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March 21, 2015

미래의 기술


정지훈 초등학교 때 8비트 컴퓨터를 접한 후 IT와 미래기술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우리나라에서 발간하는 <마이크로소프트웨어>지에 컴퓨터 프로그래밍 등에 관한 원고를 기고했다.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대학원에서 의공학 박사 학위를 받고 관동대 의대 융합의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의사, 교수보다 ‘미래학자’라는 타이틀을 좋아할 만큼 미래 기술에 대한 관심이 많다. 저서로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내 아이가 만날 미래>, <스마트 IT, 스마트 혁명> 등이 있다.
정지훈 교수의 트위터(twitter.com/hiconcep)와 페이스북(twitter.com /hiconcep)은 ‘신기술 허브’다. 세계 최대 온라인 서점 아마존이 영국 최고 연구자를 섭외해 시애틀과 영국 케임브리지에 만든 연구센터에서 드론 유통 서비스를 실험하고, 미국의 신생 기업 ‘나이트스코프 nightscope’가 패트롤 로봇을 선보인다는 소식 등 ‘미래 뉴스’가 끝없이이어진다. 저 멀리 우주정거장 ISS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여주는 2분 50초짜리 영상, 자전거에 얼음 바퀴를 달아 타고 다니는 청춘들의 모습도 재미있다. 그렇게 그의 SNS와 접속하면 무심코 스크롤바를 계속해서 내리게된다. 먼 이야기든, 가까운 이야기든 미래는 언제나 매혹적이다. 관동대 의대 융합의학과 교수에서 최근 경희사이버대학교 모바일융합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긴 정지훈 교수는 “이런 기술과 시스템을 모든 사람이 알고, 이해하며, 사용할 필요는 없다. 옛날 방식대로 살아도 잘살 수 있다. 다만 기술이 여러 가지 신기하고 재미있는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만은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어느새 일상 가까이 성큼 다가온 대표적 기술은 무엇인가? 
IoT(Internet of Things), 즉 사물 인터넷이다. 사물끼리 인터넷으로 연결돼 정보를 실시간으로 주고받는 시스템. 기존 인터넷은 웹에 접속해 정보를 보거나 검색하는 도구였다. 그런데 모바일 폰이 보급되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사람들끼리 네트워크를 맺으면서 수많은 커뮤니티가 형성된 것이다. 이제 인터넷은 사람을 넘어 우리 주변에 있는 사물까지 연결한다. 사물 인터넷은 스마트폰과 달리 분야가 워낙 넓어 한 기업이 기준을 만들기보다 다양한 기업이 인터넷 네트워킹을 보강한 제품을 출시하는 쪽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이 분야에서 가장 각광받는 회사가 ‘네스트Nest’다. 구글이 올해 초 32억 달러(약 3조3800억 원)를 주고 인수한 곳이다. 방 안에 설치하는 냉・온방 컨트롤러로 특정 지역에 설치한 다른 제품과 인터넷으로 연결돼 실시간으로 온도를 관리한다. 에어컨을 켠다고 치자. 보통 오후 2시에 전기 사용량이 가장 많고 할증료가 붙어 전기 요금도 비싸진다. 이를 계산해 한 시간 전에 미리 가동해 피크 타임 때 전기를 덜 쓰게 하는 식이다. 인근에설치한 ‘네스트’끼리 거대한 생명체 집단처럼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받아 최적의 타이밍을 도출하기 때문에 가동 시간은 그날그날 다르다. 전기사용량이 연중 언제 가장 많은지, 사용자의 전기 사용 패턴은 어떤지도 스스로 학습해 반영한다. 네스트는 현재 미국과 영국에서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인공지능’이라면 제품가가 비싸겠다. 
애플 스토어를 통해 구매할 수 있는데 최초 가격은 199달러였다. 우리나라 돈으로 약 20만 원. 하지만 최근에 더 싸졌다. 지역에 있는 전력회사와 연계해 상품을 판매하는 덕분이다. 전력 회사 측에서는 네스트를 무료로 제공하고 소비자에게 에너지 절약 분만큼을 포인트로 돌려준다. 소비자는 이 포인트를 현금처럼 쌓아 기기 값을 갚는 데 사용한다. 

전력회사 측에서 네스트 사용을 권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나라도 경험했지만 잠시라도 ‘블랙아웃’이 발생하면 엄청난 복구 비용이 들어간다. 이를 예방할 수 있는데다 전기 사용량을 분산시킬 수 있기 때문에 안정적 전력 수급과 운용이 가능해진다. 우리나라에도 도입되면 좋겠지만 한국전력공사에서 독점적으로 전력 수급을 컨트롤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미국과 영국, 독일 등에는 지역 기반 전력회사가 수십~수백 개씩 있다. 

컨트롤러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효율적 냉방 시스템을 구축하는 제품은 없나? 
뉴욕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퀄키Quirky’에서 만드는 아로스Aros 스마트 에어컨이 대표적이다. 제너럴일렉트로닉GE에서 생산하는데 ‘네스트’처럼 지역 전기 사용량, 기상 상황 등에 따라 최적의 가동 타이밍을 찾아낸다. 네트워크로 연결돼 더 지능적이고 혁신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품은 올해도 속속 출시될 거다. 이를테면 구글에서 지난해 5억5000만 달러(약 5660억 원)에 인수한 ‘드롭캠Dropcam’ 같은 제품. 가정용 CCTV인 이 제품을 설치하면 집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자신의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방범용으로도 이용 가능하다. 

사물 인터넷이라고 하면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한때 유행한 아파트 광고를 떠올릴 것이다. 귀가 시간에 맞춰 보일러를 가동하고, 불을 밝히는…. 
아파트에 옵션으로 들어간 우리나라의 사물 인터넷은 실패작이다. 분양받을 때 포함돼 있지 않으면 추가 비용을 내 설치하지 않을뿐더러 시공이 돼 있다 하더라도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다. 내가 직접 비용을 지불하고 능동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그 시장은 발전하지 못한다. 사물 인터넷은 건축과 상관이 없다. 사물 인터넷을 내장한 집을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 집이 있는 상태에서 사물 인터넷이 가능한 제품을 사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가정용품을 살 때 이제껏 디자인과 성능 위주로 봤다면 앞으로는 네트워크 연결 가능 유무를 눈여겨보는 문화가 확산될 것이다. 실제 미국 아이들은 스마트폰이나 스마트패드와 연동되지 않는 장난감은 ‘후지다’고 사지 않는다. 

‘스마트 장난감’이란 이를테면 어떤 것인가? 
‘지타gTar’ 같은 장난감. 우리집에도 한 대 있는데 아이폰과 연동해 연주할 곡을 다운받거나 저장할 수있다. 다음에 눌러야 할 줄에 불빛이 들어와 쉽게 연주할 수 있다. 미국의 인시던트Incident라는 회사에서 만들었다. 향후 세계 제조업 시장은 수많은 중소기업이 창의적인 제품을 만드는 쪽으로 바뀔 것이다.

사물 인터넷이 일반화되면 새롭게 뜨는 기업도 생기겠다. 
사물 인터넷은 각종 사물에 컴퓨터 칩과 통신 기능을 내장하는 시스템이다. 실리콘 칩을 만드는 인텔, 퀄컴 같은 회사가 최근 다시 부흥하는 이유다. 삼성전자도 반도체 쪽 사업이 스마트폰 분야보다 좋아지고 있다. 인터넷은 공통으로 제공해야 하니 구글, 아마존처럼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도 큰 수익을 올릴 것이다

세계 사물 인터넷 시장에서 주목받는 우리나라 기업도 있나? 
리버스Reverth라는 회사가 있다.지난 해 ‘리니어블Lineable’이라는 미아 찾기밴드를 만들어 세계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했다. 밴드 가격은 5달러. 14g에 완전 방수, 방진제품으로 블루투스 기반의 실시간 위치 추적기술을 탑재했다. 리니어블 사용자끼리 서로 돕는 시스템. 리니어블 앱을 설치한 수많은 스마트폰과 서버가 연동해 내 자녀는 물론 다른 자녀 위치까지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3D 프린터도 점점 영향력이 커지는 추세다. 
또 한 번의 산업혁명을 일으킬 것이란 전망이다. 의학계에서는 바이러스 항체와 인체 기관까지 3D 프린터로 만드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상용화되기엔 먼 얘기다. 이런 것도 만들어봤다, 하는 정도다. 지금 3D 프린터로 만드는 제품 대부분은 플라스틱이라 내구성이 떨어진다. 대상물을 적층 방식으로 쌓아올리는 시스템인데 건축가, 디자이너가 ‘창작품’으로 선보이는 수준이다. 프린터 가격은 약 200만 원. 신기술에 관심이 많다면 가정에서도 사용할 만하다.

3D 프린터로 무엇을 찍어내나? 
가장 많이 찍어내는 건 아이들을 위한 캐릭터다. 친구에게 준다며 ‘요다’나 ‘토토로’를 프린팅해 달라고 부탁한다. 핀셋이나 컵받침처럼 집에서 필요한 물건을 찍어내기도 한다. 디자이너나 건축가처럼 직접 대상물을 디자인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기술이 없어도 얼마든지 다양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오픈 소스 사이트인 ‘싱기버스닷컴Thingiverse.com’ 같은 곳에 가면 수많은 제품의 ‘도면’을 다운받을 수 있다. 이를 3D 프린터용 소프트웨어로 가져와 크기와 형태 등을 살짝 매만지면 된다. 기기 구입도 쉽다. 우리나라에 오픈크리에이터(www.opencreators.com)란 브랜드가 있다. 대학생들이 창업한 곳인데 레드닷어워드, IDEA 같은 세계적 디자인 어워드에서 상을 많이 받았다. 미국 유명 디자인 회사에 있는 멤버 한 명이 디자인을 맡아 완성도가 높다. 

3D 프린터만 있으면 뭐든 다 찍어내는 것처럼 인식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건 아닐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현재 3D로 찍어내는 제품 대부분은 플라스틱이다. 손톱깎이처럼 높은 강도를 필요로 하는 제품은 못 찍는다. 시간도 많이 걸린다. 컵 하나를 찍는 데 4~5시간이 소요된다. 전기료는 생각보다 많이 들지 않는다. 

