적이고 직선적으로 이야기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취지에서 이교수를 공격하는 것도 이해는 갑니다만,
문제를 고려할 때, 원인-결과의 문제틀 말고 고려해야될 핵심적인 부분이 있는겁니다. 목이 타면 답답함을 느끼는것처럼, 누가 도둑질하는 것을 보면 분개하는 것처럼, 노출심한 여성을 볼때도 본능적으로 걱정스러운 심정이 작동하는 겁니다. 저는 이교수의 발언에서 그러한 심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만, 안그러신분은 아마 나이가 적거나 주위에서 사고를 안당해보셔서 그러는것일수도 있을거라는 생각마져 듭니다.
nodab
nodab
김현수
말은 꼬리를 잡고 트집을 잡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응답해야하나요?? 말꼬리 잡는데는 할말이 없습니다.
법률적으로든 법이전든 상호관계하에 성립하는 겁니다.
폭력을 휘두른 사람을 욕해야 정상이라고 생가하는 것은 특정한 대상에만
자기가 욕하고 싶은 대상에만 그렇게 하는 태도입니다.
비난하는 것은 정상입니다. 그러나 좀더 깊고 건전하게 생각해보면 그렇게 비난하는 것은 둘째문제입니다. 왜 그렇게 당할 수 밖에 없었는가. 왜 일본에게 폭력을 당할수 밖에 없었는가라는 문제를 가장먼저 생각하는 것이 스스로 일어날수 있는 힘을 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내는 겁니다. 일본 나쁜놈이라고 욕하는 것보다 다시는 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른 생각입니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남탓을 하는 사람은 문제가 심각합니다. 스스로 건강한 에너지를 만들어 낼수가 없는 사고에 빠져드는 겁니다.
아니지만, 학문적으로 논리적으로 검토를 하기이전에 고려해야할 점이 있습니다.
그 부분을 간과하면 전혀 논의가 진행이 안됩니다.
nodab
김현수
그러나 이교수의 언급만이 성폭행을 줄이기 위해 필요한 모든것이라고 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교수의 말에서 좀더 넓은 틀에서 관점을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물론 당사자의 심정과 상황을 부정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당사자의 입장에서만 문제해결을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은 충분한 해결책이 아니라고 봅니다.
문제이며. 따라서 이교수의 말은 피해자를 비난하는 문화는 강간 문화를 퍼트리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고민해봐야 할 문제가운데 하나를 지적하는 언급이라고 봅니다.
우리 모두가 그 소중하고 깨지기 쉬운것을 함께 보호할 수 있도록
공동체문화와 제도를 함께 고민해야합니다.
그래도 도둑맞고 강도가 들며 문제가 끊이질 않습니다.
그럴수록 좀더 잘 지키고 보호하기위해 담론은 계속됩니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걸 가지고 왜 여성을 은행에 비유하냐고 하면
그건 트집을 잡는 겁니다.
소중하니까, 중요하니까 잘 지키자는 겁니다. 이교수의 취지는 그거라고 봅니다.
도둑과 강도를 아무리 비난해봤자 그건 일방적인 비난이고 끝없는 비난에 비난의
연속으로 이어질 뿐입니다. 비난하지 말자거나 가해자를 용서해주자는 말이 아닙니다.
가해자에 대한 문제는 별개입니다.
이교수의 이야기는 가해자의 문제를 포함해서 가해자에게는 면죄부를 주자는 주장이아닙니다. 설마 이교수가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다고 해석하는건 아니겠죠??
강도가 있으니까 은행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이상한 논리인것처럼
은행이 있으니까 강도가 있다고 말하는 것도 황당한 논리입니다.
은행은 강도를 욕하고, 강도는 은행을 탓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논리의 틀을 그런식으로 세워놓고 문제를 옳게본다, 그르게 본다 하면서
끝도 없이 이상사회, 천국같은 사회, 성폭력 없는 세상을 암묵적으로 전제하는 건 옳은 생각이 아닙니다.
따라서 가해자를 처벌하고 정당한 죄값을 치르게하는 것은 당연하며,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해야합니다.
“이것이 제가 그날 입고 있었던 옷입니다. 저를 보고 ‘그런 옷을 입으니 그런 일을 당하지.’ 라고 말해보세요.”라고 어느 피해자가 이야기를 했다고 해서 성폭행의 문제가 가해자의 전적인 문제로 결론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 가해자는 이 사회의 다른 곳에서 말도안되는 무자비한 성적자극에 노출되어 있어왔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는겁니다.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만 보면 단순히 가해자 비난으로 끝나지만, 이교수의 성폭행에 대한 지적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가해자를 비난하는 것이 왜나뻐!’
