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 혐의가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이유로 고소까지 무고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무고죄로 처벌하려면 신고 내용이 허위라는 점이 적극적으로 증명돼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무고 혐의로 기소된 30대 대학원생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을 무죄 취지로 깨고 사건을 대전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7일 밝혔다.A씨는 2014년 12월부터 2016년 5월까지 지도교수 B씨가 박사과정 지도교수라는 지위를 이용해 자신을 14회에 걸쳐 강간·간음했다며 B씨를 고소했다.
그러나 A씨는 "첫 범행일이 남편의 기일이었기 때문에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가 이후 범행 날짜를 번복하는 등 일관된 진술을 하지 못했다.
고소 당시에는 B씨가 강압적으로 성폭행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범행 시기 전후로 두 사람이 호의적으로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가 확인되자 길들이기 수법인 `그루밍` 성범죄라고 말을 바꾸기도 했다.
결국 검찰은 간음 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B씨에 대해 `혐의없음`으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B씨는 A씨와 내연관계였다며 A씨를 무고로 고소했다. 그는 A씨가 B씨 부인으로부터 손해배상 소송을 당하자 내연관계였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자신을 거짓으로 고소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1심은 A씨의 무고 혐의를 인정하고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두 사람이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 주변의 증언 등을 토대로 "합의로 성관계를 맺은 뒤 내연관계로 발전했다"는 B씨의 주장을 더 신뢰할 수 있다고 봤다.
2심은 A씨와 B씨의 관계에서 "강제력이나 억압이 개입됐다는 정황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며 형량을 징역 1년으로 높였다.
재판부는 "교수와 제자와의 관계임에도 A씨는 B씨를 전혀 어렵게 대하지 않으면서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고 수시로 만족감과 행복감을 표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이 무고죄 법리를 잘못 적용했다며 사건을 다시 2심 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신고 사실의 진정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해서 신고 사실을 허위로 단정해 무고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봤다. A씨가 성폭행 혐의 무죄 처분을 받았다고 해서 무조건 고소인인 B씨를 무고로 처벌할 수 없다는 뜻이다.
재판부는 A씨의 강간 피해 주장이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정황을 과장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고소의 근거가 된 상황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고소 내용이 혐의 인정 여부와 무관하게 고소 동기로는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일부 고소 내용이 사실이 아니어도 고소 내용을 과장하는 것에 그쳤다면 무고죄는 성립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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