일반 프린터 제품들은 잉크를 사용한다. 3D 프린터기는 어떤 원료를 사용하나? 
플라스틱 필라멘트가 있다. ‘PLA’와 ‘ABS’를 가장 많이 쓰는데 열을가하면 녹는 열 사고성 플라스틱이다. 거의 모든 3D 프린터에서 이 두 종류의 필라멘트를 사용한다. ‘PLA’와 ‘ABS’ 사이에는 유연성이나 강도 면에서 미묘하고 복잡한 차이가 있으니 직접 사용하면서 본인이 만들 제품에 더 적확한 것을 찾는 것이 좋다. 

더 다양한 재질의 제품을 보다 빠르게 찍어내는 것이 3D 프린터의 향후 발전 방향이 되는 건가? 
그렇다. 재질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 지금은 플라스틱 위주지만 금속, 폴리우레탄, 나무 등 다양한 재질의 실험이 한창이다. 주물, 압출, 레이저 커팅 같은 방법을 접목해 프린팅 속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8비트 컴퓨터가 처음 보급됐을 때를 생각해봐라. 코딩도 하고, 게임도 하면서 5~10년이 흘렀다. 이후 컴퓨터 속도가 빨라지고 소프트웨어가 많아지고 네트워킹이 구축되면서 어마어마한 혁신이 일어났다. 3D 프린터 역시 컴퓨터처럼 엄청난 혁신을 몰고 올 것이다. 지금 당장 산업혁명으로 이어지진 않겠지만 재료가 다양해지고 품질도 좋아지면서 산업 전반에 적잖은 변화를 몰고 올 거다. 평소 만들고 싶었던 것을 스스로 직접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기술이 표준화되고 획일화되면 몰개성의 디자인이 범람하는 것 아닌가? 
오히려 그 반대다. 표준화 된 디자인에 지친 사람들은 점점 신선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찾을 것이다. 남다른 논점과 관점, 디자인 감각을 가진 사람이 대접받을 것이다. 미래를 크리에이터 혹은 메이커의 시대라고 부르는 이유다. 지금은 몇몇 브랜드가 최고의 제품과 스타일을 제시하고 대중이 따라가는 모습이지만 머지않은 미래에는 내가 직접 만들거나 다른 사람들과 협업한 제품, 이를테면 자신이 만든 팔찌나 목걸이를 걸치는 이가 진정한 패셔니스타로 인정받을 것이다. 3D 프린터로 만든 백이나 구두가 명품 못지않은 자랑거리가 되는 것이다. 

3D 프린터로 찍어낸 제품과 ‘장인’이 만든 제품은 완성도 면에서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기술을 앞세워 재빨리 찍어낸 제품이 장인 정신으로 만든 제품의 완성도와 매력을 넘어설 수 있을까? 
장인 정신은 앞으로도 여전히 유효하고 또 인정받을 것이다. 럭셔리 시계 브랜드에서 단순한 기술만 이용해서는 도저히 만들 수 없는 정교하고 아름다운 제품을 선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다. 반면 중저가 브랜드에서는 IT 기술을 접목한, 뭔가 새로운 제품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삼성, 애플 등 여러 기업에서 출시하고 있는 재밌고 혁신적 기능의 웨어러블시계가 인기를 끌면 지금 같은 단순한 시계로는 더 이상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소비재 시장은 장인이 만든 것과 내가 직접 만든 제품이 뒤섞이는 쪽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내 자신이 뭔가를 할 수 없게 통제해놓은 제품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 사람도 늘 것이다. 

‘두 잇 유어셀프’ 문화는 10여 년 전부터 미래 트렌드나 키워드로 주목받았지만 기대한 것만큼 파괴력이 크진 않다. 
우리나라의 특수한 문화적 상황 탓도 있다. 고려・조선 시대의 직업에 따른 사회 계급, 사농공상士農工商의 폐해가 남아 있어 자신은 가만히 있고 남을 부리는 걸 최고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시작한 ‘메이커 페어Maker Faire’란 축제가 있다.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과학 창작물을 선보이는 자리다. 후원사가 없어 참가비까지 직접 내야 하지만 매년 수십만 명이 참가한다. 오픈 소스를 활용하고, IT 기술을 연동한 제품이 수두룩하다. 아이디어와 시스템을 공유해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선보이는 트렌드는 피할 수 없는, 이 시대의 거대한 흐름이다. 우리나라 역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다

최근 일본 소프트뱅크에서 인간형 로봇 ‘페퍼Pepper’를 올 2월부터 판매한다고 밝혔다. 
키 121cm, 몸무게 28kg의 로봇이다. 가격은 약 200만원. 만만한 금액이 아니지만 부담스러운 가격도 아니다. OS(Operating System)를 개방해 수많은 개발자가 참여하면서 지난 10여년 간 관련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했다. 인간의 어조를 파악해 대화를 나누는 것은 기본. 가슴 쪽에 있는 커다란 디스플레이 창을 통해 여러 가지 앱을 설치하고, 화상 통화에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가정용 로봇 시장은 올해를 기점으로 크게 커질 전망이다. 미국 MIT 로봇공학 연구팀이 만든 ‘지보Jibo’도선주문을 받고 있다. 팔다리 없이 머리와 몸체만 있는 디자인. 애니메이션<월Wall-E>에 나오는 귀여운 외모의 ‘이브’를 모티프로 했다. 역시 인간과 대화가 가능한 이 로봇은 주인이 없을 때 대신 전화를 받고 요리법도 알려준다. 밤에는 아이들을 재우면서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관련 영상도 보여주고 액션도 하면서 최고의 이야기꾼 역할까지 수행한다. 가격은 600달러. 스마트폰과 비슷한 금액이다. 출시는 올해 9월로 예정돼 있다. 로봇 관련 특허 기술을 가장 많이 보유한 기업이 일본 자동차 브랜드 혼다인데 이렇게 신제품을 선보이는 기업이 늘면 기다렸다는 듯 혁신적 신제품을 선보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시장이 커지면 어느 순간 로봇과 함께하는 삶이 일상이 될 거다. 마치 청소 로봇 ‘룸바’가 나온 후에 비슷한 제품이 쏟아져 청소하는 로봇이 하나도 신기하지 않게 된 것처럼. 

<아이 로봇> 같은 영화를 보면 로봇이 인간의 감정을 갖게 되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모습도 나온다. 
하하! 그런 상황이 벌어지거나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상황은 지금 수준으로는 나오기 힘들다. 지금 출시하는 로봇은 명확한 명령과 조작에 의해 움직이는 로봇 컴퓨터에 ‘불과’하다.

구글이 개발한 무인 자동차도 2015년부터 상용화된다고 들었다. 
캘리포니아 도로교통법이 2015년 1월부터 바뀌어 무인 자동차 통행을 승인한다. 대중교통에 무인 자동차를 투입하는 것도 허가한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무인 자동차가 다른 자동차들처럼 시내를 질주하는 것은 아니다. 시속 40km 정도로 속도 제한을 두고 구글 본사와 가까운 곳에서만 시범운행하며 이런저런 위험 요소를 체크하게 된다. 최근 ‘테슬라모터스Teslamotors’에서 선보인 자동차에도 무인 자동차 기능이 있다. 주차는 기본. 자동 주행 모드를 누르면 핸들에서 손을 떼도 자동차가 스스로 알아서 다른 차를 피하고 속도를 조절하며 목적지에 도착한다. 

미래 사회를 이야기할 때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곳이 구글이다. 이 기업이 세상을 움직이는 방법과 방향성은 어떤 것인가? 
구글은 세상을 움직이거나 지배한다는 생각이 전혀 없다. 다만 실험할 뿐이다. 이 거대한 조직은 아메바처럼 움직인다. 누군가 새로운 프로젝트를 제안하면 멤버를 영입하는 ‘영업’이 시작되고 본격적인 진행에 들어간다. 그 과정에서 어떤프로젝트는 없어지고 또 어떤 프로젝트는 세를 불려 세상에 알려진다. 경영진의 승인 없이 세상에 공개되는 경우도 많다. 일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다. 장난치고, 실험하고, 모험하는 문화를 최대한 용인하는 것이 구글의 힘이고 운영 철학이다. 

세계 곳곳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실시간으로 소개하는 모습이 놀랍다. 이런 정보는 어떻게 얻는 것인가? 
‘유튜브’가 답이다. 관심 기술이나 프로젝트에 대한 구체적 키워드를 유튜브에 입력하면 관련 영상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IT 기술, 물리학 등 각 방면을 대표하는 전문가의 SNS를 팔로잉하는 것도 방법이다. 라이코스 전 대표이사 임정욱이 운영하는 웹사이트(estima.wordpress.com)가 대표적으로, 모바일과 웹 트렌드 관련 정보를 살필 때 유용하다. ‘광파리’라는 이름으로 블로그 활동을 하는 <한국경제신문> 김광현 부장의 페이스북(www.facebook.com/kwang8e), <매일경제신문> 손재권 기자의 트위터(twitter.com/gjack)도 추천한다

미래 기술 속에 파묻혀 사는 이가 생각하는 럭셔리한 삶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나는 럭셔리가 뭔지 잘 모른다. 막연히 행복한 삶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할 뿐. 그렇다면 내게 어떤 삶이 행복을 주느냐? 얽매이는 것 없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삶이다. 뭔가 새로운 변화와 기술을 습득해 ‘진화’하는 삶도 중시한다. 새로운 경험을 최대한 많이 하고 싶다.

서울의 건축

보물처럼 지켜야 할 건축 명소 1

전 세계 많은 도시가 비슷비슷해지는 요즘, 서울을 서울답게 만드는 최고의 장소와 공간, 건축물은 무엇일까. 지금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젊은 건축가 37명이 ‘그곳’에 섰다.
창경궁 대온실 네임리스
“서울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다사다난한 역사와 이를 딛고 이룩한 번영이 격렬하게 부딪치는 곳이에요. 과거와 현재, 쇠퇴와 발전, 서양과 동양의 모습이 어지럽게 섞여 있지요. 창경궁 대온실에 가면 그런 역사적 배경이 총체적으로 보여 기분이 묘해져요. 일제가 순종을 유폐하면서 위로를 건넨다며 신축한 건물이 바로 이 대온실이에요. 1909년 건립한 국내 최초의 서양식 온실. 일본인이 설계하고 프랑스 회사가 시공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쓰이지 않던 철골과 유리를 처음으로 사용했습니다. ‘근본’ 없는 구조물이지만 이것 역시 서울을 상징하는 근대 문화유산이라고 생각해요. 벚꽃 문양과 용마루 등 섬세한 디테일과 깨끗한 흰색 구조물의 조화도 뛰어나고요. 온실에는 생달나무, 고사리 등 우리나라 전통 수종과 식물이 많아요. 어딘가 모르게 야무지고 단단한 느낌입니다.”