‘당연히 피해자를 옹호해야지 얼마나 억울하고 불쌍해!’
이렇게 말하는 것은 틀린것이 아니지만, 문제를 다른시각에서 볼수있는, 보아야하는
입각처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nodab
김현수
junelove
김현수
궤변으로 이교수를 옹호하고 있는게 아닙니다.
제 글이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제책임이겠죠..
junelove371196672
근형
김현수
의견을 듣고자하는 귀가 없는 것같습니다.
– 은행은 관리가 허술하고, 은행강도는 본래 존재하는 거니까 은행은 강도를 당하는게 당연하다.
그런식으로 몰고가지 말라고 비유를 들었던겁니다.
“폭행을 당하고 나서 나는 폭행을 당할만하다고 곰곰히 생각해봐야 합니까”
(junelove371196672)
“헌법이 보장한대로 나는 자유롭게 옷입고 다닐 권리가 있다”
(junelove371196672)
김현수
young026
이윤성 교수는 자신의 말에 대해 이렇게 부연했습니다.
>무조건 피해자는 아무런 조심을 안 해도 되고 가해자만 비난해야 할 게 아니라는 전제를 두고 말했다
이로 볼 때 그의 발언은 명백히 ‘피해자가 조심해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가해자만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의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오히려 처음의 발언보다(사실에 대한 서술이라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게 과연 ‘사실’인가는 문제지만) 부연 설명으로 드러난 ‘의도’가 더 문제로 보이는군요.
…비유가 틀렸습니다.-_-; 은행이 금고를 잘 지켜야 하는 ‘책임’이 있는 건 도둑맞기 쉬워서가 아니라 그게 남의 돈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기 돈이라도 도둑맞지 않으려면 잘 지키려고 노력해야겠지만 그 경우에는 금고를 털렸다고 해서 은행이 비난받을 이유는 없습니다.
‘인구비율당 성폭력문제의 비율이 많은것이 사실’이라고 얘기하셨는데 김현수님의 사고방식은 그 ‘성폭력문제의 비율’만 줄이면 아무래도 괜찮다는 식인 듯합니다. 여자들이 야한 옷을 입고 다니면 성폭력이 늘어나니(이것도 이견이 있는 듯하지만) 야한 옷을 안 입으면 되고, 여성들이 밖에 돌아나니면 성폭력이 늘어나니 밖에 안 돌아다니면 되겠군요.
선후가 틀렸습니다. 여성들이 좀더 자유롭고 안전하게 활동하기 위해 성폭력을 줄여야 하는 게 옳지, 성폭력을 줄이기 위해 여성을 통제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4)는 무슨 초등학생 말싸움을 보는 듯하군요.-_-;
뭐 초등학생을 위해 설명하자면 서비스직원 착취, 고리대금, 성노예는 명백히 다른 누군가를 해롭게 하는 행동입니다. 남을 해치는 행위를 자유권으로 보호하는 법체계는 없습니다. 한편 ‘야한 옷’을 입고 다니는 건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누군가를 해롭게 하는 행동이 아닙니다. 따라서 위의 셋과 맨 아래는 구분됩니다.
김현수
논의를 전개하는 층(수준)이 저와 다른 사람들이 같지가 않습니다.
학자인양하고 덤비시는데, 제발 깊이 생각하세요.
이교수의 말은 논리적 타당성을 따지기 이전에 새겨들어야 할 구석이 있습니다.
논리적 타당성은 본격적으로 칼싸움을 해야할 전장이 있는겁니다. 그렇게 말 몇마디 댓글에
올려놓고 저능 벌때들처럼 덤벼들어서 될 일이 아닙니다.
junelove371196672
김현수
어떤 사람이 성적 자극이 극심한 사회에서 무방비로 노출이 되어있다가
가해자와 피해자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한쪽을 비방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
기본적으로 동의합니다. 이교수가 그 점에 반대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쥰러브님 여성이세요?
난독증 없으시면 제 글을 다시 봐주세요. 일리가 전혀 없고 쓸모없는 이야기라면
반론하지 말아주세요. 하고 싶으시다면,
“인과론”에 대해서 공부하시고 어떤 의미에서 “원인”이라는 말을 쓰고 계신지 밝혀주세요.
성폭력반대
아동 성폭행, 노인 성폭행, 친족 간의 성폭행이 일어나는 요즘. 심지어 남아들에게까지 ..우리 아이들이 노출이 심해서였을까요? 할머니들이 속옷을 안 입어서? 제 친구는 친삼촌에게 성폭행을 당할 뻔 해서 재판까지 다녀왔습니다. 친구는 자고 있었고 한 겨울이였기에 옷도 몸을 꽁꽁 가리고 있었는데 말이죠. 여성들은 그럼 집에서도 누군가의 성적자극을 하지 않게 하며 살아야하나요?
