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돈 많이 벌었습니다."
유명 게임 크리에이터 '대도서관'(본명 나동현)의 농담 한마디가 게임 개발자들 사이에서 화제다.
그의 말을 놓고 게임 방송과 저작권 문제부터 게임 스트리밍의 마케팅 효과까지 여러 갈래 논쟁이 불거졌다.
대도서관은 넥슨이 지난달 27∼29일 온라인으로 개최한 '넥슨 콘텐츠 축제'(네코제) 셋째 날 방송에 출연했다.
그는 '게임 뒷담화' 토크 프로그램에서 넥슨코리아 이은석 디렉터 등 업계 관계자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대도서관은 프로그램 초반에 구면인 출연진과의 인연을 얘기하던 중 이은석 디렉터를 가리키며 "공포 게임 '화이트데이'를 개발하셨는데, 방송할 때 반응이 좋아서 덕분에 돈을 많이 벌었다"고 말했다.
발언은 농담조였고, 다른 출연진도 환하게 웃으며 넘어갔다.
게임 개발자들은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SNS)에서 대도서관 발언 캡처를 공유하며 분노했다.
'화이트데이'는 국내 1세대 게임개발사 손노리가 2001년 개발해 출시한 공포 게임이다. 대도서관의 말처럼 현재는 넥슨에서 일하는 이은석 디렉터가 당시 손노리에서 개발을 총괄했다.
개발자들의 분노는 화이트데이가 한국 게임업계의 '아픈 자식' 같은 존재라는 데 첫 번째 이유가 있다.
화이트데이는 2000년대 초반에 게이머라면 누구나 알 만큼 성공한 게임이었다.
그러나 거의 모든 게이머가 화이트데이를 불법 복제로 즐겼던 탓에 손노리는 합당한 이익을 거두지 못했다.
당시 한국 사회 전반에 저작권 개념이 부족했던 탓이다. 손노리는 그해 엔터테인먼트 지주회사 로커스홀딩스에 합병됐다.
개발자들이 화난 두 번째 이유는 대도서관을 비롯한 스트리머들을 향한 비판적인 시선에 있다.
대도서관은 방송을 처음 시작했던 2010년 전후에 정품이 아닌 게임으로 방송을 하다가 적발된 적이 몇 차례 있다.
그런 그가 화이트데이 개발자 앞에서 "덕분에 돈을 많이 벌었다"고 농담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게 개발자들의 지적이다.
한 게임 개발자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복제로 쓴맛을 봤던 개발자 면전에서 저작권을 침해하면서 돈을 벌었던 게임 방송인이 '덕분에 돈 벌었다'고 말하니까 같은 개발자 입장에서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게임 개발자 상당수가 게임 스트리머 전반을 부정적으로 보기도 한다.
개인 방송이라는 이유로 개발사와 별다른 협의를 거치지 않고 방송을 하면서 시청자를 늘리고 돈을 번 스트리머가 많기 때문이다.
게임 스토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여주는 방송이 바람직한가도 스트리밍을 둘러싼 해묵은 논쟁거리다.
물론 유명 스트리머들은 최근에는 개발사와 철저한 협의를 거친다. 이제 개발사 쪽에서 먼저 방송을 부탁하거나 광고를 싣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는 마케팅 및 회사 차원의 결정일 뿐 개발자들이 원하는 것은 아니다.
대도서관의 입장은 어떨까.
대도서관은 해당 발언이 비판을 받았다는 질문에 다소 놀라며 "기분이 나쁘셨다면 죄송스럽다"면서도 게임 스트리밍과 저작권, 스트리밍의 마케팅 효과 등에 관한 견해를 조심스레 밝혔다.
그는 "이은석 개발자님과는 원래 친분이 있었고, 넥코제 녹화 이후에도 만나서 식사하고 연락하며 지내고 있다"며 "화이트데이는 2017년에 재발매했을 때 회사 쪽에서 방송을 의뢰했었고, 이은석 개발자님도 재미있게 보셨다고 해서 (해당 발언이) 문제 될 거로 생각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스트리머를 향한 부정적인 시선에 관해 "처음 시작했을 때 정말 심했다. '도둑놈들'이라고 그랬다"며 "그래도 요새는 마케팅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늘어나면서 협업이 늘어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는 "모든 게임이 대작 게임처럼 TV 광고를 하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 요즘 가장 저렴한 마케팅 방법이 게임 스트리밍"이라며 "'사이버펑크 2077' 같은 신작도 스트리머를 위한 기능을 넣지 않느냐"고 했다.
이달 10일 출시 예정인 '사이버펑크 2077'은 게임 내 음악 중 따로 저작권이 있는 음악을 비활성화할 수 있다. 스트리머들의 원활한 방송을 돕는 도구를 아예 게임에 삽입한 사례다.
대도서관은 "('하는 게임'이 아니라) '보는 게임'의 시대여서 그렇다. 이런 추세는 더 빨라질 것"이라며 "스트리밍이 없었다면 마케팅에 돈을 많이 쓰는 큰 회사들의 게임이 무조건 유리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이어 그는 "물론 나는 게임업계에 신세를 많이 졌다고 생각한다. '게임 중독 관련) '100분 토론'이나 국회 토론에 나갔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며 "개발자분들께서 스트리머를 안 좋게 보시기보다는 '잘 이용하시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SNS 등에서 개발자들 분노가 연일 들끓자 농담 당사자였던 이은석 개발자는 트위터에 "그냥 대도서관님이 웃자고 농담한 겁니다. 제가 예능 순발력이 모자라서 재치 있게 받아치지 못했을 뿐, 개인적으로 기분 상할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라고 올려 사태를 수습했다.
그러나 스트리머를 향한 개발자들의 곱지 않은 시선은 앞으로도 쉽게 가시지 않을 전망이다.
한 게임사 관계자는 "게임 스트리밍은 제작사 입장에서 '양날의 검'"이라며 "유튜버들은 게임이 남초(男超) 커뮤니티로부터 '페미 논란' 같은 공격을 받으면 팩트 체크도 하지 않고 자극적인 영상을 만든다. 그럴 때는 마케팅 효과는커녕 오히려 재기가 어려울 정도로 치명상을 입는다"고 지적했다.
다른 게임사 관계자는 "게임을 하지 않고 스트리밍만 보는 이용자도 많다. 스트리밍의 마케팅 효과를 정확히 계산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대다수 게이머는 이제 뉴스가 아니라 유튜브로 신작 게임을 접한다. 미우나 고우나 최고의 홍보 창구가 된 것은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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