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는 나은중(오른쪽)·유소래(왼쪽) 건축가. 2009년 뉴욕에서 네임리스 건축을 개소한 후 서울로 사무실을 확장했다. 거대한 레고 블록 2개를 교차해 놓은 듯한 형태의 별내 RW 콘크리트 교회, 남양주에 있는 ‘삼각학교’ 등이 대표작. 간결하고 미학적인 디자인이 특징이다. <설화문화전>에 출품한 활 구조물을 비롯해 다양한 공공예술, 전시, 설치 작업도 진행했다. www.namelessarchitecture.com

수연산방 
김은하

“이태준 작가가 철원 고향 집의 건축 자재를 서울로 그대로 옮겨와 지은 고택입니다. 그의 작품 속에 성북동 집에 대한 묘사가 있는데 이를 바탕으로 1930년쯤 지었다고 추정하고 있어요. ‘문인이 모이는 산속의 작은 집’이라는 뜻의 수연산방壽硯山房은 1900년 초반, 실제 사람이 살던 생활 건축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의미가 있어요. 궁궐 건축과 현대건축 사이의 공백이 큰 서울에서 서민 가옥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귀한 자료가 여전히 숨쉬고 있는 거니까요. 한옥 하면 기와지붕, 처마, 서까래 같은 외관을 이야기하지만 수연산방은 생활의 편의를 위해 시도한 합리적인 내부 구조를 보는 것이 더 흥미로운 건축이에요. 1930년대까지만 해도 집은 남녀의 공간이 나뉘어 있었는데, 이곳은 성별을 초월한 집약체예요. 특히 누마루는 안방이자 사랑채로 사용한 ‘멀티룸’이죠. 창호가 아닌 유리로 창을 마감한 것도 놀랍습니다. 가장 재미있는 것은 화장실이에요. 당시 본체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곳은 마루와 연결돼 있어요. 2000년대에 등장한 ‘모던 한옥’의 시초죠.” 


강원도 원주의 단독주택 사랑재와 선유리 도시형 생활 주택 등 주거 프로젝트를 진행한 비원 파트너스의 김은하 소장. 현재 서울특별시건축사회 교류협력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1900년대 서민 가옥 연구와 복원 사업을 기획하고 있다. www.beonarchi.com

서울스퀘어 
이호락

“서울스퀘어는 서울역에서 나왔을 때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건물로 서울의 첫인상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드라마 <미생>으로 주목받은 건물로 ‘원 인터내셔널’ 본사죠(웃음). 1977년 지상 23층, 연면적 13만 2806m2(4만174평) 규모로 완공된 국내 최대 빌딩 중 하나로 당시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이 건물의 위용에 위축되곤 했죠. 서울 고도성장의 상징이던 건물이 2007년 모건스탠리에 매각되면서 레노베이션을 했습니다. 당시 첫 설계안을 보면 외관이 아주 전위적이고 화려해요. 자금 문제가 얽히면서 담백하고 차분한 디자인으로 변경되었는데 오히려 잘된 케이스라고 봅니다. 벽돌을 채택해 본래 붉은빛 외관을 유지하고,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 측면의 지하 통로는 그대로 뒀습니다. 통로와 지하 분위기가 이어질 수 있도록 내부 역시 벽돌로 마감하고요. 무작정 새 빌딩을 세워 올리기에는 공간이 더이상 부족한 현재의 서울이 어떻게 도시를 다듬으면 좋을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해요” 


정림건축에 재직 중인 이호락 건축가는 수원화성박물관, 이화여자대학교 디자인관, 경주대학교 공학관 등 굵직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실무 경력을 쌓았다. 서울 낙산에서 자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소규모 레노베이션 등 ‘작은 건축’에도 관심이 많다. www.junglim.co.kr

테헤란로
 백준범

“1972년부터 논밭을 개발해 조성한 곳이 테헤란로입니다. ‘IT 밸리’를 구상했지만 IMF 이후 금융·보험 회사들이 자리를 잡았죠. 혹자는 테헤란로가 외국 자본과 외국인 건축가가 결탁해 세워 올린 빌딩 숲에 불과하다고 폄하하며 우리 문화는 없다고 단언하지만 저는 좀 다른 생각입니다. 테헤란로는 서울 모던 건축의 시작점이에요. 초고층 빌딩에 대한 노하우와 기술이 전무하던 시절 테헤란로는 서울 빌딩의 지침이자 교본이었습니다. 경제 발전 속도와 건축 성숙의 속도가 비례하지 않던 시절 이곳이 없었다면 서울의 빌딩 문화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최근에는 한국 회사들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도 많고, 해외에서 실무를 쌓은 건축가들의 움직임도 활발합니다. 개인적으로 포스코 빌딩을 가장 좋아해요. 두 개 동을 나눠 브리지로 연결한 구성이 간결하고 무엇보다 비율이 절묘합니다. 지방이 아닌 탄탄한 근육으로 무장한 덩치 좋은 남자, 날렵하기까지한 야구 선수 같은 느낌이에요.”


하버드 대학교 건축학과 석사 과정을 마친 백준범 건축가. 노먼 포스터의 ‘포스터 앤드 파트너스’에서 근무했으며 버진 갤럭시 우주 항공기지 ‘스페이스포트 아메리카’ 프로젝트를 총괄했다. 현재 창조건축 상무로 재직 중이며 모바일 건축 ‘BMW 7시리즈 모빌리티 라운지’를 선보이는 등 혁신적인 건축에 대한 관심이 높다. www.cja.co.kr

우사단길
 하태석

“이태원역을 중심으로 큰길가 반대편 쪽으로 오면 우사단길이 펼쳐져요. 이슬람 사원부터 도깨비 재래시장까지 이르는 길인데 다양한 공방과 디자인 숍이 철물점, 미장원과 사이좋게 섞여 있지요.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된 건 이 일대가 몇 년 전 재개발 구역으로 묶이면서부터예요. 개발이 진행되면 가게를 비워줘야 해 임대료가 낮게 책정됐고 덕분에 디자이너와 아티스트가 모여들면서 하나둘 재미있는 점포가 늘어났지요. 아티스트의 재능 기부 프로젝트도 심심찮게 일어나요. 도깨비시장에 가면 초입 도로와 점포 천막을 “여기로 오세요” 하는 텍스트와 그림으로 화사하게 바꾼 모습을 볼 수 있어요. 건축주와 상인, 주민과 아티스트가 함께 만든 공간과 프로젝트가 도시를 더욱 살기 좋고 재미있게 만들어요. 함께하는 과정에서 차별화된 디테일과 이야기가 생기지요. 우사단길이 매력적인 또 다른 이유는 큰길 주변으로 골목길이 많다는 거예요. 길 안쪽으로 들어가면 다양한 형태의 지붕과 계단, 공터가 만드는 또 다른 풍경이 마법처럼 펼쳐져요. 지대가 높아 가슴이 뻥 뚫리는 듯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건축 프로젝트에 각종 IT 기술을 접목해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이끌어내는 건축가. 2010년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서는 앱을 통해 시민들이 직접 자신이 살 집을 선택하고 이 결과가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미분 생활 적분 도시’를 선보였다. 건축사무소 SCALe, 젊은건축가포럼코리아를 이끌고 있다.

서울성곽
 어번 디테일

“독일과 한국 국적의 건축가 셋으로 구성된 우리가 만장일치로 선택한 곳이 서울성곽입니다. 조선 건국과 함께 건립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데다 지형의 70%가 산인 서울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덕분이지요. 서울성곽은 산의 능선을 따라 축조한 건축 유산으로 이곳에 서면 서울이 어떤 형태로 잉태되고 발전했는지가 한눈에 들어와요. 산 중턱까지 들어선 주택을 보면 고저高低를 가리지 않고 구석구석 스며드는 강물 같다는 생각이 들지요. 기록에 따르면 과거 한양 인구가 약 20만 명이었다고 해요. 어마어마한 규모로, 당시 독일에는 이렇게 큰 도시가 없었습니다. 서울성곽을 찬찬히 보면 한국인의 미감과 자연관도 읽혀요. 도성을 방어할 목적으로 지었지만 위압적인 구석이 전혀 없어요. 산세를 따라 있는 듯 없는 듯 자연스럽게 자리잡고 있지요. 그렇다고 기능성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에요. 안쪽에서 보면 낮아 보이지만 바깥쪽에서 보면 이미 충분히 높이 자리하고 있어 공략이 쉽지 않지요. 서울성곽은 백악산 구간(창의문~혜화문), 낙산 구간(혜화문~광화문), 인왕산 구간(숭례문~창의문) 등 총 네 구간으로 이뤄져 있는데 시간이 될 때 쉬엄쉬엄 걸어보세요. 서울이 한층 더 역사적이고 아름답게 느껴질 겁니다.”