어느 부분에서 노출을 지적해야 할까요? 성폭행을 하는 사람들은 사회적 제어가 안 되는 사람들이죠. 병이 있는 거예요. 폭력성을 제어 못하며 분노조절장애가 있다고 하는 것처럼 성적 충동을 제어 못하는 병이 있는거죠. 이런 정황을 보시고도 여성들의 노출 탓이라고 돌리시겠습니까? 그런 논리라면 워터파크가 가장 성폭행 발생율이 높겠네요.
그리고 성적취향은 그리 단순하지 않죠. 다리나 가슴이 다가 아닙니다. 발목을 보고 흥분하는 사람, 목덜미를 보고 흥분하는 사람, 귓볼을 보고 흥분하는 사람. 어떻게 성폭력범의 성적 취향까지 모두 고려해 가려야 하는지요?
만약 성적 정체성이 성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혼란을 지적하실거라면 그런 사회적 요견을 만들어야한다고 주장하신 게 옳지 않을까요? 성교육이나 남녀 모두 성이 소중하고 성관계라는 건 단순한 욕망충족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던가 나의 욕구나 충동 때문에 내가 한 사람의 인생을 죽일 수도 있다던가 그런 교육에 대한 논의에 초점을 맞춰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여성성이나 남성성을 상품화하고 생산해 내는 자본에 대한 비판이나요.
김치년삼일한
”야동보면 강간할 수 있다’
사실 두 개의 발언은 거기서 거기지만 전자는 악플취급이고 후자는 선플취급이고
한국여자의 이중성에 치가 떨린다
glass
니오
이러이러 한; ‘야한 옷 착용자 많은 곳이 야하지 않은 옷 착용자 많은 곳보다 성범죄 발생률이 높을 것이므로 야하게 입는 문화를 바꾸는 편이 성범죄를 줄일수 있을 것이다’
tirhem
죄다 틀렸으면 아예 사람들이 상대해주지 않으니까요
만약 상대편이 이런 논리적 오류를 가지고 있다면 논의하긴 힘드니 그냥 무시하는게 좋을것 같다고 생각합니다만…
아기고양이 (@spukies)
덕구엉아 (@yhannhue)
..
쌍방폭행이나 교통사고 이외에
피해자의 잘못을 운운하는 거의 유일한 범죄가 성범죄더군요.
뭐 아주 가끔 남의 재물을 불법적으로 강탈하는 범죄인 절도와 비교해서
‘야한 옷’을 ‘문을 열어놓는 것’에 비유하는 유일한 범죄도 성범죄인듯합니다.
전문가고 나발이고 어떤 경우에든 나와서는 안되는 비유이고 피해자가 사람이라는 걸 인식하라는 게 그렇게 어렵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안나
남성의 성기는 불수의근으로 되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발기의 원인은 특히 시각적인 자극을 통해서인 경우가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사정을 하지 않으면 발기를 잠재우기가 힘든 것으로 예상됩니다. (여기까지가, 여성으로서의 이해의 한계입니다. 여성의 몸 구조는 남성과 매우 다릅니다. 흥분을 할 수는 있어도 발기는 하지 않으니까요.)
이윤성 교수는 발기의 통제가 어렵기 때문에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려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문제는 발기가 성폭력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는 점일 겁니다.
이성을 갖고 있는 남자들이라면 발기가 되더라도 성폭력이라는 어이없는 선택을 내리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취객이나 정서적으로 불안한 남자들이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요. 그들은 자제력을 잃은 상태이며, 일반적으로 건강한 신체를 가졌다면 웬만한 여성을 제압할만한 완력도 가지고 있을 겁니다.
저 교수의 발언이 소름끼치는 건 취객이나 정서적으로 불안한 남자들을 옹호하는 발언으로 들리기 때문이었습니다. 여자는 남자를(취하거나 미친 남자일지라도 남자니까) 거스르지 말지어다, 라는 남존여비 사상이 깔려 있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발언일 겁니다.
그간 성범죄자들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솜방망이였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취한 상태에서 저지른 범죄들이 취했다(심신상실)는 이유로 오히려 감형을 받은 경우는 헤아릴 수 없으며, 정신질환자들이 저지른 성범죄들도 오히려 정신질환이라는 이유 때문에 참작을 받는 실정입니다. 이런 판결이 횡행하고 있는 현실은 과연 누가 만든 것일까요. 개탄스럽습니다.