독일 출신의 건축가 다니엘 텐들러Daniel Tandler(오른쪽)와 한국 출신의 최지희(가운데), 김원천 소장(왼쪽)이 팀을 꾸린 어번 디테일. 젊은 건축가들의 그룹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도시형 한옥 설계와 레노베이션에 특히 강하다. 명륜동에 있는 한옥을 개조해 사무실로 사용하며 가구도 직접 디자인한다. www.chamooree.com(제작중)

노량진수산시장
 오브라 아키텍트

“노량진수산시장은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예요. 기차역이나 다리, 도로만큼이나 중요한 서울의 ‘기반 시설’이지요. 서울 특유의 ‘푸드 솔food soul’도 느껴지고요. 뉴욕에도 이렇게 큰 소매시장은 없습니다. 시장 보는 것을 즐기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며, 매사에 흥정을 하는 서울 사람들이 있기에 이런 시장도 자리 잡을 수 있는 것이겠지요. 도심에 이렇게 거대한 시장이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건축적으로도 인상적이에요. 식빵처럼 툭툭 자른 콘크리트 구조물 몇 개로 뼈대를 잡고 그 안에 수많은 상점과 식당, 길을 냈지요. 그 공간 안에서 상인과 고객 간에 활발한 거래가 일어나고요. 20세기 초에 유행한 건축 스타일인 ‘모던 건축’의 정신은 과도한 장식이나 과시를 지양하고 건축물에 내재된 본연의 목적과 실용성에 충실한 것이 특징이에요. 건축가나 건축주보다는 그 건축물을 사용할 사람들을 중요시하지요. 노량진수산시장에 오면 진정 좋은 건축이 어떤 건지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뉴욕과 베이징, 서울에 사무실을 둔 건축 집단. 대표를 맡고 있는 파블로Pablo(오른쪽)는 아르헨티나 출신, 제니퍼 리Jennifer Lee(왼쪽)는 재미교포 2세로 둘 모두 리처드 마이어, 스티븐 홀 등 세계적 건축가 사무실에서 일하며 경력을 쌓았다. 김수근 프리뷰상 수상작으로, 중국 베이징 외곽에 있는 산허 유치원 등 전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작업물을 선보이고 있다. 장식성을 최대한 배제하고 실용성을 강조한 설계가 특징이며 ‘예술적’ 건축을 지향한다. www.obraarchitects.com

Tuesday, March 10, 2015

인재를 잃고 있다

우리나라 최고의 스시 장인 중 하나로 꼽히는 김원일(58)씨가 ‘천재 비자’로 불리는 ‘O1’ 비자를 받아 3월2일 미국으로 출국한다. 한국에서 요리를 접고 미국에 새 둥지를 튼다는 얘기다.

미 국토안보국이 규정한 ‘O1’비자는 ‘과학, 예술, 교육, 체육 등의 방면에서 특별한 능력이나 성취(Extraordinary Ability or Achievement)가 있는 사람에게 부여하는 비자. 비자 자격요건을 보면, ‘노벨상 수상이나 이와 동등한 자격을 갖춘 경우’, ‘아카데미상, 에미상, 영화감독 조합상 수상자나 이에 상응하는 수준의 자격을 갖춘 자’ 등이다. 현재 미국에서 약 9000명에게만 발급됐으며, ‘천재 비자(Genius Visa)’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출국 나흘 전 경기도 분당에 있는 그의 식당에서 만났다. 식당은 이미 폐업한 상태타.

―왜 미국으로 떠나는가.
“97년 이 자리에 식당을 열고, 요리학교를 개교하는 게 꿈이었다. 94년 도제식 요리학원을 열었지만, 엄격한 교육 때문에 제자들에게 3번이나 소송을 당했다. 그래도 계속하고 싶었는데 교육부에서 인가를 내주지 않았다. ‘악법도 법이니 지켜야 한다’며 규정상의 이유로 정식학교를 허가해 주지 않았다. 내 부족한 탓이었겠지만, 여기서는 더 이상 내꿈을 펼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이런 비자가 있는지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언제부터 비자를 준비했나.
“미국 변호사를 만났는데, ‘당신 정도면 충분히 O1비자를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지난 1년간 준비했다. 내 책, 언론에서 나를 다룬 내용 등 나에 관한 모든 자료가 필요하다고 해서 미국으로 자료를 부치는데만 480만원이 들었다. 지난 1월2일자로 비자가 나왔다. 그는 지난 2010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도 “차라리 뉴욕에 가서 진검승부를 해볼까 싶다”고 했다.

 우리나라 초밥 장인 중 최고 수준으로 꼽히는 김원일씨가 2일 미국으로 떠난다. 사진 위는 2010년 그가 운영하는 일식당에서의 모습. 아래 사진은 2월27일 그가 마지막으로 식당에 들러 주방을 정리하는 모습이다.
 우리나라 초밥 장인 중 최고 수준으로 꼽히는 김원일씨가 2일 미국으로 떠난다. 사진 위는 2010년 그가 운영하는 일식당에서의 모습. 아래 사진은 2월27일 그가 마지막으로 식당에 들러 주방을 정리하는 모습이다.
―한국에서 식당하면서 무엇이 가장 좌절이었나?
“우리 식문화다. 값싸고 푸짐한 식당도 있고, 제대로 맛을 내는 미식가를 위한 최고급 식당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싸고 푸짐한 식당’이 유일한 미덕으로 꼽힌다. 벤츠타고 와서도 우리 식당 가격을 보고 돌려 나가는 사람도 있다. 일식당에서는 일명 쓰끼다시(곁들임요리)가 많아야 손님이 좋아한다. 정작 본 요리가 나오면 배불러서 먹지 못한다. 그런데도 맨날 ‘싸고 푸짐한’ 얘기만 한다. 텔레비전이나 신문도 문제다. 그게 유일한 가치인 것처럼 가르친다.”

―그래서 김원일 식당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초밥에 회가 너무 작다’ ‘요리사가 손님을 가르치려고 든다’고 욕을 했다.
“생선 15g, 밥 20g을 합쳐 35g으로 만든 초밥이 제대로 된 초밥이다. 초밥이 입에 들어갔을 때 밥이 타액을 흡수하면서 맛이 결정 나는 거다. 생선은 약 8㎝가 적당하다. 생선 큰 것을 좋아할 거면 생선 먹고, 밥한숟가락 먹으면 된다. 그래서 그렇다고 얘기를 하다가 흥분도 하고 그랬다.” 지난 인터뷰에서도 그는 ‘상도(商道)가 있으면 손님에겐 객도(客道)가 있어야 한다’고 얘기했다. 프랑스 레스토랑에서는 풋고추랑 된장 달라는 말을 하지 않으면서, 일식집에서만 그런 것을 찾는 건 요리를 죽이는 일이라는 것이다.

―또 어떤 점이 섭섭했나.
“싼 재료라도 최고의 맛을 내는 게 요리다. 이를테면 ‘무로 만든 후식’ 같은 것이다. 덜렁 멜론 한 조각을 내놓으면 ‘비싼 집이다’ 하지만 무를 조려 후식으로 만들면 ‘비싼 집에서 무를 후식으로 내놓으냐’ 하고 화를 낸다. 멜론 한 조각 내는 것보다 훨씬 공이 많이 드는 일이다. 외국인들은 ‘무에서 어떻게 이런 단맛이 나는가’ 묻고 또 묻는다.”

―이 식당의 요리는 수준급이지만, 손님이 많지 않아 걱정스러웠다. 그나마 번 돈은 책10여권을 내는데 많이 쏟아부은 것 같은데.
“책 17권을 내는데 약 20억원이 들었다. 이런 책이 나와야 서점에 가면 내 책은 저 아래 장 속에 넣어놓고, 위에는 ‘오천원으로 요리하는 법’류의 책들만 진열해 놓더라. 그래도 식당을 찾는 손님들이 있어, 애들 공부시키고, 책도 냈다. 미국에서 일본 식당하는 사람들이 내 책 보고 요리를 했다고 하더라. 미국에가면 그 책들부터 영어로 번역해 출간할 계획이다. 변호사가 미국측 출판사와 접촉 중이다.”

―미국에 가면 무엇을 할 생각인가.
“워싱턴에다 식당을 낼 생각이다. 거기서 한 상에 2000만원짜리 요리를 내는 최고급 식당으로 승부를 내 보겠다. 그걸로 돈 벌어 미국 50개 주에 내 요리학교를 세우는 게 목표다.”

―미국에서 일식이라면 이미 ‘노부(Nobu)’레스토랑의 마쓰히사 노부유키(松久信幸) 같은 일본인이 꽉 잡고 있는 게 아닌가.
“미국 LA에서 할리우드 스타들이 찾는 일식당을 하는 후배가 내가 미국간다고 했더니 긴장된다더라. 그 식당이 1인분에 500달러다. 뉴욕에서 노부에서 나도 먹어봤는데, 요리로는 내가 앞설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여기서 장사가 잘 됐으면, 미국으로 떠나지 않았을텐데 아쉽다.
“내가 부족한 것도 있었고, 우리 식문화에 대해서도 섭섭한 게 있지만 꼭 그래서 떠나는 건 아니다. 올해 우리나이로 쉰아홉이 됐다. 예순부터 새 인생에 도전하는 것, 꼭 해보고 싶었다. 응원해 달라.



김원일은
57년 생. 부산에서 고교 졸업 후 부산 코모도 호텔 주방일을 시작했다. 일본으로 건너가 아베노쯔지 조리사전문학교, 대학원 다녔다. 일본 도쿄의 고급 레스토랑 ‘퀸 엘리스’에서 일했고, 사장이 끊어준 비행기 표를 들고 프랑스로 건너가 식당에 취직, 프랑스 요리를 배웠다. 1997년 경기도 분당에서 테이블 세개로 식당을 시작해 미식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아왔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Monday, February 9, 2015

금융임원되기

한 번에 수백 명의 신입 직원이 입사하는 금융회사에서 임원이 되는 건 과장을 조금 보태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 매월 실적에 대한 압박감을 이겨내고 꾸준히 성과를 낸 직원 중 선택받은 사람만 금융회사의 ‘별’이 될 수 있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임원 인사에서 국민은행은 10명, 우리은행은 12명, 신한은행은 3명이 임원으로 승진했다. 작년 임원 인사와 비교해 승진자 수가 소폭 줄었다. 금융회사들이 조직 개편을 통해 임원 자리를 줄였기 때문이다. 

올해 임원 인사에서는 지난해 개인정보 유출 등 여러 금융 사고를 거치며 어수선했던 조직 분위기를 추스르고 영업력을 회복하겠다는 금융회사들의 의지가 엿보였다. 국민은행의 경우 지역본부장 출신을 대거 임원으로 발탁했다. ‘영업통’을 중심으로 임원진을 꾸려 영업력 회복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도다.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영업통들이 임원으로 배치되다 보니 상고를 졸업한 뒤 곧바로 입행한 고졸 임원도 많았다. 우리은행은 승진한 12명의 임원 중 4명이 고졸이었다. 국민 기업 외환 하나은행도 상고 출신 임원을 배치했다.

여느 기업과 마찬가지로 금융회사에서 임원이 되면 연봉과 처우가 확연히 달라진다. 은행 임원들은 회사에서 승용차를 제공 받는다. 일반 기업에서 상무급은 종종 기사 없이 차만 제공 받기도 하지만 은행은 상무급도 기사가 딸린 차를 받는다. 차종은 대개 쌍용자동차의 체어맨, 현대자동차의 제네시스, 기아자동차의 K9이다. 
은행장은 주로 현대자동차의 에쿠스를 탄다. 기사와 유류비, 보험료와 고속도로 통행료 등 차량 유지와 관련한 모든 비용이 지원된다. 단, 교통법규를 위반했을 때 무는 범칙금은 개인이 낸다.

또 일반 기업 임원과 마찬가지로 개인집무실에서 일하고, 전담비서가 일정을 관리해주며, 배우자와 본인이 대형병원의 최고급형 건강검진을 제공받는다.
연봉은 천차만별이다. 정부(예금보험공사)가 최대 주주인 우리은행의 경우 상무 2억 원, 부행장 2억5000만 원 등이다. 민간 은행은 성과에 따라 3억 원 이상의 연봉을 받는 임원도 많다. 대학 최고경영자(CEO) 연수 비용을 회사로부터 지원받거나 회사를 대표해 각종 포럼과 세미나에 참석할 수 있는 점도 임원의 특권으로 꼽힌다.

임원으로 퇴직하면 퇴직 이후의 삶을 설계하기도 훨씬 수월해진다. 임원으로 퇴직하면 일정 기간 계열회사의 고문과 자문역을 맡을 수 있고 별도의 사무실을 제공받기도 한다. 한 금융회사의 임원은 “업무가 과중해 힘이 들지만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참여한다는 보람이 더 크다”고 말했다.

공문원에 대해 아라보자

3일 부산도시공사 건설본부장에 임명된 김종원 이사는 1991년 부산도시공사가 출범한 이후 첫 평사원 출신의 임원이다. 부산도시공사가 부산시 산하 공기업이다 보니 그동안 등기임원은 시 공무원 출신들이 맡았다. 이번에도 전임 본부장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부산시 기술직 간부들이 이 자리를 노렸지만 서병수 부산시장이 받아들이지 않아 내부 승진 임원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국내 공기업 임원 중 내부 승진 비율은 30%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치권 인사나 상급 부처 출신의 퇴직 공무원이 낙하산으로 내려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내부 출신이 공기업 사장 자리까지 올라가는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석효 전 한국가스공사 사장은 가스공사 공채 1기다. 조계륭 전 한국무역보험공사 사장 역시 무보 역사상 첫 공채 출신 사장이다. 다만 이들 내부 출신이 공교롭게도 비리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한 공공기관 직원은 “내부 출신 사장들이 경영을 잘해야 후배들에게도 길이 열린다”며 “이들이 개인 비리로 줄줄이 철창신세를 지면서 ‘차라리 관피아가 낫다’는 얘기까지 나온다”고 토로했다. 

공기업 임원 중 여성 임원 수는 일반 기업에 비해 현저히 적다. 기업경영성과 평가 사이트인 CEO스코어가 지난해 8월 발표한 ‘30대 공기업의 남녀 임직원 직급별 분포 현황’에 따르면 30개 공기업의 임원 중 여성 임원은 최연혜 한국철도공사 사장과 홍표근 한국광물자원공사 상임감사위원 등 단 2명이었다. 반면에 지난해 9월 말 기준 30대 그룹 여성 임원은 185명이었다.

공기업에서는 임원이 돼도 엄청난 혜택을 누리지는 못한다.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국전력의 경우 사장과 감사를 포함해 임원은 총 7명이다. 여기에 일반직군 최고위 직급인 ‘1급(갑)’ 중 임원 대우를 받는 직원 5명을 합치면 사실상 임원은 12명이다. 상임이사는 운전사와 함께 기아자동차 오피러스급의 차를 제공받는다. ‘1급(갑)’ 신분의 본부장급 임원은 회사 일이 있을 때마다 회사 차량을 배정받아 쓴다 .

회사생활을 알아보자

원하는 직장에 어렵사리 입사하더라도 그게 다가 아니다. 모 대기업에서 유능하기로 소문난 한 고참 부장은 임원 승진이 안 되는 이유를 최근에야 알았다. 어떠한 윗사람도 일만 잘하는 부하직원을 자기 일처럼 챙겨주진 않는다는 거다. 직장에서 ‘능력’만으론 잘나가기 어렵다. ‘능력 플러스 정치’가 필요한 게 우리 현실이다.》

서울 광화문 사거리 횡단보도를 건너는 출근길 직장인들.


취업 전쟁의 시대, 원하는 직장에 입사하는 것은 명문대에 입학하는 것보다 더 짜릿하다.

물론, 더 짭짤하다. 당장 다음 달부터 통장에 입금될 월급을 생각할 때마다 밀려오는 도도한 행복감. 돈 위에서 파도타기를 하는 나날. 주변의 부러움 가득한 시선은 또 어떤가. 월드 스타, 거의 싸이 급이 된 기분일 것이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 100명 중 입사에 성공하는 사람은 4명이 채 안 된다. 이런 가운데 입사에 성공했다면 우선 이 기분, 만끽하기 바란다. 왜? 오래가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찬물을 끼얹어 대단히 미안한데, 이게 현실이다.

가족 같은 직장은 없다!

신입사원은 진정한 무한경쟁 지대에 들어섰다고 보면 된다. 사느냐 죽느냐, 매일 기로에 설 것이다. 화기애애한 가족 같은 분위기의 직장? 개가 먹어치운지 오래다.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이후 평생직장의 신화는 깨졌다. 비정규직이 정규직 숫자를 상회한 지도 꽤 지났다. 지금 비정규직인가, 아니면 정규직인가. 정규직으로 입사했다면 그나마 기회는 열려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에게 기회는 잔혹하리만치 제한적이다.

신입사원 대부분은 ‘별’을 다는 것을 꿈꾼다. 기업의 별, 임원이 되겠노라 일단 다짐해본다. 그러나 그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 아는 신입사원은 별로 없다. 입사 직후부터 임원 승진을 준비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저 세월이 지나 부장 정도까지 올라가면 기회가 열리지 않을까 막연히 기대해볼 뿐이다. 그 즈음에 준비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럴까? 아니다.

몇 해 전 한 글로벌 대기업에서 사내 정치(office politics)와 관련해 강의를 했다. 강의 후 수강생들과 식사를 하는데 한 분이 다가왔다. 그는 명문대 출신으로 입사 초기부터 일을 열심히 했고 인정도 받았지만 부장에 멈춰 이사 승진을 못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스스로 원인을 분석해보니 ‘사내 인적 네트워크 부족’이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했다. 그래서 이런저런 모임에 참가해왔다고 한다. 


“그걸 이제 알았냐?”

그런데 얼마 전 임원이 된 입사동기를 만나 “요즘 인적 네트워크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을 때, 그 동기가 한 대답에 충격을 받았단다. 

“나는 신입사원 때부터 그걸 알았는데, 넌 이제 알았냐?”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포인트는 바로 이것, 신입사원 때부터 ‘그걸’ 알았다는 점이다. 미리 인적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갖추려고 노력해온 사람은 임원 승진을 한 반면, 그렇게 못한 사람은 만년 부장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불편한 진실! 유념할 일이다.

정치에서도 국회의원이 3선 정도에 도달하면 프로야구의 1군, 2군처럼 운명이 갈린다. 1군은 대통령후보군이다. 2군은 국회 상임위원장 후보군이다. 초선 시절 그들 간엔 큰 격차가 없었다. 스펙 면이나 역량 면에서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언젠가 대통령에 도전해보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는 면에서도 차이가 없다. 무엇이 그들의 운명을 갈라놓을까. 운? 노력? 역시 노력이다. 

10년 정도 집중해서 한 가지 일만 하면 자연스럽게 달인이 된다. 그러나 집중하지 않고 이일 저일 하면 달인이 되지 못한다. 국회의원은 유능한 보좌진을 둬야 하고, 의원들 사이에서 자기 영역을 넓혀가야 하며, 언론과 대중에게 좋은 이미지로 어필해야 한다. 결국 정치란 사람 장사이고 정치인은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 

신입사원 시절에는 입사동기들 간에 스펙 차이나 역량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특히 공채를 거친 경우에는 더 그러하다. 임원을 꿈꾼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없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임원에 오르는 사람은 100명 중 1명도 안 되는 0.8%에 불과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2011년 11월 발표한 ‘2011년 승진·승급 관리 실태조사’ 결과가 그렇다. 대기업은 0.6%다. 

여성이라면 확률은 더 떨어진다. 삼성전자가 2012년 6월 발표한 ‘2012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말 기준 이 회사 전체 임원 중 여성의 비율은 1.5%에 불과하다. 전체 직원 22만 명의 40%가 여성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여성이 임원 될 확률은 1만 명 중 2명, 0.02%의 참혹한 수준이다.

입사 직후 신입사원은 선택해야 한다. ‘1%로 살 것인지 아니면 99%로 살 것인지’를. 상위 1%에 속해보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사생활을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 별 보고 출근해서 별 보고 퇴근해야 별을 달 수 있다. 우리 기업문화에서 조기 출근에 조기 퇴근 포기는 필수다. 인간적으로 살아보겠다고 생각한다면 일찌감치 99%에 속하기로 마음먹는 게 속 편할 것이다. 현실은 99%인데 이상은 1%라면, 속만 쓰릴 뿐이다.

얼마 동안 사생활을 포기해야 할까? 20년 이상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대졸 신입사원이 임원이 되기까지 평균 21.2년이 걸린다. 대기업 임원이 되려면 23.6년이 소요된다. 28세에 대기업에 입사하는 경우 0.6%의 확률을 뚫는다고 하더라도, 52세는 돼야 임원이 된다는 이야기다. 


프레시하게 넋 놓고 있다간…

임원은 ‘별’이다.

그렇다면 상위 1%에 속해보겠다고 마음먹는 직장인은 구체적으로 얼마나 될까. 잡코리아 에이치알파트너스가 지난 4월 전국 남녀 직장인 69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임원 승진을 준비 중인 직장인은 남성이 38.5%, 여성이 25.8%, 평균이 31.8%였다. 현실에 비해 여성 직장인의 의지가 의외로 도발적이다. 

임원 승진 준비를 시작하는 시기는 대략 언제쯤일까. 직장 경력 3∼5년 때부터 준비한다는 응답이 26.8%, 입사하는 순간부터 준비한다는 응답이 22.3%였다. 신입사원 때부터 상위 1%에 속해보려 준비를 시작하는 직장인이 대략 5명 중 1명 정도에 불과하다. 다른 말로 5명 가운데 4명은 신입사원 시절, 그 중요한 시기를 프레시(fresh)하게 넋 놓고 지낸다는 뜻이다.