조금 논외의 이야기일 수 있는데, 성은 환상이다,라는 일본 학자 기시다 슈의 책에서는 이러한 주장마저 있습니다. 동물의 성생활에 있어서는 항상 암컷이 우위에 있지만 인간의 성생활에서 수컷이 우위인 이유가, 금기나 욕망이 없으면 수컷이 발기를 제때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성적 욕망과 성적 능력사이의 간극’, ‘여성은 도구화되고 상품화 된다’, ‘자본주의 시대의 비참한 성’, ‘신이 죽자 연애가 등장했다’, ‘서구인은 죄의식으로 인해 오히려 더 성욕을 느낀다; ‘죄악시 되는 성은 사랑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모두 이 책의 소제목들입니다. 특히 여자분들이 읽어보시면 놀랄만한 점들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관심이 가신다면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지나가다
지나가다
LK
김현수
그러나 이교수의 언급만이 성폭행을 줄이기 위해 필요한 모든것이라고 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교수의 말에서 좀더 넓은 틀에서 관점을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물론 당사자의 심정과 상황을 부정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당사자의 입장에서만 문제해결을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은 충분한 해결책이 아니라고 봅니다.
문제이며. 따라서 이교수의 말은 피해자를 비난하는 문화는 강간 문화를 퍼트리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고민해봐야 할 문제가운데 하나를 지적하는 언급이라고 봅니다.
우리 모두가 그 소중하고 깨지기 쉬운것을 함께 보호할 수 있도록
공동체문화와 제도를 함께 고민해야합니다.
그래도 도둑맞고 강도가 들며 문제가 끊이질 않습니다.
그럴수록 좀더 잘 지키고 보호하기위해 담론은 계속됩니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걸 가지고 왜 여성을 은행에 비유하냐고 하면
그건 트집을 잡는 겁니다.
소중하니까, 중요하니까 잘 지키자는 겁니다. 이교수의 취지는 그거라고 봅니다.
도둑과 강도를 아무리 비난해봤자 그건 일방적인 비난이고 끝없는 비난에 비난의
연속으로 이어질 뿐입니다. 비난하지 말자거나 가해자를 용서해주자는 말이 아닙니다.
가해자에 대한 문제는 별개입니다.
이교수의 이야기는 가해자의 문제를 포함해서 가해자에게는 면죄부를 주자는 주장이아닙니다. 설마 이교수가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다고 해석하는건 아니겠죠??
강도가 있으니까 은행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이상한 논리인것처럼
은행이 있으니까 강도가 있다고 말하는 것도 황당한 논리입니다.
은행은 강도를 욕하고, 강도는 은행을 탓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논리의 틀을 그런식으로 세워놓고 문제를 옳게본다, 그르게 본다 하면서
끝도 없이 이상사회, 천국같은 사회, 성폭력 없는 세상을 암묵적으로 전제하는 건 옳은 생각이 아닙니다.
따라서 가해자를 처벌하고 정당한 죄값을 치르게하는 것은 당연하며,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해야합니다.
“이것이 제가 그날 입고 있었던 옷입니다. 저를 보고 ‘그런 옷을 입으니 그런 일을 당하지.’ 라고 말해보세요.”라고 어느 피해자가 이야기를 했다고 해서 성폭행의 문제가 가해자의 전적인 문제로 결론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 가해자는 이 사회의 다른 곳에서 말도안되는 무자비한 성적자극에 노출되어 있어왔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는겁니다.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만 보면 단순히 가해자 비난으로 끝나지만, 이교수의 성폭행에 대한 지적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가해자를 비난하는 것이 왜나뻐!’
‘당연히 피해자를 옹호해야지 얼마나 억울하고 불쌍해!’
이렇게 말하는 것은 틀린것이 아니지만, 문제를 다른시각에서 볼수있는, 보아야하는
입각처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이볼
김현수
실제 토론 해보니 반반으로 쫘악 갈라지던데, 어설픈 논리로 설득하려고 하지말고, 저 사람이 왜 저런 언급을 하는지 행간을 보세요. 딱히 비난할 생각은 없으나 하이볼님은 내 생각에 타당하지 않으면 전부 가짢은 이야기로 보는 태도를 버리고 좀 더 겸손함을 배우셔야 겠습니다. 어줍짢은 지식놀음 하려고 하시지 말고 조용히 계세요. 다 뜻이 있어서 댓글놀이 해보는거니까. ㅋㅋㅋㅋㅋㅋ
지적수준이 높으신 하이볼님에게
김현수 배상
BeerB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