임원이 되어보겠다는 사람들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알아보자. 직무분야 전문지식 습득 44.1%, 인맥관리 41.4% 순이었다. 그런데 업무 역량은 기본 중에서도 기본이다. 임원 승진심사에서 결정적 고려사항이 아니다. 부장 정도까지 승진할 정도면 업무 역량은 그야말로 도 긴 개 긴. 인사권자인 사주(또는 CEO)의 마음을 움직일 ‘결정적 그놈’은 과연 뭘까. 충성도? 섭외력? 판단력? 결단력? 통솔력? 

대한석탄공사 사장을 지냈고 ‘임원의 조건’을 집필한 조관일 창의경영연구소 대표가 꼽은 임원의 첫 번째 조건은 ‘정치력’이다. ‘사내 정치를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도 신입 때부터. 사내 정치를 잘 모르면 임원이 되기도 어렵지만, 된 이후에도 오래 살아남기 어렵다고 한다. 조 대표가 꼽은 두 번째 조건은 ‘충성심’이고 세 번째는 ‘추진력’이다. 

미세하지만 이론(異論)이 있을 수 있다. 일부는 ‘충성심’을 첫 번째 조건으로 꼽기도 한다. 틀린 관점은 아니다. 그런데 충성심을 보여주는 것도 결국 사주(또는 CEO)를 상대로 하는 사내 정치의 일종이다. 사주(또는 CEO)의 처지에 서보면 답이 바로 나온다. 업무 역량이 비슷하다면 어떤 사람을 임원, 특히 등기임원으로 삼고 싶을까. 역시 충성심이 높은 사람일 것이다. 충성도가 높다면 업무 역량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큰 문제가 아니라고 저들은 생각한다. 왜 이토록 충성심에 매달릴까. 그것은 당신이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하는 이유와 같다. 외롭고 두렵기 때문이다. 


능력보다 충성심

인간은 기본적으로 외로운 존재다. 또 불완전하기에 늘 두려워한다. 그런데 사주(또는 CEO)가 되면 이런 감정이 극대화한다. 더 외로움을, 두려움을 느낀다. 조직은 기본적으로 피라미드 구조다. 그 파라미드의 정점에 혼자 서 있다고 생각해보라! 책임을 오롯이 혼자 져야 한다면? 결정이 잘못될 경우 회사가 망할 수도, 교도소에 가야 할 수도 있다면? 

이때 사주(또는 CEO)는 ‘누군가 이 일을 대신해줄 사람이 없을까?’ ‘이 외로운 결정에 확신을 불어넣어줄 사람이 없을까’라고 생각한다. 바로 이때 부르면 군말 없이 신속하게 달려와 조언도 해주고 확신도 불어넣어주는 존재가 바로 임원이다. 더 정확한 조언, 더 확고한 확신을 불어넣어줄 수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별 중의 별, 차기 CEO감이다.

이사회는 늘 아름다운 결정만 내리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비난을 받거나 비판을 감수해야 할 때가 더 많다. 감원 결정도, 임금삭감 결정도, 사업철수 결정도 내려야 한다. 때로는 편법, 불법 행위도 공모해야 할지 모른다. 회사 밖에 나가 발설하면 회사가 위기에 빠지는 비밀을 공유해야 한다. 사주(또는 CEO)가 충성도를 따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죽으라고 하면 죽는 시늉이라도 할 만한 충성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니, 사주(또는 CEO)가 그런 충성도를 하루아침에 확인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꽤 긴 시간인 20여 년 동안 내 사람이 될 만한지 아닌지를 진단하는 것이다. 처음엔 멀리 두고 눈여겨보다 나중에는 가까이 두고 검증하는 식이다. 그래서 임원이 되기 원하면 가능한 한 빨리 저들 곁으로 다가가야 한다. 최대한 신속하게 직속 라인에 들어가는 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 


A급 직원은 따로 관리

사실, 어느 기업이건 A급 직원은 입사 초기부터 따로 관리한다. 회사가 이 직원의 근무지나 경력을 엘리트 코스로 관리해준다. 그러다 못 따라오면 중도 탈락시키고 잘 따라오면 요직에서 요직으로 돌리며 키워나간다. 

이 때문에 직장에서는 첫 근무지가 대개 자신의 라인이 된다. 첫 상사가 그만큼 중요하다. A급 직원을 따로 관리하는 이유도 결국 라인과 관련이 깊다. 유력 부서의 유력 인물 밑에 잠재력 있는 신입사원을 배치해 회사를 이끌 엘리트 집단을 만들어가는 전략이다. 실력도 있지만 충성도도 높은 직속 진골 라인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입사 초기 A급 직원으로 분류돼 핵심 부서를 첫 근무지로 배정받았다면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일단 직속 라인에 속할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반면 B급 이하 직원으로 분류돼 평범한 부서의 눈 풀린 상사 밑에서 일하는 처지가 됐다면 빨간불이 켜졌다고 봐야 한다. 신입사원에게 빨간불 운운하다니 너무 잔인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엄연한 현실, 실제 상황이다. 이 경우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발군의 역량 발휘로 B급 딱지를 떼거나 초강력 충성 맹세 요법으로 기존 라인에서 탈출해 직속 라인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직장인이 이 대목에서 한 번 걸린다. 무엇에? 인정 또는 의리에. 내가 모시던 상사, 함께 울고 웃던 동료를 ‘버린다’는 느낌? 그 느낌 아니까 차마 잔인해지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눌러앉기로 하고 결국 함께 침몰하고야 만다. 그들을 버릴 바에는 차라리 나도 함께 망하는 것. 아름답거나 장렬한가. 만약에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은 영화를 너무 많이 봤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것이 실제다. 임원이 되기를 원한다면, 직속 라인에서 부른다면 언제라도 옮겨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만약에 불러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찾아가야 한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것,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 이게 녹록지 않다.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만약에 거절당한다면 보통 민망한 일이 아니다. 그래도 적당한 명분이나 사적인 자리를 만들어 찾아가길 권한다. 어차피 일하는 것, 직속 라인에서 일해야 승진 기회도 더 보장되고, 하다못해 배우는 것도 더 많다. 이런 것이 바로 인맥관리다.


공범의 치명적 매력

인맥관리와 관련해 많은 사람이 착각하는 것 하나가 있다. ‘인맥이 넓은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맞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맥의 질이다. 광범위하게 회사 내외 인맥을 쌓아 나쁠 건 없지만, 무엇보다 회사 내 직속 라인과 아주 끈끈한 사이로 엮여야 한다. 직속 라인에 속하더라도 그 속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계속 상하 라인을 관리해야 한다. 나를 확실하게 끌어주는 상사가 단 한 명만 있어도 구조조정에서 살아남는다. 

직속 라인에 속하더라도 어떤 충성심을 보여줄 것인지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사주(또는 CEO)는 한번 충성심을 보였다고 단번에 넘어오지 않는다. 저들은 지켜야 할 것이 많고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조심스럽고 신중하다. 쉽게 신뢰하지도 못할뿐더러 변덕스럽기도 하다.

충성심을 보이려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회사에서 충성심을 돋보이게 만들려면 무슨 짓을 해야 할까. 무릎을 꿇는 일 정도는 오히려 애교에 가깝다. 이보다 훨씬 비굴한 일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순도도 높아야 하지만, 경쟁자의 그것과 차별성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저들이 당신에게 중독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당신의 충성심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치명적 매력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충성심을 보이기에도 버거운데, 거기에 치명적 매력까지 더하라니 상당히 부담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그래야 0.8%에 들어갈 수 있다. 치명적 매력을 더하는 방법에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강력한 한 가지 방법은 ‘죄를 숨기는 데 적극적으로 조력하고 끝까지 입을 닫는 것’이다. 공범이 되는 것이 순도 높은 충성심을 보일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이야기다.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성격을 가진 사람은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대기업에서 사주의 신임을 받아 전문경영인 CEO 자리에 오른 사람치고 형사 처벌을 받지 않은 사람, 받을 위기에 처한 적이 없는 사람, 국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지목되지 않은 사람, 감사원 조사나 정부 위원회 조사에 불려가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기자들은 안다

정치권에서 계파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국회의원도 정치하면서 교도소 담장 위를 걷지만 기업 경영진도 매한가지다. 편법이나 불법을 저지르라는 얘기가 아니다. 그런 일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충성심이 있어야 임원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정도까지 해낼 자신이 없다면, 상사의 자가용 오일 교환 날짜를 챙겨 적시에 교환해주는 열의라도 보여야 한다. 이것도 할 자신이 없다면, 99%로 살아가는 게 맞다. 아마추어이기 때문이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어떤 궂은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 프로페셔널이다.

언론계 기자라면 누구나 다 안다. 기자가 대기업 사주에 대해 안 좋은 내용으로 기사를 쓰고 있으면 해당 기업의 그 쟁쟁한 홍보담당 임원들이 열 시간이고 스무 시간이고 언론사에서 죽치면서 기사를 빼달라고, 혹은 사주의 이름이라도 안 나가게 해달라고 필사적으로 요구해 관철시키는 사실을 말이다. 그야말로 수단, 방법 안 가린다. 자존심 때문에 이런 궂은 일을 못하겠다고 하면 아마추어다. 

이 대목에서 인맥은, 특히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과의 인맥은 ‘양’이 아니라 ‘질’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출마를 하겠다는 사람치고 정치권에 그나름의 인맥이 없는 사람은 없다. 보통은 실력자 아무개도 잘 알고 아무개도 잘 안다고 말하고 다닌다. 그러니까 공천을 받는 데 문제가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뚜껑을 열어보면 다름 사람이 공천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뭘 착각한 것일까. ‘그냥 아는 사이’와 ‘잘 아는 사이’의 차이를 몰랐기 때문이다.


인맥은 量이 아니라 質

같은 회사에 20년 정도 근무하면 사내에선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가 된다. 특히 회장이나 사장 이하 임원 대부분과는 아는 사이라고 봐야 한다. 이런 속에서 누구는 임원으로 승진하고 누구는 탈락한다. 탈락한 사람은 대부분 그들과 ‘그냥 아는 사이’인 사람일 것이다. 반면에 승진한 사람은 그들과 ‘잘 아는 사이’인 사람일 것이다. 

나는 공천을 확신하며 대통령과도 잘 아는 사이라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바로 휴대전화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보세요. 대통령이 곧바로 받거나 최소한 얼마 뒤에라도 리턴 콜이 오지 않는다면 ‘잘 안다’고 하지 마세요.” 

잘 아는 사이란 이런 사이다. 전화를 언제나 반갑게 또는 기꺼이 받아줄 정도의 사이다. 이런 점에서는 A급 직원도 방심해선 안 된다. A급 직원이랍시고 실력을 과신한 나머지 충성심 따위 우습게 알고 지내다가는 ‘주류 계파와 잘 아는 사이’의 지위에서 곧바로 밀려난다. 충성심은 사주(또는 CEO)가 인정하는 주류 계파에 들어가게도 하고 또 거기서 쫓겨나게도 한다. 

구태 정치의 상징이라는 계파, 하지만 절대 사라지지 않을 계파는 정치권에만 있는 게 아니다. 계파는 회사에선 주로 ‘라인’으로 불리는데 상당수 회사에서 엄존한다. 라인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그만한 유용성이 있기 때문이다. 떼를 지어 적을 상대하는 편이 혼자 상대하는 편보다 확실히 유리하기 때문이다. 소위 ‘라인 불멸의 법칙’은 인간의 생존본능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그만큼 강력한 것이다. 


라인 불멸의 법칙

역대 대통령 가운데 계파 없이 정치를 한 사람은 없다. 상도동계, 동교동계, 친노계, 친이계, 친박계가 이를 증명한다. 정치권의 별, 국회의원도 결국 어떤 계파에 소속돼야 달 수 있다. 언제나 쇄신 대상으로 언급되지만 정치권에서도, 회사에서도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 

회사의 직속 라인은 물론 사주(또는 CEO) 라인이다. 그러나 정작 적지 않은 사주(또는 CEO)는 직원들에게 “줄을 서지 말라”고 역설한다. 정말 역설적인 시추에이션이 아닐 수 없다. 더 웃긴 건, 이를 곧이곧대로 믿고 열심히 따르는 직장인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어? 나도 그랬는데’라고 생각한다면 바보처럼 살아왔다고 자백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들이 줄을 서지 말라고 하는 것은 ‘나 이외 누구 밑에도 줄을 서지 말라’는 뜻이다. ‘나에게 맞서는 어떤 라인도 만들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하다. 직속 라인 이외 어떤 라인도 위험하기 그지없는 라인이다. 어떤 조직이든 무조건 직속 라인에 들어가고 볼 일인 것이다.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적지 않은 직장인이 줄서기에 거부감을 드러낸다. 인크루트가 2010년 6월 직장인 105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어느 파벌에도 속하지 않고 무당파로 남겠다’는 응답자가 43.8%였다. 우매한 다수임에 틀림없다. 99%에 속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그렇게 생각해도 관계없다. 하지만 1%에 속하기로 마음먹었는데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생각을 바꿔야 한다. 재차 강조하지만, 사주 직속 라인, 진골 라인에 들지 않고는 임원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무당파로 지내다 부장급 정도에 라인을 잡겠다’는 사람도 꽤 있다. 나름 영리한 전략일 것 같지만, 사주(또는 CEO)는 생경한 충성심에 거부감을 보일 것이다. 묵은 김치같이 오래된, 충분히 검증된, 순도 100%의 충성심이어야 저들은 안심한다. 라인에 속할 요량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들어가는 게 좋다. 그래야 나중에 대접받는다. 저들이 때 되면 알아서 이사 승진을 챙겨줄 정도의 대접 말이다.
승진의 정치학은 결국 충성의 정치학이자 직속 라인의 정치학이다. 

회사 임원되기

54세 남성, 전략기획 또는 기술직.’

국내 대기업 임원들의 평균(지난해 9월 말 기준)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기업 평가 회사인 CEO스코어가 국내 30대 그룹(공기업 제외) 상근 임원 9479명을 전수 조사한 결과다. 이들이 근무하는 회사는 금융감독원에 지난해 3분기(7∼9월) 분기 보고서를 제출한 30대 그룹 소속 281개 계열사다. 30대 그룹 중에는 분기 보고서 제출 기업이 없는 부영그룹만 제외됐다.

국내 30대 그룹 임원들의 직급별·직무별 비중 및 평균 연령 등을 모두 조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CEO스코어는 지난해 4분기(10∼12월)와 올 1월 임원 인사를 단행한 삼성 현대자동차 LG 등 10개 그룹 신규 임원 623명에 대한 조사도 병행했다. 

대기업에서 임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1%가 채 되지 않는다. 삼성그룹은 전체 직원 22만 명 중 임원이 2000여 명(0.9%) 수준이다. SK그룹도 8만 명 중 720여 명(0.9%)으로 삼성과 비율이 비슷하다. 현대자동차그룹은 11만 명 중 500여 명(0.5%), LG그룹은 13만3000명 중 800여 명(0.6%)으로 비율이 더 낮다(국내 사업장 기준). 임원 승진은 그야말로 ‘바늘구멍 뚫기’인 셈이다.

직장인들의 ‘꿈’으로 여겨지는 대기업 임원은 어떤 사람일까. 본보가 CEO스코어 자료를 토대로 ‘임원의 세계’에 대한 단면을 하나씩 벗겨 봤다.  

▼ 입사 뒤 20년 이상 걸려… 57%가 전략-기술 파트 출신 ▼

직장인, ‘별’이 될 확률 0.9%


여전히 단단한 유리 천장

지난해 9월 말 기준 30대 그룹 임원 중에는 남성이 9294명(98%)으로 압도적이다. 여성 임원은 185명으로 2%에 불과하다. 여성들이 겪고 있는 ‘유리 천장’이 여전히 심각하다는 얘기다.

그나마 여성 임원 비율이 높은 곳은 유통업체가 많은 현대백화점그룹(8.0%) 신세계그룹(7.2%) CJ그룹(6.2%) 등이다. 현대중공업 LS 대우조선해양 대림 에쓰오일 대우건설 동국제강 영풍 등 8개 그룹은 여성 임원이 단 1명도 없다.

4대 그룹의 여성 임원 비율은 현대자동차(0.8%) SK(1.7%) LG(1.7%) 모두 평균치를 밑돌았지만 삼성(2.6%)만 유일하게 전체 평균보다 높았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모두 바꾸라”고 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1993년)을 전후로 삼성그룹 내에서 여성 인재들을 확보하고 육성하는 제도들이 잇달아 도입됐기 때문이다. 2011년 김정미 제일모직 상무를 시작으로 1993년 봄에 입사한 대졸 여성 공채 1기들의 임원 승진 소식도 속속 들려오고 있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12월 임원 정기 인사 때도 신임 임원 243명(분기 보고서 제출 기업 기준) 가운데 12명(4.9%)이 여성이었다. 같은 달 현대차그룹 인사에서는 이소영 현대캐피탈 리스크관리실장과 이정원 현대캐피탈 디자인랩실장이 임원 첫 단계인 이사대우로 승진했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 인사를 낸 삼성 현대차 LG 현대중공업 GS 한화 신세계 LS 대림 코오롱 등 10개 그룹에서 신규 선임된 임원은 623명이다. 이 중 여성은 20명으로 3.2%에 불과했다.


전략기획, 기술 전공이 가장 많아

직무별로 나눴을 때 가장 많은 임원을 배출한 부문은 전략기획이다. 30대 그룹 임원 중 이 부문에서 일하는 임원은 전체 9479명 중 2808명(29.6%)이었다. 다음으로 임원이 많은 곳은 기술(엔지니어) 파트로 2579명(27.2%)이나 됐다. 영업·마케팅(1107명), 연구개발(R&D·1010명)이 뒤를 이었다. 기술 및 R&D 인력이 전체 임원의 40%가 넘는 셈이다.

그룹별로 살펴보면 주로 조선이나 건설을 주력 계열사로 둔 곳이 기술 전공 임원이 많았다. 현대중공업그룹(66.1%)과 대우건설(56.9%)이 대표적이다. R&D 임원 비율은 삼성그룹(19.1%)과 LG그룹(18.4%)이 가장 높았다. LS그룹과 GS그룹은 재무통 임원 비율이 각각 9.3%, 7.0%로 30대 그룹 평균인 3.3%의 2배를 넘었다.

올해 임원 인사에서도 기술 부문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최근 인사를 한 10개 그룹 임원 승진자(신규 임원 제외) 453명 중 기술 부문이 149명(32.9%)으로 가장 많았다. 전략기획이 101명(22.3%)으로 두 번째였다. R&D 인력도 52명(11.5%)이 승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정몽구 회장이 항상 ‘품질 경영’을 강조하고 있는 현대차그룹에선 올해 임원 승진자(신규 선임 포함)의 43.6%가 R&D 및 기술 인력이었다.


임원의 세계는 ‘정글’

‘인재’에 목마른 기업들은 외부 인력을 파격적인 대우로 스카우트하거나 뛰어난 성과를 낸 30대나 40대 초반 직원을 임원으로 전격 발탁하기도 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2월 만 33세인 프리나브 미스트리 상무와 만 39세인 데이브 다스 상무에게 ‘30대 별’의 영광을 안겼다. 구광모 상무(LG), 정기선 상무(현대중공업), 김동관 상무(한화) 등 30대 나이의 오너 가(家) 3, 4세들도 이번 인사에서 임원이 됐다. 지난해 9월 기준으로 보면 30대 그룹 중에는 SK GS 한진 LS 현대 OCI 미래에셋 등 7개 그룹에 30대 임원 9명이 재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20년 이상 한 우물을 파야 임원이 될 수 있다. 사원 대리 과장 차장 부장의 단계를 하나씩 밟는 동안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한다. 이 때문에 임원들의 나이는 대부분 50대에 몰려 있다. 30대 그룹 임원 중 50대는 7256명으로 전체의 76.5%를 차지한다. 40대와 60대가 각각 1228명(13.0%), 986명(10.4%)이다.

식음료 업체 임원 A 씨는 1990년에 입사해 23년 만인 2013년 말 상무가 됐다. 고생의 결실은 달콤했다. 연봉은 직전 해의 2배로 올랐다. 개인 사무 공간도 따로 생겼다. 각종 행사장에는 본인의 이름표가 붙은 좌석이 생겼다. 차량과 관련한 모든 비용도 회사가 지원한다.

그렇다고 임원이 과연 직장 생활의 꽃이기만 할까. 대부분의 임원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이사’ 또는 ‘상무’라는 직함을 받아드는 순간 계약직 신분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한번 삐끗하면 언제든 회사를 나가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책임이 늘어나면서 업무도 폭증한다. A 씨는 “부장 때는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주말에 나왔지만 임원이 되고부터는 밀린 업무를 보기 위해 수시로 나온다”며 “임원의 경우 평가가 회사 실적과 직결되기 때문에 훨씬 압박감이 크다”고 말했다. 통신업계 임원 B 씨는 “그토록 갈망하던 임원인데 3개월 정도 지나니까 붕 뜬 기분이 모두 사라졌다”며 “실적 부담 때문에 책임의 범위도 배는 늘어난 것 같다”고 했다. 이 때문에 재계에선 “부장까지는 안전한 차를 타고 사파리 관광을 하는 것이라면 임원이 되면 진정한 정글에 들어서는 셈”이라는 말도 나온다.

30대 그룹 전체 임원의 평균 나이는 54.3세다. 그룹 임원들의 평균 나이는 미래에셋이 49.4세로 유일하게 50세 아래다. CJ가 두 번째로 젊은 51.8세다. 대우조선해양(58.1세) 동부(57.4세) 포스코(57.3세)는 임원의 평균 연령이 가장 많은 기업들로 조사됐다.


감원 한파에 떠는 임원들

“지난해는 여러 가지로 어려운 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실적을 내서 임원 승진을 한 여러분은 정말 능력 있는 인재들입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달 19일 서울 중구 동호로 신라호텔에서 열린 삼성그룹 신임 임원 만찬 행사에 참석해 이런 격려의 말을 건넸다. 지난해 12월 승진한 신임 임원 240여 명은 4박 5일간의 ‘빡빡한’ 교육 일정을 마친 뒤 부부 동반으로 만찬 행사에 참석했다. 이 행사는 이 부회장이 상무로 승진했던 2003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았을 정도로 삼성으로선 중요한 행사다.

이 부회장의 말에서처럼 올해 삼성 신임 임원들의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새롭게 임원의 반열에 오른 이들이 2013년 331명에서 지난해에는 253명으로 무려 78명(23.6%)이나 줄었기 때문이다. 예년에도 “임원이 되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했지만 지난해는 그 구멍이 훨씬 좁았던 셈이다. 삼성그룹은 올해 퇴직자에 비해 승진자가 적어 전체 임원도 100여 명(약 5%) 줄어들었다.

삼성그룹의 한 계열사 신임 임원 C 씨는 “내가 승진하는 만큼 누군가는 나간다는 얘기”라며 “올해는 승진을 축하받는 자리보다는 떠나는 상무들을 위한 송별회 자리가 더 많았다”고 전했다.

다른 기업들이라고 사정이 다를 리 없다. SK그룹도 임원이 올해 15∼20명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KT는 지난해 봄 대규모 감원과 함께 시행한 조직 개편으로 전국 지점장 자리가 대폭 줄어 올해 상무보 수십 명이 회사를 떠났다.

재계 관계자는 “불황이 지속되면 기업은 가장 먼저 임원들부터 줄이게 돼 있다”며 “임원들은 높은 연봉과 각종 복지 혜택을 받지만 신분이 불안한 ‘동전의 양면’ 위에 놓여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뛰다보면 임원 되는 것… 임원을 목표로 삼으면 지쳐 ▼

송현주 삼성전자 상무

“오전 6시반 출근… 가전디자인 총괄, ‘점심 간담회’로 후배들과 소통”

2013년 12월 상무로 승진하면서 가장 먼저 달라진 것은 출근 시간이었다. 오전 6시 반이면 책상에 앉는 게 일상이 됐다. 다른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까지 1시간 반가량이 그에게 주어진 유일한 개인 업무 시간이다. 밀린 e메일 답변도 하고 최신 디자인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각종 자료도 뒤적인다. 물론 이 시간마저도 다른 파트 임원들과의 업무협의에 할애해야 하는 날이 적잖다.

오전 8시부터 그는 시간의 노예가 된다. 그가 필요해 잡은 일정보다 그를 필요로 해서 잡힌 일정이 더 많아서다. 사무실은 서울이지만 회의 때문에 하루에 두 번씩 경기 수원을 오가기도 한다. 인터뷰는 2일 오후 5시에 잡혀 있었다. 정각에 맞춰 도착한 그는 “막 회의를 마치고 오느라 머리 손질도 제대로 못했다”며 머쓱해했다.

송현주 삼성전자 상무(46)는 생활가전사업부 디자인그룹을 총괄하는 그룹장이다. KAIST에서 산업미술학으로 학사, 석사학위를 받은 뒤 1993년 봄 특채로 삼성에 입사했다. 삼성그룹의 첫 대졸 여성 공채 입사자들과 동기다. 송 상무는 “1993년을 기점으로 여성을 배려하고 성장시키는 여러 제도들이 생겼다”며 “제가 임원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라고 말했다.

송 상무가 이끌고 있는 디자인그룹에는 60명이 소속돼 있다. 3일 미디어설명회에서 윤부근 삼성전자 사장이 직접 공개한 전자동세탁기 ‘액티브워시’와 2015년형 ‘스마트에어컨 Q9000’, 공기청정기 ‘블루스카이 AX7000’ 등이 모두 이 그룹에서 디자인한 제품들이다.

그룹 전체를 이끌어야 하는 위치이기에 그의 고민은 늘 후배들을 향해 있다. 틈날 때마다 그룹 구성원 서너 명씩 짝을 지어 점심을 함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이를 ‘점심 간담회’라 부른다.

“요즘 직장 문화가 저녁에 회식하는 걸 즐기진 않잖아요. 그래서 점심이라도 같이 먹으면서 교류를 하는 거예요. 편한 시간을 가지려고 일부러 회사에서 조금 떨어진 ‘핫’한 식당을 찾지만 저도 모르게 업무 얘기만 하다 오는 경우도 많죠.”

송 상무가 생각하는 임원으로서의 리더십은 ‘같이 고민하고 같이 뛰는 것’이다. 실제 20년 전에는 ‘관리형 임원’이 주류였다면 지금은 ‘실무형 임원’이 더 많아졌단다. 송 상무는 “삼성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 중 하나인 만큼 제품 디자인과 성능에 대한 시장의 눈높이가 예전보다 훨씬 높아졌다”며 “회사가 임원들에게도 현장 업무를 놓지 말 것을 요구하는 이유”라고 했다.

임원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혜택은 휴대전화와 자동차와 관련한 모든 비용을 회사가 지불해 주는 것이라고 했다. 송 상무는 “임원들에겐 24시간 동안 어디에서든 일할 수 있는 ‘모바일 오피스’가 필수적이다”며 “거의 매일 한 차례 수원을 다녀오는데 운전하는 동안 전화로 업무지시를 내릴 때가 많다”고 말했다.

또 달라진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신입사원 채용 때 면접을 보는 것’과 ‘양각을 넣어 좀 더 고급스러워진 명함’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송 상무는 마지막으로 “임원은 신분이 계약직이다 보니 단기 성과를 좇을 가능성이 크지만 사원이든 임원이든 가장 큰 덕목은 멀리 보고 뚝심 있게 일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종률 현대자동차 상무▼
“직장생활 31년 중 24년 현장근무… 휴대전화엔 부하직원 343명 빼곡”


“술요? 잘 못 먹습니다. 그래도 정성을 다해 먹으려고 노력합니다.”

5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현대자동차 남부지역본부에서 만난 김종률 본부장(55·상무)은 ‘영업직원들을 관리하려면 술이 꼭 필요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김 본부장은 “(술을 잘 먹기 위한) 약까지 먹어봤지만 조직 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게 술 먹는 자리였다. 그러나 체육대회에서 343명에 이르는 직원 모두와 술 반잔씩이라도 먹다 보니 직원들도 진정성을 알아줬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서초구, 동작구에서 주로 영업을 하는 남부지역본부는 현대차가 국내 시장을 사수하기 위한 최전선이다. 지난달 수입 승용차의 국내 시장점유율이 18%가 넘어 역대 최대 기록을 세울 정도로 수입차의 공세가 거세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 강남권만 놓고 보면 수입차의 시장점유율은 30%대에 이른다. 직원들을 독려하면서 기존 고객을 유지하고 신규 고객을 발굴하는 김 본부장의 야전사령관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그는 회사의 비전과 판매목표를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직원들과 개인적으로 친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본부장은 “지점을 방문할 때 미리 인사카드를 보면서 직원들의 이름을 모두 외운다”라며 “이름이 비슷하다거나 고향이 같다거나, 하나라도 공통점을 찾아서 먼저 말을 건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단 직원들과 소통이 이뤄지면 서로 비전을 공유하면서 목표도 달성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직원들이 리더를 따르는 것은 리더가 잘났거나 ‘당근과 채찍’을 가졌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김 본부장은 휴대전화에 남부지역본부 소속 모든 직원(343명)의 이름과 연락처, 사진, 세세한 특징까지 기록해 수시로 확인을 한다. 

기계공학과 출신인 김 본부장은 1983년 현대차 연구소로 입사했다. 하지만 부산에 있는 부모, 가족들과 생활하기 위해 영업직에 지원했다. 연구직을 박차고 영업현장으로 오면서 직장생활 31년 중 24년을 본사 조직이 아닌 현장에서 근무했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동기들 상당수는 회사를 떠났지만 그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2010년 1월 기업의 ‘별’인 임원을 달았다. 당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신임 임원 부부들을 초청해 격려하면서 부인에게 스카프를 선물했다. 김 본부장은 “현장을 누볐던 제가 임원이 됐을 때가 저와 아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물질적인 보상도 뒤따랐다. 연봉은 세전 기준으로 직원 시절보다 배로 뛰었다. 현장 업무가 많은 지역본부장이란 보직 덕분에 운전사가 딸린 자동차도 탈 수 있었다. 현대차는 보통 부사장급이 돼야 운전사가 있는 자동차가 제공된다. 
김 본부장은 “임원을 달고 간 첫 해외 출장에서 비즈니스클래스 좌석과 혼자 호텔 방 하나를 배정 받고는 임원이 됐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며 웃었다.
임원을 꿈꾸는 직장인들에게 조언을 해달라는 요청에 그는 한참을 망설였다. “인생지사 새옹지마입니다. 임원이 목표가 아니라 성실히 최선을 다하면 그 결과로 임원도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